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손잡고 본 오페라 속 동화나라
빗자루를 만들어 어렵게 살림을 꾸려 나가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일을 나간 동안 헨젤과 그레텔은 양말을 꿰매고 빗자루를 만들다 배고픔을 달래려고 춤을 춘다. 집에 돌아온 어머니는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화를 내며 산에서 딸기나 따오라고 내쫒는다. 축제 덕분에 비를 다 팔고 신이 나 집에 돌아온 아버지는 아이들이 마녀가 사는 숲으로 갔을까 염려하며 어머니와 찾으러 나서고, 딸기를 따던 남매는 숲에서 길을 잃고 잠이 든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난 헨젤과 그레텔은 숲 속에서 과자로 만든 집을 발견하고 그 집을 조금씩 떼어먹다 마녀에게 붙들리고 만다. 마녀는 남매를 마법으로 꼼짝 못하게 하고 그들을 잡아먹으려 하지만 헨젤과 그레텔은 기지를 발휘해 오히려 마녀를 오븐 속에 밀어 넣어 죽이고 마녀에 의해 과자로 만들어진 많은 아이들을 구한다. 그들을 찾아 나선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타나 모두 함께 신께 감사 드리며 행복의 노래를 부른다.
재미있는 동화 한편을 보는듯한 오페라 공연이었다. 그림형제의 동화 ‘헨젤과 그레텔’을 바탕으로 엘겔버트 홈퍼딩크가 작곡한 3막의 독일어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독일어 Hansel und Gretel)을 그대로 무대로 옮긴 콘서트 오페라 공연이 구랍 27~28일 고양 아람누리 아람음악당에서 열렸다. 1893년 12월23일 독일 바이마르에서 초연된 이래 크리스마스와 연관지어 오면서 크리스마스 시즌에 자주 공연되는 이 작품은 그래서인지 이번 공연도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콘서트 오페라로 무대에 올려져 아람음악당 객석은 어린이와 부모들로 만원을 이뤘다.
특히 국내 오페라 공연에서 오페라하면 으레 이탈리아 오페라를 떠올리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독일 작품과 만나게 돼 새로웠고, 그동안 접할 기회가 적은 콘서트 오페라여서 기대 또한 컸었다. 콘서트 오페라는 정식 오페라와는 달리 최고의 오페라 가수들이 출연해 전곡을 연기하기 보다는 우리 귀에 익은 오페라 아리아와 중창, 합창 등을 오페라 마니아가 아니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불러주는, 음악적인 면을 강조한 형식으로 오페라 가수들의 아름다운 아리아와 연기, 오페라 무대배경의 자막이 담긴 영상 등 이 세가지가 한 박자를 이뤄 하나의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한다. 그래서 오페라 관람료가 비싸 부담스러웠던 관객들이나 여유를 즐기지 못한 학생들을 위한 공연으로 안성맞춤이다. 이날 공연은 콘서트 오페라로 무대에 올려졌지만 단순히 하일라이트 식의 곡모음용이 아닌 2시간 동안 1막부터 3막까지 전부분을 연주, 명작 오페라로서의 작품성은 그대로 유지했다. 무대 중앙에는 안현성이 지휘하는 고양필하모닉오케스트라(고양필)가 자리했고 별다른 무대 세트 없이 무대 중앙에 커다란 판이 세워지고 거기에 동화 속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를 투영시키는 방법이 사용됐다. 안현성 고양필 지휘자가 극 시작에 앞서 작품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한 다음 연주에 들어가면서 공연이 시작됐다.
딱히 오페라를 위한 화려한 무대세트는 없었지만 의상은 극에 맞게 갖추었고 배우들은 연기는 물론 노래까지 멋지게 불렀다. 배우들은 무대 전체를 활용하면서 연기와 함께 각각의 노래를 잘 소화해냈다. 콘서트 오페라이면서도 전곡 연주인탓에 부담이 컸을텐데 주인공인 헨젤과 그레텔 역을 맡은 신민정과 김진희는 안정적인 호흡으로 이중창 등을 무리없이 소화해 냈고 동작과 표정, 목소리까지 부족함이 없었다.
