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사모아 악동들의 소동 '사모안 웨딩'

(서울=연합뉴스) 김가희 기자 = 인생에서 중요한 통과의례인 '결혼'을 주제로 한 영화 중 수작이 꽤 있다. 여성 심리에 대한 탁월한 묘사와 함께 그리스의 전통을 잘 담아낸 '나의 그리스식 웨딩'을 비롯해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웨딩 싱어' 등이 꼽힌다.

우리에게는 조금 낯선 사모아를 배경으로 한 뉴질랜드 영화 '사모안 웨딩'은 '나의 그리스식 웨딩'과 닮아 있다. 결혼에 관한 사모아의 전통 의식이 네 남자를 통해 유쾌하게 펼쳐진다.

할리우드의 매끈한 백인 남자배우에게 익숙한 관객에게 사모아 원주민 스타일이 물씬 배어나는 다소 투박한 외모의 남자 네 명이 벌이는 소동극은 배우와 풍광만으로도 이색적이고 새롭다. 여기에 낙천적인 그들의 기질을 대번에 알 수 있는 상황 전개는 영화가 여러 문화를 수용하는 통로로 작용하는 점을 새삼 일깨워준다.

뉴질랜드 영화라면 피터 잭슨 감독의 '반지의 제왕' 시리즈와 특수효과로 유명한 웨타 워크숍 정도가 한국 영화팬들에게 알려져 있다. '사모안 웨딩'은 이들이 세계 영화 관객에게 심어놓은 첨단 이미지와 달리 별다른 특수효과가 사용되지 않아 화려한 영상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진부하지만 생생한 캐릭터 묘사를 통해 순박한 감성으로 재미를 준다.

크리스 그레이엄 감독은 '사모안 웨딩'으로 장편 영화에 데뷔했다.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답게 영상과 음악의 감각적인 조화가 영화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부담 없을 정도로 생각의 깊이를 채우면서 대중적인 코드를 찾아내 뉴질랜드에서는 박스오피스를 휩쓸었다.

영화 시작 타이틀이 올라가며 카메라는 마치 음악에 맞춰 춤을 추듯 움직인다. 힙합 리듬에 박자를 딱딱 맞추는 정지 영상도 괜찮은 즐길 거리.

사모아의 전통과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것도 이 영화가 주는 팁이다. 결혼식과 피로연부터 교회가 주민의 정신적인 안식처 기능을 하는 동시에 마을을 이끄는 곳이라는 점, 먼 친척간의 연애와 결혼이 허용된다는 점 외에도 식탁과 클럽까지 여러 곳에 카메라가 멈춘다.

도대체 이렇게 다 커서도 철없는 남자라니. 덩치만 컸지 정말 아이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 남자들, 그러나 악의라곤 전혀 없이 "진짜 사나이라면…"을 외치고 다니는 이들을 보면 한심하면서도 웃음이 나온다. 저마다 각기 다른 문제점을 안고 있고 마침내 이를 해결하는 과정을 담고 있어 결혼이 진정한 의미의 성인식이라는 걸 되새기게 한다.

마마보이 앨버트, 바람둥이 마이클, 알코올 중독 세파, 폰팅 중독 스탠리. 이 네 친구는 결혼식마다 엉망으로 만들어놓는 악동(이라고 하기엔 너무 나이가 들었지만)들이다. 마을에서는 이들 사고뭉치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 급기야 마을의 어른인 교회 목사는 마이클의 동생이자 나머지 친구들도 친동생처럼 아낀 시오네의 결혼식에 출입금지령을 내린다.

사나이라면 꼭 빠질 수 없는 결혼식이어서 이들은 목사에게 여자와 함께 가겠다고 제안하고, 목사는 "그냥 여자가 아니라 사랑하는 여자친구여야 한다"는 전제를 단다. 자, 이제 여자 찾기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여자에게 말 한마디 못 꺼내는 소심한 앨버트는 자신을 바라보는 타냐를 눈치채지 못하고 먼 곳에서 여자를 찾으려 하지만 실패. 백인 여자와 섹스를 즐기는 마이클은 모든 여자들에게 "우린 그런 관계 아니다"라며 결혼식 참석을 거절당한다.

사랑하는 여자 레일라니와 동거 중인 세파는 여유만만이지만 친구들과 술만 마시면 외박을 밥 먹듯 하는 데 질려 레일라니가 집을 뛰쳐나가는 사태를 겪는다.

현실에서는 여자를 만나지 않고 폰팅만 일삼는 스탠리는 왠지 마음이 통하는 라티파의 전화만 기다리지만 라티파는 번번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 와중에 앨버트의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 먼 친척인 프린세스를 소개하지만 정작 프린세스는 앨버트의 애간장만 녹이고 마이클을 유혹한다.

점점 더 확대돼가는 사태는 결혼식을 불과 하루 앞두고 정리되기 시작한다. 영화를 보면 뻔히 알게 될 결말이지만 그 과정이 자연스러운 것도 이 영화의 강점이다.

19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kahee@yna.co.kr

http://blog.yonhapnews.co.kr/kunnom/

(끝)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