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입견이 있었던 것일까. 가수 안치환(41)을 만나러 서울 연세대 북문쪽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을 찾았을 때 상당한 규모를 드러내는 공간과 첨단 녹음 설비에 깜짝 놀랐다.
이번 9집까지 2∼3년 단위로 앨범을 내왔고 연 1∼2회의 콘서트 및 각종 행사를 통해 꾸준히 노래를 불러온, 즉 활발하게 활동해온 가수라는 점에서 이 정도 작업 공간을 가지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러고 보면 ‘저항 정신을 노래하는 가수라면 환경이 열악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긴 있었나보다.
안치환은 “아는 형이 녹음 설비 공사를 해서 큰 돈 안들었다”라며 웃어보였다.
“8집부터 여기서 작업했는데 만든 곡을 수시로 녹음해볼 수 있어서 좋아요. 이번에도 만들어둔 곡이 27곡쯤 되는데 13곡만 추리느라 힘들었죠.”
9집은 타이틀인 ‘처음처럼’과 가족애를 담은 ‘아내에게’ ‘굿나잇’등 노래들이 전반적으로 부드럽고 밝다. 지난 8집이 미군 탱크에 희생된 효순, 미선이를 추모하는 ‘피 묻은 운동화’, 반미 감정을 드러낸 ‘오늘도 미국 대사관 앞엔’ ‘아메리카’, 밥그릇만 쫓는 세태를 비판한 ‘개새끼들’ 등으로 강했던 것과는 대비된다.
“8집 때는 노래 만드는 사람으로서 감정이 극한까지 가는 짜릿한 경험을 했어요. 그러나 격하다는 비판도 있었죠. 이번에는 다시 시작하는 느낌으로 희망적인 노래를 하고 싶었어요.”
안치환의 팬들 중에서는 사회 현상을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노래가 없는 점을 아쉬워할만도 하다. 그는 “최근 작곡한 노래 중에 크레인에서 129일 동안 농성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동자를 기린 ‘내 친구 그의 이름은’이라는 곡도 있었지만 앨범에 넣지 않았다”면서 “그러나 언제가 되던 부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4집의 ‘내가 만일’, 5집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냈을 때도 “낭만주의에 빠졌다”는 비판을 받았었다.
“그런 의견들에 일일이 신경 안써요. 아니, 이제는 그런 비판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예전 운동권에서는 ‘철의 노동자’ 같은 제 노래도 감상적이라고 비판했는데, 그들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요? 그렇게 날선 비판이 이제는 그립네요.”
대표적 386세대인 그도 어느덧 마흔이 넘었다. 최근 386의 정체성이 흔들린다는 우려도 많은데 “나는 386 세대 전체가 갖는 도덕성 역사성 진보성을 굳건히 믿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유명한 386들이 흔들리면서 평가절하되고는 있지만 무명의 386들은 아직 건재해요. 역사는 이 무명의 386들로 이어질 겁니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그래 나는 386이다’라는 노래도 만들었는데 다음 기회에 선보이겠습니다.”
젊어서 함께 노래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뿔뿔이 흩어졌고 가요 시장 불황은 그에게도 가혹하지만 그는 “어렵다”고 말하면서도 여유롭게 웃었다. 시대가,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자기만의 노래를 계속 할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안치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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