특히 마녀역을 맡은 정현수는 전혀 마녀같지도 않은 퉁퉁한 몸매(?)에 빨간 망토를 걸친 우수꽝스런 복장이었지만 코믹하면서도 여유로움으로 극을 자연스럽게 이끌어 내 극이 끝났을 때 최고의 박수를 이끌어 낸 히어로였다.
하지만 배우들의 열정적인 면에 비해 주변 조건에선 부자유스런 모습들을 곳곳에서 노출됐다. 오페라 자막은 작품의 시각적 표현을 더하는 하나의 예술적 요소가 되는 동시에 관객들이 배우들의 언어와 움직임을 즉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주최측이 무대 좌우측에 화면을 설치, 어린이 관객들이 배우들의 노래와 곡의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도 했지만 객석의 반을 차지한 어린 관객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를 사용하거나 어투 등은 좀 더 가다듬을 필요가 있었다. 특히 3막 중간부분에서 자막이 중단된 건 기술적인 오류였기를 바란다. 또 다른 한가지. 콘서트 오페라의 생명은 배우들의 빼어난 가창력 이외에 오케스트라의 연주력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이날 공연에서 고양필은 그러한 모습을 충실히 보여주진 못했다. 연주부분 곳곳에서 보인 자잘한 실수는 차치하더라도 불안정한 음정 돌출은 물론 음향적인 밸런스 역시 좋지 못해 깔끔한 사운드를 들을 수 없었다. 배우들의 노래가 오케스트라의 사운드에 묻혀버리기도 하면서 이는 곧 극의 분위기를 상승시키지 못하는 결과로 귀결되고 말았다.
/이종현기자 major01@kgib.co.kr
<전문가 비평> / 장인종 음악평론가 전문가>
연출의 중요성 보여준 아쉬운 3막
구랍 28일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의 둘째날 공연이 고양 아람누리 아람음악당에서 열렸다. 훔퍼딩크의 동화오페라 ‘헨젤과 그레텔’은 독일에서 요한 슈트라우스의 ‘박쥐’와 함께 성탄과 연말무렵 가장 많이 무대에 올려지는 가족 오페라 레퍼토리이다. 굳이 외국의 관습을 도입할 이유는 없겠지만, 한해를 보내면서 부모와 자녀가 함께 관람할 음악 공연물로서 이 오페라만한 게 흔치 않기에 이번 ‘헨젤과 그레텔’ 공연은 절기와 대상에 적합한 기획이었다. 그래서인지 꽤 많은 수의 청중을 객석에 모아낸 성과가 있었고, 특히 제작비를 낮춘 콘서트 오페라 형식으로 구성돼 티켓가격 거품 논란이 끊이지 않는 요즘 비교적 저렴한 입장료로 시민들에게 오페라 감상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도 의의가 있을 것이다.
