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니콜 키드먼과 대니얼 크레이그, 에바 그린 등 호화 캐스팅을 자랑하는 '황금나침반(The Golden Compass)'은 '반지의 제왕' 제작사인 뉴라인 시네마가 새롭게 만든 판타지 블록버스터다.
영국 작가 필립 풀먼의 동명 판타지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으며 '반지의 제왕'으로 전 세계에 판타지 신드롬을 일으켰던 뉴라인 시네마가 1억8천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반지의 제왕'의 영화(榮華)를 재현하겠다고 나섰다.
지난 주 미국에서 먼저 개봉한 '황금나침반'은 이렇다할 경쟁작이 없었던 덕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긴 했으나 예상 밖의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면서 '반지의 제왕'의 영화를 재현하려는 뉴라인 시네마의 야심에 찬물을 끼얹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 영화는 호화 캐스팅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밀도나 캐릭터의 흡인력, 주제의 강렬한 상징성 등에서 '반지의 제왕'에 못 미친다. 원작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영화는 그렇다.
예언 속에 언급된 자에게만 진실을 알려준다는 황금나침반과 황금나침반을 손에 쥔 소녀 라라(다코타 블루 리처드), 절대 권력을 쥐고 세계를 지배하려는 악의 세력 '매지스테리움'과 매지스테리움을 움직이는 콜터 부인(니콜 키드먼) 등은 뭔가 상징성을 갖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그 의미는 뚜렷이 드러나지 않는다.
이 영화가 '반지의 제왕' 혹은 '나니아 연대기'와 비슷한 듯이 보이지만 뭔가 색깔이 분명치 않고 애매모호하게 보이는 이유는 이 같은 복선과 내재된 상징성을 관객에게 제대로 전하지 못한데 있다.
감독과 제작진은 영화를 보러온 관객이 이미 원작 소설을 읽었으리라고 전제하고 있는 걸까. 그렇다면 큰 착각이 아닐 수 없다.
캐릭터의 매력과 개연성도 의문이 간다. '반지의 제왕'의 프로도에 해당하는 주인공 라라는 당돌하기 그지없는 12살 짜리 소녀.
절대권력의 사악한 음모와 방해공작을 이겨내고 위대한 사명을 달성해야 하는 숙명을 짊어지는 기존의 판타지 주인공들이 대부분 예외적으로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캐릭터의 소유자인 반면 라라는 어린애다운 순수성을 찾아보기 어려운 당차고 되바라진 성격이다.
라라를 지켜나가는 건 순수한 영혼의 힘이 아니라 어른을 등쳐먹을 정도의 영악하고 간교한 기지와 재치다.
그것이 기존의 판타지 주인공들과 다른 차별점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왠지 낯설고 정감이 안간다. 왜 라라가 예언에 언급된 인물이어야 하는지 당위성에 대한 설명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리우드 판타지 영화답게 특수효과는 꽤 볼 만하다.
17세기 영국의 풍경을 연상시키는 귀족적 분위기의 매지스테리움이 지배하는 세계나 신비의 물질인 '더스트'를 찾기 위해 라라가 여정을 떠나는 북극의 풍경은 시각적 만족감을 안겨준다.
특히 라라를 보호하는 흰곰 이오렉이 아이스베어 왕국의 왕과 목숨을 걸고 대결하는 장면은 시각적 특수효과의 백미를 맛보게 한다.
거대한 곰들의 몸이 부딪치는 육중한 타격감과 박진감 넘치는 운동감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라라의 보호자 중 하나이자 하늘을 날아다니는 헥스족의 리더인 세라피나 페칼라(에바 그린)는 영화 막판 전투장면에서 잠깐 등장하지만 에바 그린이라는 매혹적인 여배우의 매력을 드러내기에는 너무 짧은 순간이어서 아쉽다.
'황금나침반'에는 '데몬'이라는 이름을 가진 동물 형태의 수호정령이 모든 사람에게 하나씩 따라다니는 등 유독 동물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는 영화가 결코 어린이를 위한 단순한 동화가 아닌데도 어린이를 위한 동화인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기여한다.
18일 개봉. 전체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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