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엔 정겨운 미소 있었네 개발 물결에 스러진 어릴적 고향 풍경…

화가 정석희 옛고향 서울 금호동 일대 화폭에 담아 소시민의 삶 전시…22일까지 아트포럼 뉴게이트서

도시에서 살아본 사람들은 안다. 아침과 저녁 출·퇴근시간의 번잡한 대중교통과 해질녘 집을 향해 오르는 골목길, 힘겹지만 내일의 희망을 안고 하루하루를 버티는 소시민들의 삶.

대단위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 사람 냄새 풀풀 풍기던 그런 동네는 재개발이란 유탄을 맞고 하나둘 사라진다. 수도권도 예외는 아니다. 택지개발의 돌풍에 정든 고향을 떠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고, 외지인들이 성냥곽 같은 아파트의 새 주인으로 등장한다.

화가 정석희의 고향은 서울 금호동 산 7번지. 30여년을 지내는 동안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됐고, 오랜 세월이 지나 작고 초라한 그 현장을 찾았다. 이미 개발의 물결이 들이닥쳐 옛 정취는 오간 데 없다.

골목길에 딸린 조그만 가게와 어둑칙칙한 방앗간, 재잘거리던 아이들과 눈인사를 나누던 어른들의 정겨운 미소도 사라졌다. 작가는 옛 기억을 반추하며 어릴 적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눈이 하얗게 쌓인 마당과 장독대, 담벼락 너머로 아득하게만 보였던 집들, 계곡처럼 느껴졌던 많은 계단들과 커다란 바위들, 당시로선 구경조차 힘들었던 바나나를 먹던 소녀….

작가는 “각자의 고향을 떠나 삶의 고단한 안식처를 이뤘던 거대도시 서울의 외곽, 금호동 산 7번지는 나에겐 소(小)우주였다”고 고백한다.

그는 지난해 눈덮인 금호동을 담았다. 그는 시간이 흐르며 변화를 거듭하는 풍경을 눈에 담은 후 점차 사라지는 기억과 회한, 존재의 의미를 하나둘 그려냈다. 갈색의 모노톤으로 차분히 그려낸 작품들은 하나같이 서정적이다. 화면을 가득 채운 집들과 넉넉히 쌓인 눈들이 평화롭기까지 하다. 전시는 오는 22일까지 아트포럼 뉴게이트에서 열린다. 문의(02)737-9011

/이형복기자 bok@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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