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의 양심 시사만화가들의 전설
1987년 영국 런던 첼시에서 한 남자가 총에 맞았다. 나지 알 알리(Naji Al Ali). 그의 나이 51세로 그는 팔레스타인의 양심이지 지성으로 평가받던 인물. 그는 카누니스트(만평가)였다. 그가 죽은 다음 해에 ‘국제 신문 발행인 연합(FIEJ)’은 표현의 자유에 기여한 언론이에게 주는 ‘골든펜’ 상을 그에게 수여했다.
시사만화가들 사이에서 ‘전설’. 펜과 그림으로 부조리에 맞서 싸웠던 나지 알 알리.
전국시사만화협회와 (사)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 팔레스타인 평화연대, 한국시사만화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공동으로 ‘팔레스타인의 양심, 나지 알 알리’展을 지난달 5일부터 18일까지 서울 인사동 평화공간에서 열었다.
주최 측은 이번 전시를 나지 알 알리는 촌철살인의 예봉과 독특한 표현 양식, 그리고 팔레스타인의 비극을 고스란히 몸에 새겼던 그를 통해 이제 막 우리가 관계 맺기를 시작한 팔레스타인, 나아가 아랍권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준비했다고 밝혔다.
그는 1936년 태어나 1948년 11세 때 이스라엘의 점령에 팔레스타인에서 쫓겨난 이후 남부 레바논의 난민촌에서 성장해 레바논 중앙정보부를 모욕했다는 죄로 감옥에 갇힌 이후 정치적 표현을 담은 그림을 감옥 벽에 그리기 시작했다. 그 이후 중동을 둘러싼 모든 권력자들을 불편하게 했던 나지 알 알리는 투옥과 이주를 밥 먹듯 하며 살아야 했다. 하지만 그는 죽는 날까지 한 번도 창작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글=김창우기자 <사진제공> 평화공간 사진제공>
{img5,l,180}“군인들의 폭력에 포위됐던 때도, 이스라엘의 폭격 속에서 숨을 죽이던 때도, 나는 결코 공포, 실패, 절망감을 느끼지 않았고 절대 항복하지도 않았다. 나는 카툰 속에서 군인과 맞닥뜨렸고, 꽃, 희망, 총알을 함께 그렸다. 그래, 그래 희망이 언제나 본질이었다. 베이루트에서의 내 작품은 나를 난민촌의 가난과 비참함에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해주었다.”
<약 력>약>
1936년 갈릴레의 나자레스와 티베리아 사이에 위치한 ‘알 샤자라’에서 태어남
1948년 난민촌인 ‘아인 알 헬웨’에 정착
1960년대 레바논 미술학교에서 공부, ‘알 탈리아 매거진’에서 일함
1970년대 유명한 레바논 ‘알-사파 신문의 편집장
1983년 쿠웨이트의 ‘알 카바스’신문에 카툰을 연재
1985년 런던으로 망명한 후 ‘알 카바스’ 신문에 카툰 연재
1987년 런던에서 피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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