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달 5월에 ‘가족처럼 소중한’ 단짝 친구에 대해 되돌아보게 하는 영화 두 편이 관객을 맞는다. 한국영화 ‘날아라 허동구’와 프랑스의 ‘마이 베스트 프렌드’(원제 Mon Meilleur Ami)가 그것.
‘단짝 친구’ 다룬 영화 두 편 개봉
물론 ‘날아라 허동구’는 1차적으로 발달장애를 가진 열한살 동구와 아버지 허진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가족영화다. 그러나 영화 속을 들여다보면 동구와 짝 준태, 허진규와 그의 평생 친구 상철을 통해 인생에서 단짝 친구가 차지하는 의미를 조용히 역설하고 있다.
‘마이 베스트 프렌드’는 영화의 설정 자체가 ‘10일 안에 진정한 친구 찾기’라는 내기가 중심축이다. 자기만 안다고 비난 받는 프랑수아가 내기에 이기려 친구 찾기에 나섰다가, 단짝 친구를 만들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과연 우리에게 친구라고 당당히 내세울 만한 ‘진정한 친구’가 있는지 영화는 묻는다.
정진영-신정근 ‘찰떡 호흡’ 이유 있었다
‘날아라 허동구’의 ‘동구 아빠’ 정진영을 26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다.
상철(신정근 분)에게 물질적으로 계속 퍼주는 듯하지만, 실은 정신적으로 기대고 있는 허진규(정진영 분). 어쩌면 동구(최우혁 분)와 준태(윤찬 분)가 어른이 된 뒤의 모습일 수도 있는 진규와 상철의 우정, 신정근과의 연기 호흡에 대해 물었더니, 재미있는 사연이 돌아온다.
“호흡 좋았죠, 사실 신정근씨와 저는 영화 밖에서도 친구거든요. 영화 속 정진영 옆엔 늘 신정근이 있습니다. ‘황산벌’에서 처음 봤어요. 제가 맡은 김유신의 동생 김흠순 역할을 했는데요, 연기를 아주 잘하더라구요.
그래서 그 뒤로 ‘달마야,서울 가자’ ‘와일드 카드’ ‘왕의 남자’에 내리 같이 다녔죠. ‘왕의 남자’에서 연산이 활을 쏴 죽이는 상대가 바로 이 친구입니다. 이젠 연기력을 인정 받아 데리고 다닐 필요가 없어요. 이번 ‘날아라 허동구’만 해도, 저와는 상관 없이 캐스팅 된 겁니다. 앞으로 더 좋은 모습 보여줄 테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친구가 얘기가 나오니 정진영의 자랑이 늘어진다.
신정근의 ‘얄밉게 맛있는’ 상철 연기
상철은 튀긴 닭을 파는 진규 가게에서 온갖 구박을 받으면서도 홀짝홀짝 생맥주를 따라마시는가 하면, 딸까지 불러 간식으로 닭을 먹이고, 아내의 실적을 위해 보험을 강매한다. 아내 없이 IQ 60짜리 아들을 키우는 어려운 진규 처지에, 저런 친구를 왜 붙여두나 싶을 정도로 얄밉게 빌붙어 지낸다.
하지만 동구가 없어지면 제 아들처럼 발벗고 찾아 나서고, 진규가 없을 땐 ‘대리 아빠’도 해주고, 바쁠 땐 닭 배달도 하고, 무엇보다 진규가 아프자 진규보다 먼저 눈물을 흘리며 마음 아파한다.
미워할 수 없게 얄미운 상철을 스크린 위에 만들어낸 신정근의 ‘맛있는’ 연기는 영화에 활기, 관객에게 큰 웃음을 제공한다.
친구를 더욱 빛나게 하는 정진영의 연기
신정근의 호연은 오롯이 본인의 재능과 노력의 결과지만, ‘상대배우를 위해 여백을 남겨 놓는’ 정진영의 특성에서도 기인한다.
