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부에노스 아이레스 1977'은 나무로 숲 전체를 보여주는 영화다. 이 영화는 영문도 모른 채 비밀수용소에 끌려간 소시민의 탈출기를 통해 자국민의 인권을 바닥에 내던진 1970년대 아르헨티나 군부 독재의 만행을 생생하게 고발한다.
장편 데뷔작 '볼리비아'(2001년)로 칸 영화제 젊은 비평가상을 받은 이스라엘의 아드리안 캐타노 감독은 실존 인물인 클라우디오 템부리니와 기예르모 페르난데스의 공동 자서전을 바탕으로 세 번째 장편인 이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는 1977년 어느 날 아르헨티나 프로 축구팀의 골키퍼인 클라우디오(로드리고 드 라 세르나)가 느닷없이 처음 보는 사내들에게 납치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들은 다름 아닌 군부의 보안요원들. 이들은 무전을 통해 "아틸라 나와라! 새장의 새를 잡아 둥지로 돌아간다"는 암호를 타전한다.
클라우디오가 눈을 가린 채로 끌려간 곳은 바로 부에노스 아이레스 근교의 을씨년스러운 대저택. '아틸라'라고 불리는 이곳은 우두머리 유고(파블로 에카리)와 부하들이 '사상이 의심스러운' 청년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들여 심문하는 곳이다.
클라우디오는 영문도 모른 채 '군부에 대항하는 테러리스트'로 불리면서 각종 고문을 당하고 동료들의 이름을 불 것을 강요받는다. 클라우디오뿐 아니라 많은 청년들이 이 저택에 끌려왔다가 끌려나간다. 그나마 끌려나가는 청년들이 집으로 돌아갔는지 죽음을 맞았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던 어느 날 클라우디오는 같은 방을 쓰는 청년 타노가 바로 자신을 밀고한 자라는 것을 알게 된다. 실제 게릴라인 타노는 심한 고문을 당하자 동료들을 배신하는 대신 겨우 안면이 있는 정도인 클라우디오의 이름을 말한 것. 클라우디오는 분노하지만 한번 끌려온 이상 빠져나갈 방법이 없고 비슷한 처지의 기예르모(나자레노 카세로)를 만난다.
클라우디오, 기예르모를 비롯해 감금된 청년들은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수 개월을 버텨나간다. 비가 억세게 쏟아지는 어느 날 밤 함께 감금된 청년 4명은 목숨을 걸고 탈출을 시도한다.
영화 속 1970년대의 아르헨티나는 비슷한 시기의 한국의 모습과 겹쳐져 충격과 연민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영화는 당시 아르헨티나의 상황이나 군부의 모습을 치밀하게 추적하지는 않는다. 대신 이들의 감금 기간을 자막을 통해 하루하루 세어 보이면서 살아 있는지 죽은 것인지 알 수 없는 수감자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린다.
영화는 사실적인 묘사뿐 아니라 극적인 전개를 연출하는 데도 충실했다. 이들이 탈출을 시도하는 장면은 영화의 백미다. 이들의 탈출 시도가 성공할지 실화의 결말을 이미 알고 있더라도 가슴이 조마조마할 정도로 긴장감이 유지된다. 서로 다른 곳에서 끌려온 여러 청년들의 캐릭터도 뚜렷하다.
로드리고 드 라 세르나 등 느닷없이 수용소에 끌려간 청년 역할을 맡은 배우들의 연기는 관객마저 억울한 심정이 들게 할 정도로 절절하다.
15일부터 서울 명동 씨네콰논(CQN)에서만 만나볼 수 있다.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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