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차다. 이른 아침과 밤이면 어김 없이 옷깃을 여미는 요즘 곳곳마다 전시가 한참이다. 매년 전시일정으로 바쁜 수원미술전시관의 11월도 들고 나가는 작품들로 북적인다. 13일부터 19일까지 열리는 전시는 좀 특별하다. 밤을 주제로 한 서양화가 김혜진·이석기가 2인전을 열고 충실한 사생작업을 거친 수원사생회전 그리고 서양화가 최현식의 천진난만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달빛 머금은 밤…그리고 도시야경
◇같은밤 또 다른밤
김혜진과 이석기는 ‘밤’을 그리는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어둠은 지상의 모든 것들을 잠재운다. 사물의 형태를 모호하게 만들어 정체성을 상실케 한다. 있음과 없음을 넘나들며 사물은 소통하고 그 소통 가운데 기존에 없었던 새로움을 창조한다.
전시 주제처럼 밤을 다룬 두 작가는 밤이란 공통분모 속에 서로 다름을 추구한다. 김혜진은 어두운 밤의 풍경을 그렸다. 그러나 사물의 형태는 더욱 명확해지고 잠자던 대상은 빛을 발할만큼 활동적이다. 나무에 걸린 초승달과 수면에 비친 초승달이 없다면 신새벽의 어디쯤 가고 있을 듯 사물들은 또렷한 형태로 등장한다. 그에게 밤은 일체의 침묵을 연출한 무대다. 밤은 단순하고 느리게 사는 게 무엇인지 알려주고 작가는 그 가르침을 충실히 화폭에 옮겼다.
이석기는 도시야경을 그린다. 세련된 조명이 뿜어내는 빛은 화려한 상가를 응시하고 사람들의 발걸음은 가볍고 경쾌하다. 그러나 화려함 뒤엔 적막이 감돈다. 조명이 내려꽂힌 주변은 어둠이 잠식했다. 결코 빛과 합쳐질 수없는 어둠. 밝음과 어둠이 극명한 대비를 보인다.
이석기는 작가노트에서 “밤거리의 수 많은 사람들은 이야기를 남기고, 아련한 기억은 추억으로, 그 추억은 왜곡돼 뇌리에 투영된다”고 말했다. 갖가지 사연들을 품고 사는 도시인들의 추억은 아름답거나 그렇지 않은 것들로 충만하다. 오랜 동안 남아 있지 않은 기억의 끄트머리를 잡고 굴절된 기억을 재현한다.
‘변화무쌍한 자연’ 화폭에 깃들다
◇제18회 수원사생회전
변화무쌍한 자연을 답사하며 그 오묘함을 작품에 담는다. 지난 1989년 창립한 이후 꾸준히 전시를 열며 창작에 몰두했다. 이형호 회장은 굵은 붓칠로 강변과 인접한 절벽을 그렸고, 김금자는 담쟁이가 가득찬 담벼락과 농가의 뒷배경을 선보였다.
포구의 정경을 시원스레 담은 김우철, 풍년이 깃든 가을 들녘을 반추상으로 옮긴 김현, 쏟아지는 폭포수의 순간을 멈춘듯 생동감을 부여한 박선자 등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새·해·꽃 소재로 동심 넘나들어
◇최현식 개인전
‘숲’ ‘겨울 남해’ ‘그리움이 비처럼 내리고’ ‘새의 노래’ ‘새와 낙타’ 작품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정겹고 사랑스런 느낌이 물씬 풍긴다. 그는 파스텔을 주로 사용한다. 부드러운 질감의 파스텔은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단순화시킨 새와 해, 꽃 등이 소재들로 등장한다.
그의 작품은 동심을 넘나든다. 간단한 선으로 사물의 형태를 만들고 그에 걸맞는 색감을 부여했다. 그는 사물의 특성을 절묘히 잡아내는 어린아이같이 순박한 마음으로 사물에 다가선다. 문의(031)228-3647
/이형복기자 bok@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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