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1970년대 대표적인 저항가수이자 작곡가인 김민기가 “자신의 1집 음반을 음반저작권법 상 아무런 권리도 갖고 있지 않은 K씨 등 3명이 승낙도 없이 음반을 재발매하려 하고 있다”며 재발매하지 못하도록 서울중앙지법에 가처분신청을 냈다. 문제의 발단은 1971년 발매된 김민기 1집 음반기획에 참여한 K씨가 임의로 재발매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이 음반에 수록된 10곡 중 8곡이 김민기가 작곡·작사했고 나머지 2곡이 다른 사람 작품으로 K씨는 이들 2명한테 계약을 맺어 권리를 양도받아 다시 P음악출판사에 음반제작 권리를 양도하고 이것을 CD로 재발매하겠다는 내용의 e-메일을 음악출판사로 받았다.
필자는 당시 기자로 활동하면서 김민기 1집이 발매된 과정을 소상하게 알고 있다. 그즈음 대한민국은 통기타 음악(포크음악) 붐이 한창 일어나고 있던 시절로 명동 YWCA회관 청개구리홀에서 매주 ‘청개구리 모임’이 열려 서유석, 한대수, 양병집, 쉐그린, 투코리안스, 박인희, 양희은 등 1세대 포크가수들이 여기서 배출됐고 김민기도 도비두란 듀엣으로 참가하고 있었다. 당시 기독교방송이 ‘영840’이란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최경식 PD(가수 최양숙의 오빠)는 김진성 AD에게 김민기 이야기를 듣고 구경을 갔다 김민기에 반해 음반을 내주기로 작정하고 소개해준 음반사가 은하수레코드였다.
그러나 은하수레코드는 일명 ‘해적판’만 전문으로 만드는 불법 음반사였다.(‘해적판’이란 미군부대로부터 흘러나온 LP를 불법 복제해 제작한 제품). 아무튼 은하수레코드로서는 김민기 음반으로 크게 재미를 보는가 했더니 김민기가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바람에 압수수색을 당해 마스터링 테입(레코드 제작에서 푸레스 작업을 하기 위한 최종 단계 테입)을 빼앗겨 소각됐고 음반사 허가는 취소당했다.
김민기 1집은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아침이슬’을 비롯, ‘꽃피우는 아이’, ‘작은 연못’, ‘해방가’, ‘친구’, ‘내나라 내겨레’ 등 김민기 자작곡과 번안곡 ‘우리 승리하리라’(We Shall Over) 등이 수록됐다 그런데 이 음반이 문제가 된 건 처음에는 ‘아침이슬’이 아니라 ‘꽃피우는 아이’로 1972년 김민기가 서울대 문리대 신입생 환영회에 초청받아 ‘꽃피우는 아이’를 부른 게 화근이 됐다. 겨레의 꽃 무궁화를 꺾는다는 내용이 발단이 되는 바람에 김민기는 이 일로 동대문경찰서에 끌려가 취조받았고 그는 이때부터 피신을 다녀야만 했다. 이어 ‘작은 연못’에서 노랫말 가운데 연못 속 금붕어 두마리가 싸워 한마리가 먼저 죽고 썩은 물로 나머지 금붕어도 죽어간다는 내용이 남북의 상황을 은유적으로 묘사한 불온한 가사라는 게 이유였고 뒤이어 ‘아침이슬’도 문제가 됐다. 반면 ‘친구’나 ‘내나라 내겨레’ 등은 군사정권에 의해 건전가요로 뽑히기도 했다.
이같은 사유로 이 음반은 판매금지가 되자 일부 매니아들 사이에 은밀히 거래가 이뤄져 당시 음반 1장당 2천원인데 반해 김민기 음반은 암거래 시장에서 100만원에도 없어 팔지 못할 정도로 희귀 앨범이 됐다. 1987년 해금된 후 S레코드사가 한정판으로 단 한차례 재발매했었다. 그러나 이것도 제작자가 김민기의 허락을 얻지 않고 만든 불법 음반이었다.
통상적으로 음반의 소유권은 제작자가 갖는 게 일반적인 관행이지만 제작자가 음반제작과정에서 스튜디오 사용료나 세션맨 연주비 등을 지불하지 않아 음반사에 채무관계가 있으면 소유권이 음반사로 넘어가고 때로는 제작자가 판권을 다른 음반사에 팔기도 한다. 그런데 김민기 앨범의 오리지널 음원(마스터링 테입)이 소각된 마당에 원 제작자가 음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지가 과연 타당한지 의문이고 오리지널 음원 없이 복각 음원으로 마스터링했다면 절도죄에 해당되며 여기서 당시 기획에 참여했던 K씨가 어떤 이유로 소유권을 얻게 됐는지가 애매하다. 김민기측은 1971년 음반 발매 당시 저작권법은 1957년에 만든 법에 적용받아 진행과 섭외만 담당한 K씨가 어떤 권리도 갖고있지 않다고 항변한다.참고로 1987년 제정된 현행 저작인접권은 과거 작곡·작사·편곡자들의 권리는 물론 가수·연주자 등을 포함한 모든 실연자들에게까지 권리를 보장해주고 있다.
아무튼 과거 음반제작자들은 가수·작곡·작사가들에게 소주 몇잔 사주고 권리를 독점해온 게 사실이다. 이번 김민기 1집 음반도 이런 전근대적인 과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문제의 1차적 책임은 임의로 판권을 행사한 K씨에게 있고 P출판사도 K씨한테 김민기로부터 동의서 등 확인절차를 무시하고 섣불리 양도를 받은 잘못이 있다고 간주된다./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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