콘서트 오페라라고는 하나 이 공연은 오케스트라 피트가 없는 공연장이라는 조건과 무대 장치를 최소화한 점, 원작에 등장하는 열네명의 천사들을 제외시킨 점 등만 빼고는 원작 오페라 구성과 큰 차이가 없었다. 가수들은 연기를 빠짐없이 소화했고 분장과 의상 역시 제대로 갖췄으며 스크린의 이미지 영상은 생략된 무대 배경을 보완하는 효과가 있었다. 이 정도면 흔히 말하는 세미 스테이지 오페라 이상의 규모가 된다. 이처럼 콘서트 오페라의 조건 속에서도 최대한의 구성을 갖추려고 한 노력은 높이 살 만하다. 하지만 실제로 콘서트 오페라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찾은 관객들의 눈에 이 공연의 무대는 빈약하고 허전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콘서트 오페라+알파’는 어디까지나 주최측의 생각일 뿐 다수 관객들 입장에선 ‘풀 스테이지 오페라-알파’로 느껴질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콘서트 오페라인지 풀 스테이지 오페라인지 애매해진 정체성 때문에 생긴 역효과도 간과하기 어렵다. 음악에만 집중하고자 하는 가장 단순한 형태의 콘서트 오페라는 가수들이 최적의 위치에 자리하고 노래한다. 그러나 이날 공연에서 가수들은 무대 전체를 활용하며 연기했는데, 결국 위치와 방향에 따라 무대 위에 함께 배치된 오케스트라 음향 속에 가수의 노래들이 파묻히는 경우가 빈발했다. 가수들의 동선이 집중되는 무대 중앙은 오케스트라의 전면이어서 어떠한 무대장치도 둘 수 없었다. 이때문에 출연자들의 연기는 빈 무대 위에서 자주 펼쳐졌고 그 순간 시각적인 효과는 제한될 수 밖에 없었다. 최근 콘서트 오페라나 그외 오케스트라 피트가 없는 무대에서의 음악극 공연을 보면 오케스트라 위치나 악기 배치에 변화를 주거나, 또는 오케스트라 자체를 극적 연출에 활용하는 등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들이 종종 눈에 띄는데, 이날 공연도 이 부분에 좀 더 고려가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오케스트라 위치문제에서 파생한 결과와는 별개로 이날 반주를 맡은 안현성 지휘의 고양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연주 자체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1막 종지의 적나라한 실수는 어디까지나 실수라고 하더라도 곳곳에서 불안한 음정이 돌출됐으며 파트간의 수직적인 음향 밸런스 역시 좋지 못해 관현악으로부터 깔끔한 사운드를 들을 수 없었고 극이 흐름에서 요구되는 분위기와 감성 또한 제공받기 어려웠다. 오케스트라 반주 경험이 비교적 많지 않은 고양필이지만 ‘헨젤과 그레텔’의 연주 경험이 몇번 있었는데도 이날 공연에선 그 노하우가 드러나지 않은듯 보여 아쉽다. 다음날 예정된 고양필의 송년연주회로 집중이 분산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날 출연한 성악가들은 각각의 노래들을 대체로 잘 소화한 편이었고 적극적이고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줬다. 다소 밋밋하게 노래했던 엄마 역의 정선경과 사악하지도 코믹하지도 않았던 마녀 역의 정은서 연기는 조금 아쉬웠지만 배역을 소화하는데는 무리가 없었고, 아빠 역을 맡은 유일한 남성 출연자인 이종윤의 육중한 음성은 어린 관객들의 집중력을 붙잡아 두기에 충분했다. 주인공인 헨젤과 그레텔 역을 각각 맡은 김선정과 김수진은 몇몇 이중창의 절묘한 표현들을 끌어내는데는 조금 부족했으나 전반적으로 안정적인 호흡으로 노래를 이어갔다. 이들의 연기력은 이날 공연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 중 하나였는데, 특히 헨젤 역의 김선정은 동작, 표정, 목소리 등에도 가난한 소년의 게스투스가 들어있는 연기를 보여줘 깊은 인상을 남겼다.
마녀의 집에서 펼쳐지는 3막의 스토리는 흥미로운 부분인데도 객석의 집중력은 점점 떨어졌다. 어린이들이 긴 시간에 지루함을 느끼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으나 이 공연이 동화책의 결말처럼 흥미를 끌지 못했던데는 몇가지 이유가 더 있을 것이다. 번역 자막에 사용된 어휘나 어투는 좀 더 가다듬어질 필요가 있었다. 동화책 따옴표 안의 말처럼 쓰여질 수는 없었을까. 우리에겐 조금 낯설지만 ‘헨젤과 그레텔’의 정서와 약간 엉성하게 짜여진 베테의 원작 대본도 지루함의 요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위기와 결말의 순간을 더 흥미롭게 구성하지 못한 연출 역시 아쉬운 부분이다. 모래도 사금으로 보이게 하는 게 연출의 임무일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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