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는 제목도 제목이려니와 주연배우들의 면면, 포스터의 이미지, 메가폰을 잡은 감독이 영화 '싱글즈'를 연출했던 인물이라는 점 등을 고려할 때 2003년 히트작 '싱글즈'의 아류작같은 냄새를 짙게 풍긴다.
그리고 막상 영화를 보면 그런 선입견이 크게 어긋나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재삼 느끼게 된다.
'뜨거운 것이 좋아'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 여성용 영화다. 영화 속 남성들은 대부분 대상화되고 타자화될 뿐 주체적인 인격으로 승화하지 못한다.
국내 극장가를 주도하는 성ㆍ연령층이 20~30대 여성이란 점을 감안하면 '뜨거운 것이 좋아'의 타깃 설정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류의 영화는 이미 '싱글즈' '처녀들의 저녁식사' '어깨너머의 연인' '용의주도 미스신' 등을 통해 무수히 봐온 만큼 낯설지가 않다.
담배를 입에 달고 살고, 개방적인 섹스를 즐기고, 뻔뻔스러울 만큼 자기 권리 주장에 적극적이고, 자아실현을 위해 온갖 난관을 돌파하며 고군분투하는 여성형은 처음 등장했을 때는 신선했지만 이제는 이미 그것 자체가 충분히 익숙한 또 하나의 전형이 돼버렸다.
27살의 시나리오 작가 아미(김민희)는 잘나가는 인테리어 디자이너지만 동생을 하숙생 취급하는 언니 영미(이미숙), 사춘기에 접어든 고교생 조카 강애(안소희)와 함께 살고 있다.
아미는 늘 잔소리를 해대는 언니와 조카에게 '입봉만 하면 독립하겠다'고 큰소리치지만 말처럼 잘 되지는 않는다.
뜻대로 되는 일은 없고 우울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가진 거라곤 음악에 대한 열정밖에 없는 남자친구 원석(김흥수)을 찾아가지만 위안은 커녕 머리만 더 아파온다.
이도저도 귀찮아진 아미는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못이기는 척 나간 맞선 자리에서 썰렁한 유머만 빼면 갖출 것은 다 갖춘 회계사 승원(김성수)의 자신감 넘치면서도 젠틀한 모습이 낯설면서도 왠지 끌린다.
두 남자 사이에서 사랑이냐, 조건 좋은 결혼이냐를 놓고 고민에 빠진 아미는 위태로운 줄타기를 이어가지만 일과 마찬가지로 연애 역시 생각만큼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한편 아미의 언니 영미는 후배의 부탁으로 무대미술을 맡게 된 연극 극단에서 만난 연하남 경수(윤희석)의 저돌적 대시에 못 이겨 뜨거운 하룻밤을 보낸다. 이어 평탄치 않은 그와의 관계를 위태롭게 이어가지만 잘나가던 영미의 인생에 느닷없이 폐경이라는 불청객이 찾아든다.
여자로서의 인생이 끝난 게 아닌가 싶어 조바심이 난 영미는 사소한 일에도 짜증을 내기 일쑤고 경수의 적극적 대시도 더 이상 미덥지가 않다.
언제나 바쁜 엄마와 툭하면 좌절모드인 이모를 챙기느라 맘편할 날이 없는 강애 역시 남모를 고민을 안고 있었으니, 다름아닌 남자친구 호재(김범)와의 스킨십이다.
궁금한 것도 많고 해보고 싶은 것도 많은 사춘기 소녀 강애는 브라질에서 온 친구 미란(조은지)의 특급 조언을 받아 호재와의 스킨십 성사 작전에 돌입하지만 정작 호재와의 관계는 맹숭맹숭한 교착상태에 빠지는 대신 동성친구인 강애와 미란 사이에 야릇한 기류가 형성된다.
영화는 한 지붕 아래 사는 10대와 20대, 40대 여성의 3색(色) 연애담을 나름대로 특색있고도 흥미롭게 풀어가지만 자못 신선하고 쿨하게(혹은 뜨겁게) 보이고 싶었을 제작진의 의도와는 달리 1990년대 이후 홍수를 이루고 있는 한국적 페미니즘 영화의 전형성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어 다소 식상한 느낌이다.
여관방에 틀어박혀 줄담배를 입에 달고 사는 처녀 시나리오 작가의 캐릭터도 그렇거니와 연하남과 뜨거운 하룻밤을 보낸 뒤 '우리 내일부터 쌩까자'고 하는 40대 싱글맘의 어법도 이제는 그다지 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처녀들의 저녁식사'(1998년) 탄생 이후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류의 영화에 대한 수요는 항상 어느 정도 있으리란 희망을 제작진이 갖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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