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어른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어린 왕자'

(연합뉴스) 생텍쥐페리의 소설 제목에서 따온 '어린 왕자'(감독 최종현, 제작 피플&픽처스ㆍ앤알커뮤니케이션)는 그 소설만큼이나 맑고 순수한 마음을 동경하는 영화다.

무엇보다 탁재훈의 변화가 눈에 띈다. '나의 결혼원정기'의 각본과 조연출을 맡았던 최종현 감독이 자신의 감독 데뷔작에서 코믹 캐릭터로 배우 경력을 쌓아온 탁재훈을 눈물 많고 까칠한 남자로 변모시켰다. 그에게서 '슬픈 눈'을 봤다면서.

탁재훈은 작심한 듯 90분 내내 단 한번도 밝게 웃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가슴에 쓰라린 상처를 안고 사는 가장이 돼 7살 꼬마에게서 새로운 사랑으로 치유받는 과정을 보여준다.

아내와 아들을 교통사고로 먼 곳으로 떠나보낸 후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남자와 시한부 삶을 살지만 언제나 밝은 7살 남자아이의 만남. 이런 설정의 영화가 갖고 있는 전형성의 구도를 이 영화라고 해서 피해가지 못한다. 우연한 만남은 갈등을 야기하고 서로 손을 내미는 화해의 순간에 다시 고비가 찾아오지만 이를 사랑으로 극복해가는 과정 역시 신파적이다.

그러나 '소리'라는 특별한 매개체와 제목의 느낌을 잘 살려주는 일러스트가 빈약할 수 있는 내용을 풍성하게 해주는 보완 장치가 됐다.

아역 배우가 등장하는 영화를 볼 때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이 땅에는 어찌 이리 '실력 있는' 아역배우가 끊이지 않는지. 영웅 역의 8살 소년 강수한 군은 맑은 눈동자 하나만으로도 관객을 무장해제시킨다.

지향점이 분명하고, 그 뜻이 착해 아쉬운 점을 말하기 민망하지만 한 편의 영화로서 성긴 구석이 많다는 건 인정해야 할 듯하다. 어린 관객을 포함해 가족을 타깃으로 한 영화인 까닭에 상영 시간 90분을 넘지 않으려는 편집은 이야기를 뚝 잘라놓기까지 한다.

월드컵으로 유명해진 찰스가 영화의 웃음을 책임지려 하지만 이호재, 전무송, 박원상 등 베테랑 연기자들 사이에서 버거움이 커보인다.

그러나 영화의 소리를 책임지는 폴리아티스트라는 생소한 종철의 직업을 소년 영웅과 연결시키려는 시도는 신선하고, 영화의 내용을 단 몇 분으로 압축해 종철이 만들어내는 소리와 함께 선사하는 일러스트 스타일의 애니메이션 역시 참신하다.

탁재훈의 변모에 놀랄 관객이 많겠지만 배우로서 그의 각오를 새삼 인식시키는 계기가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그에겐 성과로 남을 영화다.

영화에 소리를 입히는 폴리아티스트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 종철은 동료들의 온갖 사정을 봐주며 일에 몰두해 정작 자신의 가정은 소홀하다. 모처럼 아내와 아들과 휴가가기로 한 날조차 아무 거리낌 없이 약속을 깨고 아내와 큰 싸움을 벌인다.

일하는 동안 수십 번 오는 아내의 전화를 무시하던 날 아내와 아들은 교통사고로 숨지고 만다.

폐인처럼 삶을 자포자기한 종철은 어느 날 가벼운 접촉 사고로 꼬마 영웅과 선옥을 만난다. 종철에게 막무가내로 병원에 데려가 달라고 말하는 선옥으로 인해 영웅과 종철의 우연한 만남이 계속된다.

재활원에서 살고 있는 영웅은 심장이 비대해지는 선천적인 병을 앓고 있어 언제 죽음과 맞닥뜨릴지 모르는 상황. 세상의 온갖 소리를 만들어내는 종철은 천부적으로 소리에 대한 감각을 타고 태어난 영웅을 보며 죽은 아들을 떠올린다.

아들에게 못다한 사랑을 영웅에게 쏟기로 한 종철은 어머니 죽음조차 지키지 않았던 의사 아버지로부터 가슴 찢기는 말을 듣는다.

꼬마 상어를 바다에 데려다 준다는 약속을 해달라는 영웅과 또 한 생명의 죽음을 지켜봐야 하는 종철의 안타까운 마음. 종철은 영웅에게서 무엇을 얻었을까.

소리라는 이색적인 소재를 내세운 이 영화는 원조 폴리아트스트이자 감초 배우로 활약한 김벌래 씨를 특별출연시켜 또 다른 의미를 둔다.

17일 개봉. 전체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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