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배우 조재현은 연기력만 뛰어난 게 아니다. 자신의 주가를 올리는 일에도 능하다.
"'경숙이, 경숙아버지'가 잘 된 데는 제 역할이 컸어요. 관객들이 저를 보러 온 거죠." 지난주 동숭아트센터에서 만난 그는 이 얘기를 스스름없이 했다. 이 말까지만 들었다면 아마 조재현을 그저 자기도취에 빠진 배우 정도로 봤을 것 같다. 그러나 그는 노련했다. 자신의 주가를 높이면서도 그는 중심을 잡았다. "그 건 초기였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관객이 더욱 불어났고 그 이유가 저 때문이 아니라 작품성과 고수희, 주인영같이 함께 출연한 배우들의 연기력이 너무 뛰어났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자신있게 본인이 느끼는 그대로를 얘기하는 솔직함은 분명 그의 매력이었다.
그는 지난해 대학로에서 엄청난 관객을 끌어모았던 '경숙이, 경숙아버지'(박근형 작.연출)에 사실상의 제작자 겸 출연자로 참여한 이후 이번 '연극열전2'에 자신의 운을 걸어보기로 했다고 얘기한다.
"'경숙이, 경숙아버지'나 고두심씨가 출연했던 '친정엄마'에 관객이 몰리는 것을 보고 이런 작품을 1년 내내 펼쳐보자. 그래서 연극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쏴보자 해서 '연극열전2'를 제가 적극적으로 하자고 한 거예요." 올초에는 '연극열전' 시리즈를 전담하는 ㈜연극열전이 출범했다. 조재현은 프로그래머일 뿐 아니라 이 주식회사의 상당 지분을 가지고 있는 제작자이기도 하다.
'연극열전2'는 현재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해 12월초부터 내년 1월초까지 1년여 기간 하는 이 연극시리즈의 첫 두 작품, 즉 '서툰 사람들'(장진 작.연출)과 '늘근 도둑 이야기'(이상우 작.김지훈 연출)는 정규객석이 모자라 보조의자까지 동원해야 할 정도이며 객석점유율이 모두 100%를 넘는다. 곧 시작되는 '리타 길들이기'(윌리 러셀 작.최우진 연출), '블랙버드'(데이빗 해로워 작.이영석 연출)도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블랙버드'에는 추상미와 최정우가, '리타 길들이기'에는 최화정, 윤주상, 박용수, 이승비가 출연한다.
대학로 일각에는 이 같은 인기가 스타들을 대거 기용하고 코미디 위주로 작품을 편성했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런 관점에 대해 조재현의 입장은 단호하다. "연극열전은 이제 격년제로 할 겁니다. 콘셉트가 다 달라요. 2008년 연극열전의 콘셉트는 공연문화에는 관심이 있으나 마음이 소극장에서 떠나있는 사람을 되돌아오게 하는 겁니다. 관객들이 지금 뮤지컬 등으로 떠나 있어요. 연극계가 '힘들어 도와줘!'하고 아무리 외치고 울어도 이제 관객들은 돌아보지 않습니다. 스스로 돌아보도록 해야죠. 그 힘이 배우에서 나옵니다."
그는 2010년에는 장영남이나 고수희 같은 연극성이 아주 강한 배우들이 주도하는 그런 연극열전을 만드는 것을 꿈꾼다. 그렇게만 할 수 있으면 더 이상 행복할 수 없을 것 같다는 게 그의 말이다.
'연극열전2'에서 엿보이는 연극의 상업성에 대해서도 그는 할 말이 많은 듯하다. "지난 2004년 동숭아트센터 씨어터컴퍼니 주도로 처음 한 '연극열전'이 관객몰이에 성공하고 잘 됐다고 하는데 3억5천만원 적자를 봤어요. 큰 극장에 관객을 채우는 데 문제가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이번에는 소극장에서만 합니다. 그런데 작품마다 객석점유율이 80%가 넘어야 겨우 적자를 면한다고 하네요. 우선 돈을 벌어야 다음 작품을 하지 않겠습니까?" 그는 연극작품 하나 해서 돈 벌어봤자 100원 투자해 기껏해야 20-30원 수입을 올리는 '소박한' 것이라며 그나마 흑자를 내기가 너무 힘들다고 얘기한다.
"현재 '연극열전2'를 진행시키면서 외부지원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부 기업이 관심을 나타내고는 있어요. 외부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 객석점유율에 신경쓰지 않고 좋은 작품을 선정하는 데도 좀 여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는 1990년 피터 셰퍼 작 '에쿠스'에서의 알런 역으로 출연해 연극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2004년 연극열전 때 '에쿠스'에 다시 출연했는데 관객들 중에서 14년 전에도 제 작품을 봤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거기서 연극의 힘을 느꼈어요. 그 때 알런 역을 다시 맡았던 것은 시간이 그렇게 흐르는데도 마음 속에 알런의 모습이 지워지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마음 속에 남아 있던 알런을 다시 한 번 끄집어 내 안아주고 다독거려 떠나보내 주고 싶었어요."
그는 제작자 겸 프로그래머 역할을 하면서도 이번 '연극열전2'에 배우로서 출연한다. 작품은 '민들레 바람되어'. 신예작가 박춘근의 신작으로 '연극열전2'에서 초연되는 것이다. 김낙형이 연출하는 이 작품은 가장이자 남편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남자를 통해 삶과 가족의 소중함이 무엇인가를 되묻게 한다. 작품 속에서는 30대 중반의 안중기(조재현)가 죽은 아내의 무덤가에서 아내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자신의 삶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넋두리하듯 들려준다.
조재현은 15개 작품이 선보이는 이번 '연극열전2' 작품을 보러 오는 관객 수는 2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연극은 어떤 형식이든지 재미있거나 감동을 줘야 합니다. 비좁은 소극장에 관객들 모아놓고 팸플릿이나 처다보게 했서는 안되지요. 연기하는 배우들의 땀방울 맺히는 모습도 보여주고 눈가 주름에 경련이 이는 것도 다 보여줄 수 있어야지요. '연극열전2'가 그 걸 꼭 보여 드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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