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상혁 ㈜맑은공기 대표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돌파구는 있습니다. 사업도 상호 신뢰 관계입니다. 우리기업, 우리 상품에 대한 믿음을 보여주면 상대방 역시 신뢰를 지키게 돼 있습니다. 소비자들과의 관계도 그런 것입니다.”
이른바 ‘잘먹고 잘살자’라는 웰빙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0년, 당시만 해도 건강을 생각하는 생산물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생소한 단어에 열광했던 소비자들 역시 쏟아져 나오는 생산물들을 무분별하게 습득할 뿐이었다. 어느 누구도 그것이 진실인지 여부는 판단하지 못했다. 우리의 기술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기술의 필요성에 공감했던 ㈜맑은공기 도상혁 대표는 국내 최초로 몸에 해로운 오존은 발생하지 않고, 반대로 몸에 이로운 음이온 발생은 최대인 음이온 모듈 국산화를 실현한 장본인이다.
◇우연한 만남이 기회로= 언론사에 십수년간 몸담았던 도 대표는 지난 2001년 취재차 일본을 방문했다 기이한 한 사람을 만났다.
음이온만 가지고 환자를 치료하는 사람이었다. 당시만 해도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웰빙산업과 실버산업이 10년은 앞서 발달돼 있었다.
그렇게 해서 음이온에 관심을 갖게 된 도 대표는 국내에 들어와서야 우리나라에 자체기술이 없다는 것을 알게됐다. 어떤 아이템으로 창업할 지를 고민해 왔던 도 대표에게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다.
그는 단순히 일본의 산업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친환경적이고 웰빙적인 의미에서는 음이온 관련 사업이 오래도록 관심받을 것이란 비전을 보았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웰빙문화가 이슈가 되는 시점이 오고 있고, 시장이 확산될 것을 확신했다는 도 대표는 기존에 있던 업체들이 이에따른 기술적 노하우가 없다는데 착안, 국산화 기술을 먼저 발굴하는데 주력했다.
◇우리기술만이 살길이다= 생산 초기 “우리만의 기술이 있어야 한다”는데 집중했던 도 대표는 제품을 판매하기 이전 R&D 인력부터 충원했다.
웅진이나 삼성, LG, 샤프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대기업이 웰빙바람을 타고 많은 생산품을 쏟아냈다. 그러나 그 기업들도 자체적인 기술 없이 대부분 일본에서 직수입 한 기술을 사용하거나 대만 등의 제품을 수입해 판매했다.
판매 과정도 다단계 위주로 변해 갔다. 공기청정기 한대가 100만원이 넘었다. 공기청정기 하면 옥매트나 정수기처럼 다단계 판매로 이뤄진다는 인식이 팽배해졌기 때문이다.
이런 폐단을 없애기 위해 우리기술 개발에 집착했던 도 대표는 판매도 하기전이라 자금이 있을리 없었다.
그래서 도 대표는 친분이 있는 연구원들을 찾아다니게 됐다. 전담 연구원을 두는데 한계를 느꼈기 때문에 임시로 단편적인 프로젝트만이라도 도움을 얻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맑은공기는 어렵게 국산 음이온 모듈 개발에 성공하게 됐고, 최초로 오존이 방출되지 않는 무오존 인증을 받아냈다.
◇시련은 깊어지고= 어렵사리 우리기술 개발에 성공했지만 도 대표의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막대한 자금을 기술 개발에 쏟아붓다 보나 보니 회사가 더 힘들어졌다.
일만 열심히 할줄 알았던 도 대표는 날마다 회사를 위해 돈을 빌리러 다니는 아내에게 가장 미안했다고 한다.
또 막상 제품을 생산해 내도 믿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기술에 목말라했던 국내시장에 막상 우리기술을 내 놓아도 선뜻 쓸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제품이 정직하다고 외쳐도 외면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직까지 대기업이라는 이름만 믿고 상품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고심하던 도 대표는 상품을 차별화 하기위해 가격도 낮추고, 기술력은 높이고, 디자인도 새롭게 했다.
◇보따리 장사에 나서다= 자사 제품에 자신이 있었던 도 대표는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보따리 장사에 나섰다.
한국무역협회로부터 해외 바이어들의 정보를 받아 직접 안내 메일을 보냈다. 누가 언제 어디서든 만나자고 하면 서슴없이 제품을 들고 찾아갔다.
그런 끝에 한두 곳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고 독일까지 날아가 직접 상품을 보여주고 계약을 맺었다.
당시 독일 바이어는 공기청정기의 경우 오존 발생이 항상 문제였는데 맑은공기의 제품은 그런 걱정을 안해도 된다는 것에 무척이나 놀랐다고 한다.
또 대부분의 한국기업들이 반 덤핑 하는 경우가 많아 맑은공기의 제품까지 가볍게 평가받고 있었다. 심지어는 맑은공기 제품과 대놓고 비교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내 최초로 무오존 인증을 받은 맑은공기의 제품을 따라오기란 처음부터 힘든 일이었다.
그동안의 노력이 비로소 결실을 보는 순간 이었다.
◇환율피해도 없다= 이렇게 인정받기 시작한 맑은공기의 제품은 환율변동 같은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게 됐다.
초창기 원달러 환율이 1천100원정도 했을때 계약을 시작한 도 대표는 이후 환율하락으로 많은 피해를 겪기도 했다.
다시 도 대표는 보따리를 싸서 바이어들에게 찾아갔고, 환율정책 관계자들을 찾아갔다. 그리고 설득에 설득을 거듭해 1달러를 우리돈 1천원으로 거래하는 1:1 계약을 체결했다.
맑은공기의 기술력을 믿은 해외 바이어들이 앞장서 나서 준 것이다.
해외바이어들도 분명 원화 거래를 선택한 것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정직한 제품으로 맺어진 바이어와 업체의 상호신뢰 관계는 이같은 결과로 나타나게 됐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돌파구는 있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고, 실망시키지 않는 믿음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도 대표는 “제품은 고객과 믿음의 결과”라고 믿으며 지금도 세계시장을 향해 전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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