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의 '인생은 아름다워'의 감동에 푹 빠졌던 경험을 소중히 간직한 사람들에게 또 한번 사랑의 아름다움을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다.
'인생은 아름다워'가 가족, 특히 자식에 대한 사랑에 웃음과 눈물을 버무려 두고두고 벅찬 여운을 만끽하게 했다면 '호랑이와 눈'은 연인에 대한 절실한 사랑을 위트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전한다.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은 그 자신이 이탈리아인 특유의 호들갑스러움 속에 진심을 표현하는 배우다. 다른 배우가 만약 이런 연기를 했다면 다소 과장됐다는 부담감을 가질 수 있으나 베니니는 자신의 연출 방향에 가장 적확한 방법으로 표현해낸다.
극단의 상황에서 탁월한 유머 감각으로 지고지순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은 '인생은 아름다워'와 궤를 같이 한다. 세상을 향한 그의 긍정적인 시선에 보는 이도 힘이 나고, 밉지 않은 허풍은 지친 삶을 달래준다. 사랑에 관한 한 그는 그 누구보다 믿음을 갖고 있는 듯하다.
시인이 주인공이어서일까. 대사는 한 편의 시다. 이탈리아어의 리듬감을 살린 대사는 그 언어를 모르는 관객에게도 듣는 기쁨을 준다. 시를 읊조리는 베니니의 그 소란스러움이라니. 그조차도 미소짓게 하는 게 그의 능력이다.
'인생은 아름다워'의 감동이 너무 컸던 이들에게 '호랑이와 눈'은 예측가능한 행동으로 인해 다소 그 감동의 진폭은 떨어질지 모른다. 알면서도 당하는, 그러나 결코 싫지 않은 감정을 시종 갖게 한다.
'인생은 아름다워'와 마찬가지로 전쟁터의 한복판에서 빛을 발하는 사랑을 그린 '호랑이와 눈'은 더욱 철학적이며, 다양한 세계관이 밑에 깔려 있다. 종교와 철학, 문학이 적절히 섞이며 인생의 깊은 맛을 느껴가는 성숙미가 담겨 있다.
'호랑이와 눈'은 '인생은 아름다워' 팀이 다시 모여 만들었다.
베니니의 일생의 반려자이자 영화적 동지인 니콜레타 블라스키는 이번에도 베니니의 연인으로 등장한다. 베니니의 데뷔작을 제외한 모든 작품의 시나리오를 공동으로 집필한 빈센조 세라미가 참여했으며, '인생은 아름다워' 때부터 베니니와 호흡을 맞춰온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영화음악가 니콜라 피오바니도 가세했다.
영화 초반 톰 웨이츠가 부르는 'You can never hold back Spring'의 선율은 투박하지만 깊은 울림을 전해준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부터 프랑스 실험영화까지 다양한 장르에 몸담고 있는 장 르노는 떠들썩한 베니니의 곁에서 흥분을 가라앉히는 역할을 한다.
차를 세워둔 곳조차 기억하지 못해 늘 허둥대는 시인 교사 아틸리오. 그는 속옷 바람에 한 여자와 결혼식을 올리는 꿈을 자주 꾼다.
친구 푸와드의 강연회에서 매일 밤 꿈에서 그와 결혼하는 여인 비토리아를 만나게 된 아틸리오는 자신에게 적극 대시하는 미모의 동료도 마다하며 비토리아를 쫓아다닌다.
푸와드와 전쟁터인 이라크로 간 비토리아가 건물 붕괴로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소식을 들은 아틸리오는 우여곡절 끝에(이 과정 역시 참 '베니니스럽다') 이라크에 도착한다. 반창고조차 제대로 없고 파리가 들끓는 병원에 누워있는 비토리아를 향한 아틸리오의 눈물겨운 간병기가 시작된다.
언제 병원에 약이 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민간요법으로 푸와드와 함께 약을 만들고, 산소호흡기가 도움이 된다는 의사의 말에 포탄을 뚫고 잠수부의 산소통을 구해오기도 한다. 영양제를 구하기 위해 적십자도 들어오지 못하는 길을 뚫고 가며 그 과정에서 미군에게 테러범으로 오인받기도 한다.
지극정성이 통했을까. 비토리아가 의식을 되찾았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푸와드를 찾아가지만 푸와드는 나무에 스스로 목을 매달았다. 또한 아틸리오 역시 병원에 되돌아오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과연 비토리아는 그의 '수호천사'가 아틸리오였다는 걸 알게 될는지.
영화는 의미 있는 반전을 준비하고 있다.
전쟁터의 첨단 무기가 마치 별처럼 반짝이는 밤. 아라비안 나이트를 동경하며 삶을 사랑한 푸와드가 어떤 이유에서 죽음을 택했는지 별다른 설명은 없지만 이심전심 왠지 느껴지는 건 베니니 감독이 관객에게 하고픈 또 다른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말을 듣지 않는 낙타와 고장나는 오토바이, 푸와드의 시신을 감싸는 바람조차 한 편의 시 속에 들어있는 절박한 단어 같다.
13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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