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옥의 치매미술과 세상이야기 ④터키에서의 전시

치매미술치료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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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묻어나는 어르신 작품들 소피아 대성당 전시 “베리 굿”

오랫동안 치매미술치료 분야에서 일해 온 필자는 최근 어르신들의 그림을 갖고 터키를 방문했습니다.

전시는 세계적인 소피아 대성당에서 예정돼 있었고, 이때문에 출발부터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터키에서의 전시는 필자의 교통사고로 터키에서의 둘째날부터 차질을 빚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소피아 대성당의 전시는 터키 방문 첫째날 진행된 까닭에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소피아 대성당은 유명한 성당이어서 많은 방문객들과 각국의 여행자들도 전시된 어르신들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 전시에서 필자를 감동시킨 건 다른 문화를 가진 한국의 나이 드시고 치매를 앓고 계시는 어르신들의 그림을 전시했는데, 국경을 넘어 우리 어르신들의 그림들을 유심히 보고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며 “최고”라고 연발하는 그들의 감탄사였습니다. 말도 언어도 통하지 않는 먼 터키 땅에서 우리 어르신들의 그림들을 감상하며 감동하듯 바라보는 생생한 얼굴들을 보면서 필자는 말없이 뿌듯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외국인들이 감동한 작품들은 모두 다름 아닌 우리 어르신들이 살아왔던 삶을 소재로 그렸던 것이었습니다. 설날, 연날리기, 상모돌리기, 추석, 대보름 등 많은 우리의 옛 일상생활들이 담겨진 그림이었습니다. 어르신들의 삶 속에 녹아 고단한 삶을 뒤로 하고, 이제 병마를 얻어 힘겨운 생활을 하시면서도 치매미술 치료사 선생님들과 대화하며 한장 한장 마음으로 그려내 아름다운 그림이 됐습니다.

어쩌면 그 그림에 어르신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지도, 아니 그 그림들은 어르신들의 마음이며 영혼이며 삶의 자취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한 그림들을 들고 전시를 위해 터키로 간 필자에게는 말없는 행복감과 설명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들었습니다. 그렇게 소피아 대성당에서의 첫 전시는 성황리에 무사히 마쳤고, 새로운 희망과 가능성을 안고 숙소로 돌아 올 수 있었습니다.

첫 전시의 성황을 뒤로 하고 터키에서의 둘째날 필자의 교통사고로 모든 일정이 취소됐습니다. 필자는 조금이라도 작은 공간만 있다면 남은 전시를 진행하기 위해 병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퇴원했습니다. 하지만 마음만큼 몸의 형편이 좋지 못했습니다. 필자는 생각 끝에 필자가 묵고 있는 이스탄불의 센트리움 호텔에서 전시를 준비했습니다. 몸이 온전하지 않았지만, 고국에 계신 어르신들 생각에 이대로 누워만 있다 귀국할 순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힘겹게 호텔에서의 전시를 준비하고 작품들을 감상하는 터키인들의 모습과 그들의 호기심 어린 관심, 그리고 그들의 격려를 받으며 필자는 말없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필자가 치매를 앓고 계신 분들과 함께 하며 미술치료를 해온 지난 시간이 지구를 반 바퀴나 돌아 어르신들의 그림 속에 행복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을 보고 행복의 눈물이 필자의 눈을 가로 막았던 것입니다.

필자에게 그분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들을 허락해 주신 것에 감사하는 마음과 앞으로도 많은 시간 어르신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새로운 용기를 갖게 했습니다. 터키에서의 체류 기간 내내 고국에 계신 어르신들이 자꾸 생각나는 점만 보아도 필자는 그분들과 늘 함께 해야 하는가 봅니다./치매미술치료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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