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일본 전후의 추억 '요코하마 메리'

(연합뉴스) 일본 영화 '요코하마 메리'의 주인공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쓸 만한 정치ㆍ사회적인 인물도, 단 한때라도 대중에게 큰 인기를 끌었던 연예계 인사도 아니다.

가부키 배우같이 새하얗게 분칠한 얼굴에 중세 공주의 옷같이 화려한 레이스 드레스 차림이라는 점이 독특할 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에 진주한 미군기지 인근에서 몸을 팔던 많은 여자들 중 한 명일 뿐이다.

게다가 작가 또는 감독의 뜻대로 허구를 집어넣어 과장할 수 있는 극영화가 아니라 주인공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라도 갖고 있는 사람들의 회상 인터뷰로 구성된 다큐멘터리 영화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는 어떤 얘기로 92분의 상영시간을 채울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지만 나카무라 다카유키 감독은 미스터리물처럼 백지를 조금씩 칠하면서 관객의 흥미를 끄는 방식을 택했다.

도쿄에서 가장 가까운 항구도시 요코하마에는 일본의 패전 이후 미군이 주둔하면서 재즈와 카페, 술집이 생겨난다. 물론 미군을 상대해 '양공주'라 불리는 매춘여성들이 많다. 그 중 하나인 메리는 특이한 복장과 우아한 몸짓, 공손한 말투 등 남다른 모습으로 유명하다.

이후 세월이 50년가량 흐르면서 요코하마에 사창가가 사라진 뒤에도 나이 든 메리는 하얗게 화장한 얼굴에 레이스가 겹겹이 달린 드레스를 입고 우아하게 거리를 걸어다니며 '직업' 생활을 계속한다. 에이즈에 감염됐다는 등 그에 대한 소문은 무성하지만 그는 자신에 대해 입을 열지 않는다.

요코하마를 자주 찾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에 대해 알 정도로 메리는 요코하마의 명물이 된다. 그러나 1995년 가을 메리는 갑자기 요코하마에서 사라진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메리의 실제 모습이 아니라 주변인물들이 메리를 어떻게 기억하는지에 따라 전개된다. 메리에 대해 회상하는 주요 증언자로는 요코하마의 게이 밤무대 가수와 단골 미용실 주인, 옛 술집 동료, 거리의 공연 매니저, 무용 연구가, 세탁소 주인 등이 있다.

이들은 한때 가장 번창했던 술집이 있었지만 지금은 주차장이 된 자리에 직접 서고, 메리가 미군 애인을 떠나보냈던 옛 항구의 사진을 보여주기도 하며 당시의 모습을 조목조목 떠올린다. 영화는 전후 혼란기에 대해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회상하는 증언자들을 조용히 비추면서 이들이 요코하마의 역사 그 자체임을 보여준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나카무라 감독이 주요 증언자인 밤무대 가수와 함께 직접 메리의 흔적을 찾아 나설 때다. 1990년대 전문 사진작가의 사진 속에서 메리와 요코하마 거리는 그림처럼 남아 있지만 카메라는 메리를 찾아 기차에 오른 순간부터 흑백사진 속 전설을 컬러 영상 속 현실로 바꾼다.

나카무라 감독은 고향인 요코하마의 모습을 5년 동안 카메라에 담아 장편 데뷔작인 이 영화를 완성했다. 이 영화는 2006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소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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