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소통과 단절의 변곡점 '경계'

(서울=연합뉴스) 작가주의 영화는 대개가 지루하지만 지루하다고 다 작가주의 영화라고는 할 수 없다.

대중예술의 가장 큰 미덕은 재미인데, 재미를 포기한 영화는 대중예술이기를 포기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재중동포 영화감독 장률의 영화들은 지향점이 분명하다. 그는 상업적 코드로서의 영화를 별로 만들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다.

그의 영화는 대중예술이라기보다는 순수예술에 가깝다. 다시 말하면 장률은 작곡가 알렉산드르 스크랴빈이 피아노 소나타 '검은 미사'를 통해서, 혹은 화가 조르주 루오가 판화 연작 '미제레레'를 통해서 구현하고자 했던 예술세계를 영화를 통해 구현하고자 하고 있다.

전작 '망종'을 통해 인상적인 작품세계를 선보였던 장 감독은 올해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인 '경계'에서도 '망종'에서 펼쳐보였던 세계관을 한층 발전시켜 보여준다.

'경계'에는 '망종'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조선족 모자 최순희와 창호가 똑같은 이름으로 나온다. 대신 신분은 조선족에서 탈북자 모자로 바뀌었다. 독특한 이미지의 여배우 서정이 최순희 역을 맡았고 아역배우 신동호가 창호 역으로 출연했다.

몽골과 중국 국경 인근의 사막과 초원 사이에 사는 유목민 남자 항가이(바트을지)는 갈수록 심화되는 초원의 사막화로 사람들이 모두 마을을 떠나는데도 홀로 나무를 심으며 마을을 지키고 있다. 아내와 딸마저도 병 치료를 위해 울란바토르로 떠나버리고 그는 혼자 남아 나무를 심으며 자리를 지킨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그의 집 앞에 젊은 여자와 어린 사내아이가 서있는 것을 발견한다. 항가이는 그들이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지도 알지 못하지만 자신의 게르(내몽고의 민속가옥)에서 함께 살기 시작하고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며 그들은 자연스럽게 함께 묘목을 심고, 마유주를 마시고, 소똥을 줍는다.

그렇게 하나의 가족이 돼버린 그들에게는 몽골과 북한이라는 서로 다른 국가도, 단 한 마디 통하지 않는 언어도, 지금까지 살아온 공간의 경계도 별 의미가 없는 듯이 보인다.

서로에게 친밀감을 느껴가던 어느 날 밤, 항가이는 다정스레 자신의 손을 잡아끄는 최순희를 와락 끌어안고 관계를 가지려 시도하지만 최순희는 그를 매정하게 뿌리친다.

하지만 연정을 품은 항가이와의 관계를 거부했던 최순희는 항가이가 울란바토르로 떠난 뒤 나타나 자신을 겁탈하려 했던 젊은 몽골 사내에게 몸을 맡기며 마음의 장벽을 스스로 허무는 모순된 행동을 보인다.

영화는 엇갈리는 항가이와 최순희 모자를 통해 우리의 삶 구석구석에 운명처럼 덧씌워진 경계의 모습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경계'에서는 전작인 '망종'과 마찬가지로 인상적인 정사 장면이 몇 차례 등장한다.

항가이와 잠깐 여행온 몽골 여인과의 사막 위에서의 강렬한 정사신과 최순희와 그를 겁탈하려는 몽골 청년과의 정사신이 그것인데, 장 감독에게 정사란 남녀간의 근원적 소통의 의미뿐 아니라 힘 없는 소수민족 여인이 겪어야만 하는 고초의 상징으로서의 의미도 갖고 있다.

'경계'는 건조하고 느린 영화다. 현란하고 스피디한 전개에 익숙해있는 관객에게는 충분히 지루할 수 있다.

하지만 몇 안되는 등장인물의 절제된 대사와 조건에 의해 강요된 침묵, 내몽고의 끝없이 펼쳐진 초원과 사막, 하늘과 구름이 던져주는 관조적 미장센은 이 영화가 인간의 소통과 단절, 그리고 희망에 대한 상당한 미학적 성취를 이루고 있음을 넌지시 일러준다.

서정과 신동호의 어설픈 북한 사투리는 다소 거슬리지만 한국어를 모르는 외국인이 영화를 감상하는 데는 별 문제가 되지 않을 듯.

11월8일 개봉. 관람등급 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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