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웨어적 인프라 구축은 완성단계
콘텐츠 개발ㆍ 영화제작은 '걸음마' 수준
(연합뉴스) "이제 부산에서 영화.영상과 관련한 하드웨어 측면의 인프라는 거의 갖춰지고 있는 셈입니다만 하드웨어를 채울 소프트웨어는 걸음마 단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부산영상위원회 이상원 사무국장은 부산 영상산업의 현주소를 이렇게 진단했다. 다른 영화관련 대학 교수나 업계 관계자들도 같은 생각이다.
하드웨어 차원의 인프라와 관련해서는 부산국제영화제(PIFF)가 아시아의 대표 영화제로 탄탄한 자리를 잡았고 국내에서 영화를 촬영하기 가장 좋은 도시가 됐다. 여기에 영화제작의 마지막 단계인 현상과 편집 등 후반작업 시설의 1단계가 10월에 완공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영화 제작의 전 과정을 부산에서 할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춰지게 된다.
세계 5대 영화제로 성장한 PIFF는 단순히 영화를 보고 즐기는 축제에서 벗어나 제작 전단계에서부터 영화를 사고 파는 시장으로도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특히 지난 98년 출범한 프로젝트 시장인 부산프로모션플랜(PPP)은 아시아의 대표적인 시장으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PPP의 임지윤 실장은 "지난 해 PPP에 영화 '북경 자전거'로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한 중국의 왕 샤오슈아이 감독과 '미션 임파서블 2'의 프로듀서인 테렌스 창 등이 참가한 것은 PPP의 높은 위상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은 영화 촬영지로서도 국내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지난 해 국내 영화사가 제작한 영화의 절반 이상이 부산에서 촬영됐고, 해외 영화도 2편이나 부산 로케이션을 택했다.
국내 최대 규모(1천650㎡)의 영화촬영 스튜디오를 보유하고 있고, 타지역에 비해 월등한 촬영지원 시스템이 구축된 덕분이라는 게 부산영상위 관계자의 설명이다.
부산시는 3천300㎡ 규모의 초대형 촬영 스튜디오 1개와 1천980㎡ 규모의 스튜디오 2개를 추가로 건립키로 하고 조만간 타당성 용역에 착수할 예정이다. 이들 스튜디오가 완성되면 부산의 촬영여건은 적어도 국내에서는 타지역의 추종을 불허하게 된다.
부산영상위 이상원 국장은 "영화의 규모가 점차 커지고 있어 소규모 스튜디오는 쓸모가 없어지는 추세"라면서 "부산이 국내 최고의 영화 촬영지가 된 것도 국내 최대 규모의 스튜디오 보유와 무관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영화제작의 마지막 단계인 후반작업시설은 지난 해 10월 착공, 오는 10월에 1단계가 준공된다. 필름 현상과 편집, 영화 시사실 등이 시험운영을 거쳐 내년 1월부터 본격 가동될 예정이다.
부산시는 또 내년에 컴퓨터 그래픽 시설을 설치하고, 2011년까지 녹음 및 음향시설까지 갖춰 명실상부한 종합후반작업기지로의 면모를 갖출 계획이다.
영화진흥위원회와 영상물등급위원회, 게임물등급위원회 등 영상관련 공공기관의 부산이전 확정도 하드웨어적 인프라 구축에 빼놓을 수 없는 요소로 꼽힌다.
또 남양주 종합촬영소가 부산으로 옮겨오거나 이에 준하는 규모의 종합촬영소가 동부산권에 조성되면 부산은 아시아 각국을 대상으로 영화촬영을 유치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게 된다.
그러나 영화의 제작과 콘텐츠 등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부산은 걸음마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동의대 영화학과 김이석 교수는 "영화제작과 관련해서는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해야 한다"면서 "하드웨어 측면의 인프라가 완성될 때까지 마냥 기다릴 게 아니라 지금부터라도 하드웨어를 채울 소프트웨어 개발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3년 통계청이 조사한 부산의 영화매출액은 전국의 2.6%에 불과했다. 관련 업체 수도 전체의 5.4%인 194개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영화나 비디오 제작사는 25개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25개 제작사도 자본금 1억원 미만의 영세업체여서 안정적으로 영화를 제작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영화.영상관련 인력양성에도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일치된 평가다.
현재 부산의 8개 대학에 49개 관련 전공이나 학과가 있고, 부산영상고와 부산국제영화고에도 6개 학과가 있으나 현장에서 곧바로 활용할 수 있는 인력이 충분히 배출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기획과 편집 등 높은 수준의 능력이 요구되는 분야는 더 심각하다는 게 부산영상위 관계자의 분석이다.
이런 상황에서 동서대가 지난 해 '임권택 영화연구소'에 이어 올해 '임권택 영화예술대학'을 신설하고 부산대가 최근 영화연구소를 개설한 것은 인력양성기관 확충이라는 측면에서 반가운 일이다.
부산시가 PIFF 조직위원회를 통해 영화 배급사인 '발콘(BALCON)'을 설립하고 영화제작 창업투자회사인 '아시아문화기술투자'를 설립한 것도 소프트웨어 확충의 새로운 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부산영상벤처센터에 서울의 중견 영화제작사인 '㈜세네마제니스'와 '㈜오존필름', '세발자전거' 등의 부산지사가 속속 들어서고 있는 것도 부산이 명실상부한 '영화도시'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PIFF 조직위원회 김지석 수석 프로그래머는 "몇몇 영화 제작관련 인사들이 '조만간 부산으로 옮겨갈 생각이 있다'고 말한다"면서 "이제 부산에서 영화를 제작해도 되겠다는 가능성을 발견하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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