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영화제 결산> 커진 외형 부실한 운영

한국영화 침체 여파 썰렁한 분위기

"세계적 영화제로 도약하려면 초심으로 돌아가야"

(부산=연합뉴스) 아시아의 대표적 영화제로 자리잡은 부산국제영화제(PIFF)가 출범 12회째를 맞아 삐걱거리고 있다.

역대 최대 규모인 64개국 275편의 영화가 초청되고 역시 역대 최다인 66편의 월드프리미어가 공개되는 등 외형은 커졌지만 곳곳에서 운영상의 미숙을 드러내며 "부산영화제가 벌써부터 자만심에 빠진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오고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영화의 급속한 발전과 궤를 같이하며 성장해온 부산영화제는 그러나 최근 한국영화의 거품이 순식간에 꺼지면서 침체기에 접어들자 덩달아 위기를 맞고 있는 모습이다.

◇행사 규모 커졌으나 곳곳에서 잡음

12일 폐막하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는 개막작인 중국 펑샤오강 감독의 '집결호'와 폐막작인 일본 안노 히데아키·마샤유키·쓰루마키 가쓰야 감독의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 신극장판:서(序)' 등 64개국 275편의 영화가 초청됐다.

이 같은 규모는 역대 최대로, 1996년 제1회 영화제 때의 31개국 169편의 약 두 배에 이른다.

또 초청작 가운데 PIFF를 통해 세계 처음으로 공개되는 월드프리미어도 역대 최다인 66편이었으며 자국 밖에서 처음 공개되는 인터내셔널 프리미어가 26편, 아시아에서 처음 공개되는 아시아 프리미어가 101편에 달했다.

주요 행사와 영화 상영도 부산 해운대와 남포동 일대로 국한됐으나 올해부터는 서면과 대연동의 영화관까지 합세해 더 많은 영화와 행사들이 관객과 만날 수 있었으며 한층 편리해진 예매시스템 덕분에 올해는 지난해보다 3만4천 석이 늘어난 12만 석이 예매됐다.

그러나 이처럼 겉으로 드러난 화려한 외형과는 달리 내부적으로는 곳곳에서 문제점을 노출한 운영 미숙과 한국영화계 침체로 인한 썰렁한 분위기, 예년만 못한 스타급 배우들의 영화제 참석, 일부 자원봉사자들의 고압적 태도 등으로 얼룩졌다.

6일 열렸던 영화 'M' 기자회견은 영화제 측의 운영 미숙이 드러난 대표적 사례.

올해 부산영화제에서 공개된 영화 중 가장 큰 관심을 모았던 'M' 기자회견은 인기 스타인 강동원이 1년여 만에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자리이자 이명세 감독의 신작이라는 점에서 많은 취재진이 몰릴 것으로 충분히 예견되는 상황이었는데도 영화제 측에서 터무니없이 협소한 공간을 잡아 파행으로 진행됐다.

결국 부산영화제 측은 기자회견 파행 운영에 대한 공식 사과문을 영화제 홈페이지에 게재하기에 이르렀다.

영화음악계의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가 의전 소홀 등에 불만을 품고 개막 파티에 불참한 뒤 일찍 출국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온 것도 영화제의 명성에 흠집을 남겼다.

비록 영화제 측은 모리코네의 행사 불참은 고령에 따른 피로감 때문이며 출국 일정 역시 당초 예정됐던 대로 이뤄진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또 정작 영화에는 별 관심이 없고 자기 홍보를 위한 레드카펫 행사에서의 사진 찍히기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은 일부 연예인들의 무성의한 태도와 일부 자원봉사자들이 보여준 고압적이고 불손한 태도도 문제점으로 꼽혔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어느덧 아시아의 대표적 영화제로 자리잡은 부산영화제가 하나의 문화권력으로 자리잡으면서 안일함과 오만함이라는 덫에 빠진 것 같다"고 꼬집었다.

◇한국영화 침체 쓰나미 영화제에도 여파

부산국제영화제가 12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은 한국영화의 급속한 성장에 힘입은 바 크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2000년대 들어 한국이 아시아 영화시장의 중심지로 급부상하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제인 부산영화제와 부산영화제에서 소개되는 한국영화에 대한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됐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를 기점으로 한국영화에 끼었던 거품이 순식간에 꺼지면서 한국영화계가 극도의 침체기에 접어들자 부산영화제도 그 여파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관객과 전문가들의 관심을 끌 만한 출품작이 크게 줄어들고 영화제를 빛내주는 스타급 배우들의 참석률도 예년에 비해 낮아지면서 올해 부산영화제는 행사 기간 내내 썰렁한 분위기에 시달렸다.

주요 영화투자ㆍ제작사들도 전반적인 흥행 부진에 따른 경상비 절감 차원에서 예년에 영화제 기간에 개최했던 각종 행사를 대폭 축소하거나 생략하면서 영화제의 썰렁한 분위기 조성에 일조했다.

아시안필름마켓(AFM)을 통한 교류도 예년만큼 활발하지 못해 '아시아 영화시장의 메카'로서의 한국의 입지가 급속히 축소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았다.

거의 매년 부산영화제에 참석해온 영화감독 김성수 씨는 "부산영화제에 오면 외국의 여느 영화제와 차별화되게 도시 전체가 거대한 축제장이 된 것 같은 들뜬 분위기가 인상적이었으나 올해는 유난히 썰렁한 것 같다"면서 "아무래도 한국영화 침체 분위기의 영향이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문제점 거울 삼아 내실 다져야

국제적인 권위와 재정상의 안정 등 비교적 견고한 입지를 구축한 부산국제영화제가 안일함과 매너리즘이라는 덫에서 벗어나 세계적인 영화제로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겸손함과 열정으로 충만했던 초심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부산영화제 성장에 결정적인 지원군 역할을 했던 한국영화 시장이 최근 극도의 침체기를 맞으면서 반성과 재편의 계기를 맞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앞만 보고 달려왔던 부산영화제 역시 올해 드러난 각종 문제점을 거울 삼아 내실 다지기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영화평론가는 "영화제가 권력화되는 것은 큰 문제이며 부산영화제의 경우 어느 정도 자리를 잡다보니 안일함과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것 아니냐는 느낌이 든다"면서 "진정한 세계적인 영화제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초심으로 돌아가 새로운 미래를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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