정진영은 자기 혼자만 튀며 연기파 소리를 듣는 배우도, 작품을 적절히 끌어 올리면서 제몫도 잊지 않고 챙기는 배우도 아니다. 작품 전체의 틀과 흐름을 먼저 생각하고, 공연하는 배우들의 몫을 챙기는 배우다.
‘날아라 허동구’ 속 신정근의 모습은 지금까지 어느 영화보다 크고 자유로워 보인다. 신정근 뿐 아니다. 영화의 양대 축이라 할 동구 역의 최우혁, 동구의 야구부 코치를 맡은 권오중, 잠깐 등장하지만 상철 부인 역의 박경옥까지 모두 빛난다. 카리스마 넘치는 주연배우 하나에 뒤덮여 ‘보이지 않는’ 조연들과 달리, 배역의 크기만 다를 뿐 모두가 동구네 동네의 주민들이고 ‘날아라 허동구’의 주연들이다.
영화에선 튀지 않게, 인터뷰는 도맡아
그래도 주연을 맡았는데, 튀고 싶은 욕심이 없었을까.
“영화를 고를 때 ‘내가 어느 정도 보일까’를 따지지 않아요. 나와 생각이 맞는 시나리오, 감독, 배우들과 함께 하는 걸 좋아합니다. 사실 ‘날아라 허동구’는 동구의 영화입니다. 허진규는 그저 아버지로서 동구 곁에 있어주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나이가 들어선가요, 내 연기보다는 영화 전체를 책임져야 하는 배역이 주어지네요.”
영화에선 다른 배우들을 위해 화면 속 공간과 기회를 내줬던 그가 영화가 끝난 뒤 진행된 언론사 인터뷰는 도맡았다. 정진영은 ‘좋은 영화인데 몰라서 못 보는 관객이 있을까봐’ 배우된 이후 처음으로 홍보를 자처하고 나섰고, ‘날아라 허동구’를 위해 50여 차례의 인터뷰를 강행했다.
‘친밀한 타인들’ 작가-감독 다시 뭉쳤다
‘마이 베스트 프렌드’는 ‘친밀한 타인들’을 쓴 작가 제롬 토네르와 파트리스 르콩트 감독이 다시 손잡고 만든 영화다.
영화 ‘마농의 샘’에서 마농이 흘리고 간 리본을 가슴에 꿰매던 남자, ‘제8요일’에서 다운증후군 환자 조지와 푸른 들판을 걷던 다니엘 오떼유의 신작이기도 해서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골동품 딜러 프랑수아(다니엘 오떼유 분)는 평생 친구 하나 만들지 못한 인생 낙제생이다. 어쩌다 동료들과 열흘 안에 친구를 데려오라는 내기를 하게 된다. 친구라고 자신하며 찾아간 사람들에게 프랑수아는 면박을 넘어 모욕을 당한다.
다니엘 오떼유-대니 분의 ‘따뜻한’ 호흡
기한은 다가오고, 어느날 지나가는 동네 강아지와도 쉽사리 친구가 되는 택시기사 브루노(대니 분 분)를 만난다. 그에게 ‘친구 사귀는 법’에 관해 한수 가르침을 받기로 한 프랑수아. 환한 미소와 친절한 말투를 지닌 브루노는 세상의 온갖 상식을 줄줄이 꿴 ‘잡학 사전’이다. 쉴새 없이 떠들어대는데다, 숨겨진 상처로 인해 사실 브루노에게도 친구가 없다.
뭔가가 결핍된 두 사람은 어느새 서로에게 ‘친구’가 되는데, 이대로 영화가 끝나진 않는다. 포스터 속 모습처럼 두 사람이 다시 나란히 걷게 되기까지 굴곡과 반전이 지뢰처럼 놓여 있다.
정진영과 신정근의 찰떡 호흡에 만만찮게 따뜻한 앙상블을 보여주는 다니엘 오떼유와 대니 분의 연기, 프랑스식 유머와 웃음도 보는 이를 즐겁게 한다. 사진=‘날아라 허동구’ ㈜타이거픽쳐스, ‘마이 베스트 프렌드’ ㈜유레카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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