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유쾌한 해학극 '그때 거기 있었습니까?'

(서울=연합뉴스) 루마니아 영화 '그때 거기 있었습니까?'(감독 코르넬리우 포룸보이우)는 1989년 차우세스쿠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민주 혁명을 소도시에서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평범한 하루로 재구성해 보여주는 블랙 코미디다.

이 영화는 익살스럽되 품위가 있다는 해학(諧謔)의 사전적 정의를 스크린에 그대로 풀어낸다. 주인공들의 대화는 '혁명이 정말로 있었습니까?'란 직접적이고 도발적인 질문으로 시작해 유쾌하고도 실없는 코미디로 바뀐다. 그럼에도 카메라가 주인공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등장 인물들의 인간적인 관계를 묘사하는 감수성이 두드러진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무겁고 심각한 분위기로 일관하거나 거대한 담론으로 관객을 가르치려는 자세를 내버렸다는 것. 그러면서도 '혁명이 실제로 일어났는가' '혁명 전후로 개인의 삶은 얼마나 달라졌는가'란 핵심적인 질문을 끝까지 지켜간다는 점이다.

스크린에는 혁명을 직접 보여주는 흔한 회상 장면 하나 나오지 않는다. 다만 허풍쟁이 방송국 사장, 술주정뱅이 역사교사,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살아가는 노인 등 개성 있는 캐릭터들의 이합집산만으로도 극은 무리 없이 흘러간다.

영화를 관통하는 메시지와 유머 역시 책 속의 역사가 아니라 시민들의 삶과 생활에 뿌리를 뒀다. 덕분에 루마니아의 역사와 정세를 잘 모르는 외국 관객이라도 웃음을 터뜨릴 수 있을 듯하다.

난장판 토크쇼가 순식간에 끝나버리고 등장인물들이, 또 관객이 일상으로 생각을 돌리면서 겪게 될 공허함은 도시의 골목 골목을 비추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으로 평온하고 따스하게 메워진다.

1989년 12월 22일 혁명의 중심지였던 수도 부쿠레슈티에서 동쪽으로 멀리 떨어진 작은 도시 바슬루이. 정확히 16년이 흘러 크리스마스를 사흘 앞둔 날, 지역 방송국 사장이자 생방송 토크쇼 진행자인 비르질은 쇼에 출연하기로 했던 사람들이 줄줄이 펑크를 내자 고민에 빠진다.

주정뱅이 역사교사 마네스쿠는 아침에 월급을 받자마자 빚을 갚고 나니 빈털터리가 된다. 해마다 겨울이면 산타클로스 역할을 하며 아르바이트를 뛰는 에마노일 할아버지는 고장 난 TV와 씨름을 하고 있다.

비르질은 급한 대로 토크쇼에 마네스쿠와 에마노일 할아버지를 섭외한다. 주제는 '우리 동네에도 혁명이 있었는가'다. 그러나 마네스쿠가 독재 정권이 무너지는 장면이 방송으로 생중계된 그날 낮 12시 8분 이전부터 광장에서 시위를 시작했다고 주장하면서 토크쇼는 점점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포룸보이우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이 영화는 지난해 제59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가장 훌륭한 신인 감독의 영화에 주어지는 황금카메라상을 받았다.

내년 1월 3일 개봉. 관람 등급 미정.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