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자는 무한책임” 강철 주무르는 ‘철의여인’

㈜금진메탈 대표 / 신광자

신광자 ㈜금진메탈 대표이사는 어려움과 시련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지금의 회사를 지켜냈다. 대기업의 납품 업체에서 이제는 지역의 탄탄한 입지를 가진 중소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 신 대표는 회사와 운명을 같이 하며 희망과 좌절을 겪었다. 평범한 가정주부에서 지역을 대표하는 중소기업의 경영자로 변신하기까지 그녀의 성공스토리를 들어본다.

#인생의 전환점

㈜금진메탈의 시작은 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 대표는 남편이 다이캐스팅을 전문으로하는 조그마한 중소기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그리 큰 걱정없이 아이 둘을 돌보며 살아가는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그러나 창업한지 채 5년도 못돼 뜻하지 않은 부도를 맞았다. 함께 열심히 뛰어준 직원 절반 이상을 구조조정하고, 남편은 회사와 가족을 위해 재기에 힘썼다. 결국 다시 힘들게 일어서기는 했지만 97년 IMF 직전에 회사는 다시 위기를 맞았다. 가만히 집에만 있기에는 조바심이 생겼다. 그 때문에 남편의 일을 조금이라도 거들겠다는 생각에 직접 팔을 걷고 나섰다. 이렇다할 사회 경험도 없었지만 결혼전 중소기업의 경리로 잠시 일한 경험을 살려 회사의 재무업무부터 맡았다. 하루이틀 일을 하다 그녀는 내친김에 영업 현장도 직접 누볐다. 직접 트럭을 몰고 새벽 4~5시까지 납품 업체를 돌며 배달까지 했다. 회사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 하나로 잠도 아꼈다. 두 아이의 엄마였기에 집안일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새벽에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일하다말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을 챙기고. 이런 생활을 수년간 반복하며 정말 열심히 살았다.

#주부가 CEO로

어느덧 회사도 안정을 찾아갔다. 기술력도 인정받아 삼성전자의 에어컨과 냉장고 관련 부품을 납품하게 됐다. 주문량이 급격히 늘면서 밤낮없이 공장을 돌려야했다. 그러던 중에 뜻하지 않게 삼성전자가 99년 광주로 이전했다. 남편이 운영하던 의왕공장도 함께 광주로 자리를 옮겼다. 지금 생각하면 이 일이 지금의 ‘신광자’를 있게한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이다. 남편을 따라 한동안 광주에 머물렀지만 그녀 눈에는 회사의 성장을 위해서는 광주뿐 아니라 경기도에서도 기반을 유지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남편을 설득해 의왕 공장을 자신이 해보겠다고 했다. 처음에 만류하던 남편도 끝내 신 대표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신 대표는 혼자 의왕으로 돌아왔다. 남편으로부터 경영권을 인수받아 회사를 수원으로 이전하고 2003년 1월 1일 ㈜금진메탈의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절망이 희망으로

초기부터 다이케스팅 분야에서 기술과 경험을 쌓아온 인력들을 대거 영입하면서 승승장구했다. 그동안 남편과 함께 일해온 터라 적응도 그리 어렵지만은 않았다. 입소문을 통해 업계에 ㈜금진메탈의 기술력이 알려졌고, 회사도 가습기, 전자렌지 등 전자제품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주요부품을 생산하며 삼성전자의 2차 협력업체로 탄탄하게 성장했다. 그러던 중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철썩같이 믿고 있던 1차 협력업체가 부도를 냈다는 것이다. 10억원에 이르는 어음은 고스란히 휴지조각이 돼 버렸다. 8개월 넘게 방황하며 고민했다. 그동안 고생한 아쉬움도 있었지만 회사를 정리할까도 생각했다. 가족들에게도 미안했고, 직원들에게는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그때 그녀를 다잡아 주고 용기를 북돋워준 사람들 역시 가족과 직원들이었다. 지금도 그들은 늘 옆에서 신 대표의 든든한 동반자이자 후원자였다. 신 대표는 다시 뛰었다. 기업의 조직을 슬림화하고 불필요한 지출을 최대한 줄여 나갔다. 위기관리 능력을 보이며 CEO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차츰 회사는 회복하고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이런 고난을 이겨내자 이내 중국 등 동남아 국가의 저가 부품에 맞써 힘든 싸움을 벌였다. 2002년에는 해외진출까지 모색했다. 납품 업체를 따라 중국 청도에 진출하려는 계획도 있었지만 납품가격 문제로 포기했다. 그러나 오히려 전화위복이 돼 국내에서는 드물게 기술력이 필요한 각종 부품의 금형을 주문받아 제공하고 있다. 지금은 국내에서는 다이캐스팅을 통한 전문 제조업체로서의 입지를 확실히 굳히고 있다.

#울고 웃은 15년

신 대표 스스로도 그녀 자신의 삶이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누가 들으면 낯뜨거운 소리라 할 수 있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간혹 정말 자신이 장하다 싶을때가 있다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나이 50을 넘겨 남편은 광주에서, 신 대표는 수원에서 벌써 8년째 늦깎이 주말 부부로 생활하고 있다. 이런 고생 때문인지 지금은 어느정도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신 대표는 회사를 경영할수록 자신의 부족함과 사업이 아닌 사회를 위해 뭔가를 해보고 싶어했다. 몇년전부터 지역의 봉사단체에서 봉사활동도 하고 최근에는 수원의 한 대학 최고경영자과정까지 수료했다. 혹시나 경영에 도움이 될까 싶어 지역에서 열리는 유명인사들의 강연회도 빠짐없이 챙기는 열정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는 항상 미안한 마음이 크다. 일한다는 핑계로 뒷바라지에 소홀했던 것이 늘 마음 한구석을 짓누르고 있다.

심 대표는 회사의 운명과 궤를 같이 해오고 있다. 아이들을 키울때나 남편을 내조할때도.

회사에서 제품이 날개 돋힌 듯 팔릴 때, 직원들은 환하게 웃었지만 기업 개선작업으로 직원들이 회사를 떠날때는 누구보다도 가슴이 아팠다. 이제 규모만 큰 회사를 고집하지는 않는다. 올해 회사의 매출 확대보다는 수익률 향상과 원가절감을 통한 내실경영에 초점을 맞춰놓고 있다. 앞으로는 제품의 설계에서 생산, 품질 보증에 이르기까지 완벽한 품질, 고객의 만족에 주력할 생각이다. 이를 위한 끊임없는 연구·개발에 지속적으로 정진해 나갈 계획이다.

#강한 기업을 꿈꾼다

㈜금진메탈의 핵심 경쟁력은 모든 종류의 부품을 생산할 수 있는 기술력과 노하우. 이 때문에 삼성전자에 이어 업계에서 꽤 알려진 이름의 업체들과도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스러질듯 스러지지않는 ㈜금진메탈은 외풍에 시달리지 않고 롱런하고 있다. 이는 업체들이 요구하는 니즈를 충분히 수용하고, 디자인 변화에 빠르고 능동적으로 대응, 제품의 품질과 가치를 극대화했기 때문이다. 슬림화된 조직 역시 기업체질 개선은 물론 수익성 향상에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장기적으로 내실있는 강한 중소기업으로의 성장을 장기 목표로 하고 있다. 이제 신 대표는 시장에서 검증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명실상부한 업계 최고의 자리를 넘보며 새로운 성공 신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조영달기자 dalsarang@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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