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어지러운 사회, 뜨거운 청춘 '여름궁전'

(연합뉴스) 중국 러우예(婁燁) 감독의 '여름궁전'은 현기증이 날 정도로 어지러운 사회에서 뜨거운 청춘들이 벌이는 방황과 사랑에 대한 보고서다.

중국 옌볜(延邊)조선족자치주 투먼(圖們)에 사는 시골 소녀 유홍(레이하오)은 베이징(北京)에 있는 대학에 합격해 가족과 남자친구를 두고 상경한다. 유홍은 대학에서 자유분방한 여학생 리티(후링)와 남학생 루오구(장샨민), 잘생긴 남학생 저우웨이(궈샤오둥)를 만나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뜬다. 유홍은 그 중에서도 자유롭고도 이기적인 저우웨이에게 푹 빠진다.

대학에는 일상생활에서나 성적으로나 충동적이고 열정적인 분위기가 퍼져 있다. 사회 개혁에 대한 열망도 커지고 대학생들은 민주주의와 자유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시작한다.

그 속에 있는 유홍과 저우웨이의 사랑은 혼란스럽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벗어날 수 없는' 사랑에 빠진 이들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다시 보듬어 주기를 반복한다. 유홍과 저우웨이의 관계가 순항하지 못하고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대학생들은 민주화를 요구하며 톈안먼(天安門) 광장으로 몰려간다.

'여름궁전'은 표면적으로는 젊은 연인들의 강렬하고 처절한 러브 스토리지만 사회와 정치를 빼놓고 이들의 사랑과 방황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

1980년대 말 중국에는 자유민주화와 사회 개혁의 바람이 불고 이제 막 20대에 들어선 청춘들은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이리저리 흔들린다. 비틀거리는 정도가 아니라 온몸을 던진다. 그러면서도 '더 사랑하게 될 것이 두려워' 앞으로 나가지 못한 채 주춤하는 사이 외부의 힘에 의해 바람의 방향이 바뀌게 된다.

영화는 대학을 떠난 주인공들을 10년 이상의 세월에 걸쳐 추적한다. 대학이란 청춘의 관문을 통과하고 격변기를 온몸으로 겪으면서 이들은 나이를 먹었지만 마음은 과거를 버리지 못하고 여전히 서성이고 있다.

영화는 동시에 중국의 세계화 또는 서구화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90년과 그 이후의 독일 베를린을 통해 동시대의 세계를 보여준다.

이 영화는 완벽한 서사구조를 갖추고 있지는 않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중반부에 배치됐고 주인공들이 학교를 떠난 이후를 묘사하는 에필로그가 1시간 가까이 진행된다. 러닝타임도 134분으로 길고 곳곳에서 늘어지는 느낌을 준다. 톈안먼 사태는 기대만큼 직접적이지 않고 흐릿하게만 그려진다.

다만 미칠 듯이 불안하고 위태로운 청춘들의 심리를 따라가며 어지러운 시대 속에 사그라져 가는 젊음과 사랑에 대해 사색해 보는 데 의미가 있는 영화다.

중국 정부는 이 영화의 중국 상영을 금지한 데 이어 러우예 감독에게 5년간 제작 금지 명령을 내렸다. 표면적인 이유는 러우예 감독이 정부에 제대로 필름을 보여주지 않고 칸 국제영화제에 출품했다는 것이지만 국제사회는 이 영화에 묘사된 텐안먼 사태와 노골적인 섹스 장면을 이유로 보고 있다.

이 영화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상영되면서 주목을 받기도 했다.

13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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