<인터뷰> '생태 다큐 3부작' 황윤 감독

(연합뉴스) 지난 주 다큐멘터리 영화 '어느 날 그 길에서' '작별'의 언론 시사회날 무대에 오른 황윤 감독은 개봉 소감으로 "크레인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됐다"고 말한 후 갑자기 터져나온 눈물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크레인은 철창 속에서 애처롭게 울부짖으며 동물원 속 야생동물들의 비애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작별'의 주인공 새끼 호랑이다.

27일 두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서울 종로구 동숭동 하이퍼텍 나다에서 만난 황 감독은 "그날 예기치 못하게 눈물이 쏟아져서 너무 부끄러웠다"며 쑥스러운 듯 웃었다.

"크레인도 그렇고, '어느 날 그 길에서'의 삵 팔팔이도 그렇고, 동물들을 하나씩 만나면 늘 약속을 했습니다. 너희의 이야기를 꼭 사람들에게 들려주겠다고. 그동안 영화제나 공동체 상영은 많았지만 이번엔 일반 관객에게 보여줄 수 있는 극장 개봉이니 감회가 남다르네요."

'어느 날 그 길에서'(2006)는 지리산의 아름다운 풍경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로드 킬의 실상을 다루고 있으며 '작별'(2001)은 동물원에 사는 동물들의 가슴 아픈 사연을 들려준다. 중국 훈춘(琿春)시 북ㆍ중ㆍ러 접경지역에 있는 자연보호구역의 호랑이들의 이야기 '침묵의 숲'(2004)까지 묶으면 '야생동물 3부작'인 셈이다.

"사실 '환경 다큐' '자연 다큐'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교육적인 다큐멘터리가 연상되거든요. 또 미디어에서 보이는 동물이란 싸워 무찔러야 하는 야수이거나 희화화한 인간의 장난감이죠. 그런 틀, 시점에서 벗어나 사람과 자연의 관계를 새롭게 보여 주고 싶었어요."

'여과 없이 보여주고 싶었다'는 그의 말대로 '어느 날 그 길에서' 그의 카메라는 도로에 스러진 멧토끼와 고라니, 소쩍새, 부엉이, 족제비, 뱀, 삵 등 수많은 동물의 사체를 확인, 기록, 수집하는 작업이 계속되는 동안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을 바라보는 황 감독의 시선은 단순한 관찰자를 넘어서 소중한 생명의 죽음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동반자의 시선에 가깝다.

"동물은 인간이 보호하고 관리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대지라는 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형제, 자매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숲을 태워도 우리 집만 무사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우리 집이 바로 숲 안에 있는데. 로드 킬 연구자 최태영 씨가 한 '동물들에게 표정이 없다고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니고, 말을 못한다고 해서 생각이 없는 게 아니다'란 말이 마음에 와닿았어요. 우리가 조금만 더 유심히, 3분만 이들의 눈을 바라본다면 달라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바라는 게 그거예요."

그는 일반 기업에서 일하다 1년여 만에 그만두고 영화 일을 시작했다. 그는 극 영화로 연출을 시작했지만 '오! 수정' 촬영 스태프들의 현장 모습을 담은 '겨울 밤 이야기를 듣다'(2000)로 다큐멘터리의 매력에 빠져 다큐 감독의 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작별'로 환경과 생태 다큐멘터리의 세계에 발을 들여놨다.

황 감독이 활동 중인 '야생동물 소모임'의 창립 멤버이자 '작별'에도 등장한 수의사 김영준 씨는 촬영을 계기로 그의 남편이 됐다. 이들은 '어느 날 그 길에서' 제작이 본격화하던 2005년 여름 제주도로 사흘 간의 신혼여행을 떠나지만 결국 휴가를 즐기지 못하고 제주도의 로드 킬 실상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고 한다.

"야생동물 소모임에서 제 인생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결국 결혼도 그 안에서 해결했네요(웃음). '작별'은 제 눈을 뜨게 해 준 작품이자 인생의 전환점이었어요. 그 동안 막연하게 생각했던 환경 문제가 이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구체적으로 다가오더군요."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그에게서는 확실한 신념을 가진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자신감이 엿보였다. 앞으로도 계속 환경과 생태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찍을 계획인지 물었다.

"네, 아마도 계속 찍을 것 같아요. 다음으로는 자전거 타고 다니는 사람들에 대한 영화를 찍으려고요. 참, 이 얘기는 꼭 하려고 했는데, '어느 날 그 길에서'에 나온 섬진강변 도로 확장이 추진 중이랍니다. 그 길이 막히는 때는 벚꽃철 때뿐이라고 하던데요. 이런 건 정말 잘못된 거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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