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가희 기자 =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
언론에 공개되는 시사회를 개봉 이틀 전에야 열 만큼 철저한 비밀을 유지한 채 14일 미국과 동시 개봉하는 영웅 서사시 '베오울프'는 할리우드의 탐욕스런 먹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1천500년 이상 이어온 영웅 서사시마저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찜'을 한 순간부터 문학성과 예술성은 온데간데없고 팝콘을 씹으며 즐길 오락거리로 변하고 만다.
'앤젤리나 졸리의 눈부신 나신'은 말그대로 '눈부신 나신'이다. 영화를 통틀어 3~4차례밖에 등장하지 않지만 누구 못지않은 존재감으로 자신의 위력을 알린 앤젤리나 졸리의 나신은 황금빛 액체에 감싸여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3D의 기술이 과연 어느 영화나 긍정적인 효과를 거두지 않는다는 사실도 일깨운다. 시사 전 누군가의 "이거 애니메이션 아녜요?"라는 황당한 질문이, 영화를 보는 동안 농담이 아닌 사뭇 진지한 질문이었다는 것 역시 깨닫게 됐다.
3D 영상 속의 움직임은 마치 3D 애니메이션과 같다(애니메이션업계에 미안한 발언…). 단순한 입체 영상의 선은 영웅의 면모, 영웅과 괴물의 전투, 흉측한 괴물의 형상을 재현하기에 역부족이다. 차라리 일반 실사영화로 만들었다면 장엄함이 살아났을 것이란 아쉬움이 두고두고 든다.
그러나 할리우드가 졸리 외에 레이 윈스턴, 앤서니 홉킨스, 존 말코비치 등 쟁쟁한 배우들을 3D 영상 안에 가둬놓았을 때는 분명한 시장성을 염두에 뒀기 때문일 터. 작은 화면의 컴퓨터가 아닌 TV 게임같은 새로운 오락거리로 영화가 등장했음을 분명히 알리는 영화다. 관객의 기호까지 앞장서 유도하는 꺼림칙한 그들의 식탐이다. '수퍼맨 리턴즈'에서 약간 맛을 보여줬던 입체 화면의 '성공 가능성'을 작정하고 끌어왔다.
그리스나 로마의 영웅 서사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베오울프'는 작자 미상의 스칸디나비아서사시다. 6세기 덴마크를 배경으로 한 전쟁에 관한 이야기로 3천 줄의 글로써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다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이 작품은 '호빗'과 '반지의 제왕'을 쓴 J.R.R 톨킨에 의해 새로운 평가를 받게 된다.
수많은 괴물을 처치하고 왕국을 통일한 흐로스가(앤서니 홉킨스 분)의 성에 흉측한 괴물이 나타난다. 괴물은 밤마다 주민과 군인을 살인하고 납치하며 먹어치운다. 흐로스가는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고 있고, 어느 날 바다 건너에서 베오울프(레이 윈스톤)가 당도한다. 흐로스가는 베오울프에게 괴물을 해치우면 황금빛 드래곤 술잔을 상으로 주겠다고 한다.
베오울프는 맨몸, 맨주먹으로 괴물 그렌델과 맞서 싸워 해치운다. 그런데 그렌델은 인간 세계를 장악하려는 물의 마녀(앤젤리나 졸리)와 그의 힘을 빌려 왕국을 지배하려 한 흐로스가 사이에서 태어난 괴물. 물의 마녀는 아들을 잃자 베오울프의 전사들을 모두 잔인하게 살해하는 복수를 한다.
베오울프는 물의 마녀를 처치하기 위해 계곡으로 들어가고 그곳에서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을 하고 등장한 물의 마녀의 제안을 받는다. 흐로스가와 똑같이. 베오울프 역시 도저히 물리칠 수 없는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베오울프가 물의 마녀를 해치웠다고 큰소리치지만 흐로스가는 드래곤 술잔을 잊어버렸다는 말을 듣자 그도 자신과 같은 거래를 했음을 알아차린다. 이제야 저주에서 풀려났다며 자살하는 흐로스가.
세월이 흘러 늙은 베오울프 앞에 물의 마녀가 영웅을 보살펴주던 기한이 끝났음을 알리는 드래곤 술잔이 등장한다. 그리고 황금색 드래곤 괴물이 베오울프의 성을 공격해온다. 자신의 죗값을 치르려는 베오울프는 다시 홀로 물의 마녀에게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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