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장편영화 '은하해방전선' 주연 맡아
(서울=연합뉴스) 29일 개봉한 독립장편영화 '은하해방전선'에서 윤성호 감독의 분신 같은 남자 주인공 영재의 목표는 감독 데뷔지만, 목적지로 향하는 과정의 가장 중요한 관문은 헤어진 오랜 여자친구 은하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눈길 닿는 곳마다 그림자처럼 맺히는 은하는 영재의 판타지지만, 잊을 만하면 인터넷 메신저에 접속하는 은하는 영재의 현실이기도 하다. 주위를 환히 밝힐 만큼 매력적이지만 한때는 내 옆에 붙어 있었던 사람의 냄새가 나야 하는 캐릭터다.
개봉 직전 만난 서영주는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지으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은하가 스크린 밖으로 그대로 걸어나온 듯한 모습이었다. 감독이 은하 역을 맡을 배우로 '미인은 아니지만 미인을 압도하고, 무명이지만 기성에 밀리지 않는 얼굴'을 생각했고, 서영주를 캐스팅하고 만족했다는 일화에 쉽게 수긍이 간다.
그러나 그는 배역을 맡기로 한 뒤에도 은하라는 캐릭터에 대해 감을 잡지 못했다고 했다.
"영재가 누구냐고 물었을 때는 '윤성호(감독 본인)'라는 답이 나오는데 은하가 누구냐고 물으면 '서영주'라는 거예요. 알아서 하라는 거죠. 은하가 '은하해방전선'의 상징적인 역할이니 제대로 해야 하는데 의문은 해결이 안 되고…. 나중에 들춰보니 제가 시나리오에 이렇게 낙서를 해놨더라고요. '영재의 시각으로 보면 은하는 외계인이구나'라고."
영재와 말다툼하는 은하가 등장하는 대목에선 서영주가 맞춘 지 10년 이상 지난 뿔테 안경을 쓰고 있고, 영재와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은하에서는 서영주가 학교 '한국의 소리' 수업 시간에 배운 노래 '북창이 맑다커늘'을 조용하고도 구성지게 부른다.
"다시 생각해 보면 아쉬움이 남아요. 감독님에게 설명을 원했지만 없었고, 제가 알아서 하다 보니 은하의 말투나 어조, 행동을 서영주의 원래 모습대로 하게 된 거죠. 내 모습 그대로가 아닌 창조적인 은하가 됐으면 더 좋았을 텐데."
1980년생인 서영주는 아직 대학교 2학년 학생이다. 그 전에는 무엇을 했는지 묻자 "다른 미대의 조각과에 다녔는데, 제가 보기보다 스케일이 큰 작품을 만들었답니다"라는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대학교 때 연극 동아리에 가입하고 싶었는데 여러 사정상 가지 못했어요.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어렸을 때 무대에 섰던 걸 좋아했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 학예회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의 스크루지 역만 두 번 맡았다니까요. 미대 실습에서도 그냥 앉아서 뭘 만들어 내는 것보다 여러 재료와 몸을 함께 이용해 뭔가 하는 걸 좋아했어요. 그게 퍼포먼스라는 건 줄도 모르고 말이죠."
그는 결국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해 연기를 전공하게 됐고, "기회가 돼 잘 만난" 단편영화 '잘돼가? 무엇이든'(감독 이경미)으로는 2004년 제3회 미쟝센 단편영화제에서 연기상을 받았다. 그리고 당시 봉준호ㆍ박찬욱 감독과 심사위원과 수상자로 만난 인연으로 '괴물'과 '친절한 금자씨'에도 출연했다.
올 여름에는 인디스토리가 주최하는 '금요단편극장 배우열전'에 초청될 정도로 이미 '단편영화의 스타' 대접을 받고 있는 그에게 작품 몇 편에나 출연했는지 묻자 손가락을 꼽아보더니 "얼마 안 되는 줄 알았는데 벌써 단편만 10편이 넘는다"고 답했다.
"얼굴에 독특한 표정이 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걸 너무 자유분방하게 놔두지 않고, 점검하고 배우면서 어떤 형태를 완성해 가고 싶어요. (어떤 분야에서 일하고 싶은지 묻자) 미술이라면 이제 어떤 미술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있는데 연기는 아직 모르겠어요. 연기 자체는 좋은데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하고 싶은 건지…."
'은하해방전선'은 지난달 제12회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에 초청돼 좋은 반응을 얻었고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의 첫 번째 개봉작으로 내걸렸다. KT&G 상상마당의 기획 프로젝트 '작은 영화 보기 캠페인'의 작품으로도 선정됐다. 올 연말 가장 주목받는 독립장편영화인 셈.
작품은 주목을 받고 있지만 서영주는 언론과 인터뷰를 하는 것이 "관객에게 설익은 밥을 떠먹이는 느낌이 들어 민망하다"고 했다.
"작품에 '업(up)'이 되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은하해방전선'에 이런 대사가 나오기도 하는데요, 영화를 도넛에 비유하곤 해요. 영화는 결국 좋은 도넛을 만드는 과정인 거죠. 핵심은 가운데를 잘 뚫는 데 있는 거고, 모양만 다양하게 바꿔 가며 재미있게 먹으면 되는 거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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