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과 뗄수 없는 섬유업은 ‘희망산업’
“섬유를 누가 사양산업이라고 말합니까. 우리에게는 희망산업입니다.”
회사를 세운지 20년. 강산이 두 번 변한다는 시간이지만 이봉화(57) 두산산업 대표는 이마에 주름살이 늘어난 것이 변화라면 변화랄까 크게 변한 것이 없다고 한다.
그는 지금도 밖에서는 영업현장을 직접 누비고, 안으로는 직원들을 격려하느라 분주히 보내고 있다.
직접 거래선을 돌아다니며 영업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진단해가며 두산산업의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다.
경북 김천이 고향인 그는 75년 상경해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10년 넘게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조그마한 공장을 하나 운영하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었다.
섬유산업이 한창 활황기였던 1987년, 이 대표는 그의 바람대로 부천에 공장 문을 열었다.
한동안 기계 AS와 판매업을 해오던 그는 평소에 기계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우연찮게 일본에서 기계전시회가 열린다는 말만 듣고 그는 한달음에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일본에 도착해 한참을 전시회에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전시장 한켠에 있는 기계에 매료됐다고 한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진짜 기가막힌 기계가 제 눈에 딱 들어왔습니다, 그때 바로 저거야 싶더군요”. 요즘 말로는 ‘필(?)’이 제대로 꼽힌 것이다. 그 기계가 그의 운명을 순식간에 바꿔놓은 편직기였다.
이 대표는 귀국하자마자 가진 돈을 털어 독일 전시장에서 봤던 편직기를 들여왔다. 그렇게 편직기가 좋아 그는 지금까지 섬유업에 종사하고 있다.
대형업체로부터 OEM 방식으로 주문 제작했지만 한창 수출물량이 많았던 시기라 당시에는 연초받은 주문량으로도 10월까지 밤샘작업을 해야했다고 한다.
원단 주문 물량을 맞추기 위해 밤을 새우면서도 직원들은 힘든 기색하나 없었다. 일하는 것이 즐거웠기 때문이다. 일하는 즐거움이 뭔지를 그때 맛보게 됐다고 한다.
95년 회사를 지금 공장이 성남으로 옮기고 회사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을 갖게 됐다. 납품업체도 늘어가고 회사는 날이갈수록 성장하면서 어느정도 기반도 잡았다.
공장은 날이 갈수록 성장했다. 회사가 커가는 만큼 더 큰 열매를 거둬들이고 싶었다.
97년에는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대당 10만달러에 달하는 편직기 10대를 일본에서 들여왔다. 회사도 나름대로 생산력이나 기술력을 업계에서 인정을 받았다.
이후 IMF사태를 맞으면서 졸지에 길바닥에 나앉게 됐다. 아직도 그때의 여파가 남아 있지만 이제는 그는 인생 살면서 좋은 경험을 했다고 스스럼없이 당시를 회상할 여유도 생겼다.
얼마전 그는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그 자리에서 한 친구가 농담삼아 “너 아직도 섬유회사 하냐”는 말을 던졌다. 그 말을 듣고는 웃어 넘겼다.
이제 이런 질문에는 이골이 났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그만큼 요즘 섬유업계 전반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는 사람들이 섬유업을 사양산업이라고 하는 말에 절대적으로 동의할 수 없다고 한다. 사람이 살면서 꼭 필요한게 의식주인데 길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이 벗고 다니지 않는다면 섬유업은 분명 희망산업이라고 그는 역설한다.
단지 기술력과 시대 흐름에 맞는 좋은 물건을 만들어내는 것이 관건이라는 것이다.
요즘 동남아에서 생산되는 수입품들이 많이 들어오고 있지만 고급 기술력으로 승부한다면 큰 걱정이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대표는 요즘 몸이 두개라도 부족하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 그는 같은 섬유업에 종사하는 회사들과 힘을 합쳐 공동 브랜드도 만들어 해외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이번 사업이 그에게는 확신을 안겨줬다고 한다.
이 대표는 그동안 펼쳐 왔던 성장 위주의 경영에서 앞으로는 수익성 위주의 경영을 펼치겠다고 한다. 무분별한 경쟁은 자제하고 보다 안정적인 수익 위주로 회사를 운영하겠다는 설명이다.
“지금 당장 유명 백화점 매장에 있는 옷을 가져와서 품질을 비교해도 우리가 생산하는 제품이 절대 뒤떨어질게 없다고 확신합니다. 작은 차이는 있지요. 그 옷에는 단지 유명 브랜드가 찍혀있고 우리가 생산한 제품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지요.”
그는 현재의 자신이 있기까지는 일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엔지니어출신인 만큼 그는 요즘도 웬만한 기계고장쯤은 직접 해결한다. 직원들도 이 대표를 맥가이버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운다.
그러나 그는 20년동안 회사를 경영하는 동안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큰 돈을 벌지는 못했다. 하지만 지금 그는 꿈을 이루고 살기에 더없이 행복하다고 한다.
“주변을 둘러봐도 섬유해서 큰 돈을 벌었다는 사람은 별로 못봤습니다.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그동안 이 일을 천직으로 알고 살아왔습니다. 앞으로도 제가 있을 곳은 바로 이 공장입니다.”
/조영달기자 dalsarang@kgib.co.kr
/사진=전형민기자 hmjeon@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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