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제프리 길모어 EIDF 심사위원장

美 선댄스 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10번째 방한

(연합뉴스) "아시아 영화 작가들은 한계점(edge)에 도전하는 실험정신을 보이고 있습니다. 최근 20년간 볼 때 아시아가 할리우드에 미친 영향이 지대합니다."

세계적인 인디영화 축제 미국 선댄스 영화제의 집행위원장으로 18년간 명성을 떨치고 있는 제프리 길모어 위원장이 아시아 영화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27일 개막한 2007 EBS 국제다큐멘터리페스티벌(EIDF)의 심사위원장을 맡아 내한한 그는 이날 오전 서울 도곡동 EBS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EIDF는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수준 있는 작품들을 상영하며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면서 "이번 영화제의 심사위원을 맡게 돼 영광"이라고 밝혔다.

9월2일까지 열리는 EIDF에서 길모어 위원장은 경쟁부문 심사와 함께 28일에는 '미국 독립다큐, 어디로 가는가?'를 주제로 마스터 클래스도 펼친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국을 다시 찾은 소감이 어떤가.

▲1986년에 UCLA의 한국 시네마테크를 위해 처음으로 찾은 이후 부산영화제 참가 등으로 10번 정도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영화에 관심과 열정이 많다. 사실 이번에 심사위원장 제안을 받고 도저히 시간이 안될 것 같았는데 서울이라는 도시를 매우 좋아하고 EIDF가 세계 여러 영화제 중 아주 독특하고 특별한 퀄리티와 매력을 갖고 있어 수락하게 됐다.

--EIDF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대중적으로 어필하는 페스티벌이라고 생각하고 앞으로 더욱 성장할 것이라 믿는다. EIDF는 일반 관객과 심사위원들이 함께 심사하는 방식이 독특하며 무엇보다 TV로 동시에 영화제를 진행하는 방식은 앞으로 영화제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또 어느 나라에서든 다큐멘터리를 극장에서 만나기란 어렵다. 물론 최근 들어 마이클 무어의 작품들이나 앨 고어의 '불편한 진실' 등은 극장에서 상영할 기회를 얻기도 했지만 일반적으로 다큐멘터리 영화를 극장에서 만나는 것은 어렵다. 그런데 하물며 방송을 통해 이런 영화들이 상영된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런 점에서 EIDF를 영화제의 한 모델로 생각하고 있다.

--영화제가 TV와 동시에 진행되는 장점은 무엇인가.

▲최근 들어 방송과 극장이 손잡고 영화를 개봉하는 추세다. 이는 영화의 상영 방식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를 상영하는 플랫폼은 접근성(visibility:가시성)의 의미인데 영화제에서 소개되는 영화를 관객이 6개월에서 10개월 후 극장에서 상영할 때 때까지 기다려 보는 것이 아니라, 화제가 되고 있는 바로 그때에 TV를 통해 볼 수 있는 방식은 매우 독특하고 떠오르는 새로운 영화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제는 영화에 대한 관심을 끌고 영화를 대중에 노출시키는 플랫폼인데 TV와 동시에 진행함으로써 영화를 최대한으로 노출하고 홍보할 수 있을 것이다.

--선댄스 영화제에 대해 설명한다면.

▲선댄스는 다큐멘터리와 일반 영화를 똑같이 취급하는 세계 유일의 영화제다. 3년 전부터 운영하고 있는 국제경쟁부문 역시 다큐와 일반 영화를 똑같은 비중과 수준으로 다루고 있다. 다른 영화제들처럼 다큐멘터리를 구색 맞추기용으로 선보이지 않는다. 덕분에 다큐멘터리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고 자부한다.

내 상사(Boss)인 로버트 레드퍼드도 "선댄스에서 와서 좋은 영화를 보고 싶다면 다큐를 보라"고 말한다.

--아시아 영화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UCLA 필름스쿨 재학시절 쉽게 접할 수 없는 일본 영화나 초기 중국 영화를 아카이브에서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전형적인 유럽 영화들보다 훨씬 흥미로웠다.

지난 세기에 출현한 영화 중 가장 훌륭했던 영화들이 어디서 나왔는지 묻는다면 당연히 아시아라고 답하겠다. 공포, 미니멀리즘, 갱스터, 예술영화 등 다양한 스펙트럼에서 아시아 영화는 눈부신 성과를 냈다. 그러나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잘 모른다. 또 아시아 영화들이 세계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도 높이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김기덕 감독이나 왕자웨이 감독을 봐도 아시아 감독들은 장르나 영화 산업에 구애받지 않고 작품을 만든다. 늘 실험을 하며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한다. 그래서 때로는 '괴짜(crazy)' 소리도 듣는다. 반면 서양 감독들은 2년마다 같은 작품을 반복해서 생산하는 데 그것에 질렸다.

물론 미국 독립영화 중에도 좋은 작품이 많다. 그러나 결점도 많다. 그런데 아시아 영화는 아니다. 아시아 영화를 아주 오래 봐왔는데 이런 점이 나로 하여금 아시아 영화에 대해 열정을 갖게 한다.

무엇보다 아시아 영화 작가들은 한계점(edge)을 넘어서는 실험정신을 발휘한다. 최근 20년간을 볼 때 아시아가 할리우드에 미친 영향이 지대하다. 올해 나온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도 거의 대부분 아시아 영화의 재창조다. 물론 그 반대도 있지만 지금 할리우드에서는 장르의 재발명(reinvention)이 아시아 영화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그러한 구체적인 예가 있나.

▲어떤 작품이 어떤 작품에 영향을 미쳤다고 콕 집어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특수효과, 무술 장면, 카메라 워킹 등을 볼 때 총체적으로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스파이더맨'이나 '매트릭스'를 보면 홍콩 영화에서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지 않나. 할리우드 영화에서 점차 선과 악이 뚜렷이 구분되지 않고 혼합된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도 역시 아시아 영화의 영향이다.

아시아 영화는 장르를 갖고 논다. 쿠엔틴 타란티노도 아시아 영화에서 아이디어를 훔쳐왔다고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는가.

할리우드 영화가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똑같은 성공을 거둘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톰 크루즈는 더 이상 세계 최고의 스타가 아니다. 그는 구세대의 아이콘이다. 우리는 새로운 스타와 이야기의 출현을 갈망하고 있다.

--EIDF 초청작 중 지난해 선댄스에서 상영된 작품들도 포함돼 있다. 추천할 작품이 있다면.

▲'영혼의 병 거식증' '어느 미군 병사의 짧은 삶' '빅 할아버지와 수녀' '행복의 적들' '당신의 생선은 어떻습니까' '블랙 골드' 등 많은 작품이 지난해 선댄스에 소개됐다. 모두 수작이다. 특히 세계적인 다큐멘터리 감독인 닉 브룸필드의 작품이 있다는 것도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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