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황정민의 첫 공포영화 '검은 집'

영화 '검은 집'은 배우 황정민의 첫 번째 공포 스릴러 영화라는 점에서 화제가 됐다. 출연작마다 묵직한 연기로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줘 연기 잘하는 배우로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그가 대표적 상업적 장르로 여겨지는 공포영화에 출연한다는 점에서 황정민이 만들어낼 공포에 대해 궁금증이 많았다.

그러나 영화계에서는 거의 비슷한 비중으로, 아니 황정민 이상으로 신태라 감독에게 관심을 모았다. 서울예대 영화과와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인 그는 1992년 '온화한 하루'를 시작으로 '앤드로피아'(1996), 'E.L'(2001), '명랑스토커'(2004) 등 10여 편의 단편영화를 통해 마니아층을 형성해왔다.

2005년 2천만 원이 채 안되는 제작비로 만든 영화 '브레인웨이브'는 그의 존재감을 새삼 드러낸 작품. 스릴러를 가미한 SF장르를 독립영화에서 선보였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독특한 시각을 느낄 수 있다.

'브레인웨이브'의 주인공 이름인 '전준오'는 '검은 집'의 황정민 배역 이름이기도 하다.

'검은 집'을 통해 상업영화 감독으로 정식 등장하게 된 신 감독이 과연 얼마나 색다른 공포영화를 내놓을 것인지 주목했던 것.

일단 일본에서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는 점에서 내용상 자신만의 기발함을 선보이기란 어려웠을 터. 그렇다면 영화를 구성하는 요인들의 결합을 봐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기대가 컸을까. 공포영화로서 매끄러운 솜씨를 보였으나 '새로운 무언가'를 찾기는 힘들었다.

역으로 본다면 시즌용 영화로서는 무리없이 볼 만하다. 황정민은 체중을 감량해가며 죄의식과 불안함에 떠는 인물을 표현해냈으며 유선 역시 파워 있는 연기를 선보였다. 결코 황정민에 밀리지 않고 온몸을 던져 '맞짱'을 뜬 것.

영화에서 갈수록 중요해지는 프로덕션 디자인은 '검은 집'에서도 힘을 발휘한다. 제목으로 쓰일 만큼 집은 중요한 공간. 박충배(강신일 분)와 신이화(유선) 부부가 머무는 집은 세 개의 구조로 돼 있다. 도대체 누가 사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황폐한 외관과 안과 밖을 이어주는 거실, 그리고 극도의 공포감이 묻어나는 지하실. 공간은 각각의 캐릭터를 갖고 관객의 심리를 변화시킨다. 물론 공통된 점은 공포감이다.

살해범을 '사이코패스(psycho-path)'라는 정신병적 질환자로 설정한 것은 원작이 그러하지만 새로운 접근. 아무런 죄의식 없이 살인을 하는 살인자가 사실은 치유불가능한 현대사회 정신병 환자라는 시각이다. 영화에서는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가, 현실에서는 12명을 살해한 유영철이 근접하다고 영화사측은 말한다.

보험사정원 전준오(황정민)는 출근 첫날 한 여자로부터 "자살하면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느냐"는 상담전화를 받는다. 준오는 옥상에서 떨어져 자살한 동생에게 죄의식을 갖고 있다. 어린 시절 병약한 동생을 일부러 '왕따'를 당하게 했기 때문. 그는 보험 상담 매뉴얼에서 절대 금지한 개인사를 말하며 여자의 자살을 막으려 한다.

어느 날 반드시 준오가 찾아오길 바란다는 보험 고객 박충배의 집으로 향한다. 다 쓰러져갈 것 같은 음침한 집에 들어선 준오에게 박충배는 아들의 방을 열고 조언을 해주길 부탁한다. 방을 열자 7살 아들이 목을 매 자살해 있다. 깜짝 놀란 준오가 충배를 쳐다본 순간 충배는 준오의 눈치를 보고 있다.

경찰은 단순 자살로 처리하지만 준오는 아무래도 찜찜해 회사 상사에게 별도로 조사하겠다고 말한다. 준오의 여자친구인 소아과 의사 장미나(김서형)는 준오의 불안함과 고민을 달래려 한다.

준오는 충배가 손가락이 잘렸다며 상해보험금을 탄 사실과 경제적으로 어려운 형편임에도 매월 80만 원에 이르는 보험을 초등학교 동창에게 자청해 들었다는 점, 어린 시절에도 친구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점을 알게 되고 충배가 의붓아들을 죽였다고 생각한다.

아들의 재를 뿌리고 있는 충배의 아내 이화는 손목에 칼로 그은 흔적이 있으며 발을 절뚝거린다. 아들의 재가 뿌려지기도 전에 나타난 충배는 보험금 지급 요청서를 내밀고, 매일 오후 3시에 준오를 찾아와 보험금을 빨리 지급해달라고 요청한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면서.

미나의 동료인 정신과 의사가 준오를 찾아와 충배가 누군가를 죽일 때조차 아무런 감정이 없는 싸이코패스 환자일 수 있다고 충고하며 논문을 준다.

준오가 계속 보험금 지급을 미루는 동안 미나가 아끼는 강아지가 목잘려 죽고, 정신과 의사가 무참히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충배에 대한 준오의 의심은 극에 달하지만 경찰은 불쌍한 사람에게 보험금을 주지 않으려는 처사라며 비난한다.

충배의 주변을 계속 조사하면서 준오는 새로운 단초를 찾게 된다.

영화는 중반부를 넘어서며 곧바로 범인을 밝힌다. 범인과 준오의 팽팽한 긴장감으로 후반부를 이끌어가려 한다. 후반부에 이르며 인간의 잔혹함은 더욱 진하게 보여지며, 죄의식 속에 살아가는 준오와 죄의식이 없는 범인과의 사이에 생기는 묘한 동질감이 관객을 혼란에 빠뜨린다.

클라이맥스를 향해 가던 영화는 너무 잦은 고조점으로 인해 오히려 긴장감을 상실한다. 괜히 판을 벌이지 않고 준오와 상대의 대결로 집약한 것이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 있다. 등장인물의 관계에 의문점을 불어넣었음에도 그에 대한 설명이 허술한 점도 아쉽다.

21일 개봉. 청소년 관람 불가.

/연합뉴스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