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린 돈 임의 횡령해 징역 8월, 법정구속
(연합뉴스) `천재'라 불리는 한 젊은 음악인이 있었다.
음반 제작때 가수가 부른 노래 목소리 외에 작곡된 노래의 반주를 꾸미는 믹싱 엔지니어로서는 국내 최고를 자랑했던 김모씨.
김씨의 `전설'은 197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평소 음악을 좋아했던 그는 대학 입학 이후 친구들과 유명 보컬그룹의 전신이었던 한 그룹의 베이스 멤버로 활동했다.
1978년 그룹을 이끌고 참가했던 가요제에서 이후 선풍적인 인기를 끈 노래로 수상하며 전도유망한 음악인으로서의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그는 멀티미디어녹음시대를 개척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뉴욕 주립대의 녹음ㆍ믹싱 전공학과의 정원은 20명으로 1천여명이 응시한 가운데 동양인으로는 유일하게 합격했다. 졸업도 수석이었다.
이후 뉴욕에서 음향 엔지니어로 활동하면서 마돈나, 마이클 볼튼, 앨튼 존 등 세계적인 가수의 음반녹음에 참여하며 실력을 키웠다.
국내에서는 조성모, 이승철, 김종서 등 우리나라의 내로라 하는 톱가수들의 음반이 그의 손끝에서 빚어졌다.
그가 그동안 다듬은 곡이 수천곡에 달한다.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를 비롯해 1996년 플라시도 도밍고 내한공연 실황음반을 프로듀서까지 맡아 작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야말로 `음을 다듬는 조각가', `마이더스의 손'이었다.
2000년 들어 그는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하기 위해 사업을 시작했다.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인터넷 녹음스튜디오 시스템을 갖춘 회사를 설립해 인터넷시대 새로운 음향녹음에 뛰어든 것.
하지만 음반업계의 불황과 함께 시련이 닥쳐왔고, 회사 운영자금 마련을 위해 1억6천만원의 임차보증금을 담보로 사채업자에게 9천만원을 빌렸으나 회사 사정이 나아지지 않았다.
급한대로 보증금을 돌려받았으나 갚지 못했고 급한 불을 끄는데 사용했다.
상황은 계속해서 악화됐고, 급기야 건강은 악화돼 만성신부전증 등으로 일주일에 2번 정기적으로 혈액투석을 받아야 하는 신세가 됐다.
아내와 이혼해 홀로 아이 셋을 키워야 했다.
하지만 사채업자가 가만히 있을 리 없어 김씨를 원금과 이자 등 1억2천여만원을 갚지 않은 혐의로 고소했고 횡령죄로 불구속 기소됐다.
서울중앙지법은 최근 피해금액이 상당한데다가 현재까지 변제하거나 피해회복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고 변제할 능력도 없다는 이유로 징역 8월을 선고하고 김씨를 법정구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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