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스태프 한 명이 공연 전 주의사항을 환기시킨다.
"…며칠 전 공연 도중 한 남성분이 일어서더니 배우를 향해 인사를 하시더군요. 저희 공연에 낯익은 배우들이 많이 나오잖아요. 친근감에 인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셨나봐요. 공연 중에는 조금만 참아주시고 공연이 끝나고 난 후 박수로 격려해주세요."
이 말에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졌다. 연극 '경숙이, 경숙 아버지' 공연에서 일어난 일이다.
1일 서울 공연이 막을 내리고 지방 순회 공연 중인 '경숙이, 경숙 아버지'에는 이처럼 관객의 돌출행동이 나올 정도로 친숙한 얼굴이 많이 등장한다. 경숙 아버지 역의 조재현은 물론이고, 경숙이 역을 맡은 장영남도 장진 감독의 영화 '박수칠 때 떠나라' '거룩한 계보'로 친숙하다.
연극계에서 잔뼈가 굵은 박철민도 영화의 조연배우로 낯익다. 거기에 탤런트로 주로 활동하다 최근 영화로 발을 넓히고 있는 이한위는 등장만 해도 관객의 웃음을 자아냈다.
10일부터 서울 중구 정동 제일화재 세실극장에서는 유지태를 만날 수 있다. 유지태가 원안을 내 만들어진 창작극 '귀신의 집으로 오세요'(박수진 작ㆍ이지나 연출)가 막을 올리는 것.
유지태는 2004년 '해일', 2006년 '육분의 륙'에 이어 세 번째 연극을 올린다. 그는 연극ㆍ영화 제작사 '유무비(有無飛)'를 만들어 제작자로도 나섰다. 단편영화를 통해 영화감독의 꿈에 한 발짝씩 다가서고 있는 그는 지속적으로 연극을 올리겠다는 약속도 지키고 있다.
스크린쿼터 원상복귀 투쟁의 선봉에 서느라 지난 한 해 연기 활동을 잠시 중단했던 최민식도 영화가 아닌 연극으로 복귀한다. 5월1~20일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되는 '필로우맨'(마틴 맥도너 작ㆍ박근형 연출)을 통해서다. 박근형 씨는 '경숙이, 경숙 아버지'의 연출자이기도 해 연기파 두 배우와 함께 작업하게 됐다.
최민식은 기자회견을 통해 "7년 만에 연극을 하는 것에 대해 거창한 수식어를 붙이는 것은 별로 달갑지 않다. 연극은 어떤 매체보다 스스로 실존을 강렬하고 정확하게 느낀다"고 말하기도 했다.
영화 '사생결단' '와일드 카드' 등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이도경도 지난 1~2월 자신의 대표작인 연극 '용띠 위에 개띠' 10주년 기념 공연을 마쳤다. 이랑씨어터의 대표이기도 한 이도경은 '용띠 위에 개띠'로 초연 이후 26만 명을 불러모았다.
최근에는 탤런트 김지영이 뮤지컬 제작자로 변신해 20일부터 대학로 알과핵 소극장에서 창작 뮤지컬 '달콤한 안녕'을 무대에 올린다. 그는 공연제작사 유니호스를 직접 차렸다.
이미 오래 전부터 영화 배우의 주요 공급처는 연극계였다. '에쿠우스'로 연극계 스타덤에 오른 최민식과 조재현을 비롯해 송강호, 설경구, 박해일, 오달수 등이 연극배우 출신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다. 특히 조연급은 연극배우가 거의 휩쓸다시피 하고 있다.
최근 주연급 배우들이 속속 대학로로 복귀하면서 충무로에서 인기와 지명도를 얻은 배우들이 침체된 대학로에 활기를 불어넣어주고 있다.
공연 전 "유료 관객이 꽉 찼을 때 내 개런티가 500만 원"이라고 밝혀 화제가 됐던 조재현은 공연 마지막날까지 통로에 관객이 꽉꽉 들어찰 정도로 흥행에 성공한 데 대해 "소기의 목적을 이뤘다"고 말했다.
"돈 보고 연극을 하는 게 아닙니다. 연기의 토대인 연극이 올려지는 대학로에 조금이나마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기를 희망했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연극의 매력을 결코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만. (유)지태나 (최)민식 선배의 연극에도 관객이 많이 와주길 바랍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유명 배우의 연극에만 관객이 쏠리는 현상에 대해서도 경계했다.
"'경숙이, 경숙 아버지'는 흥행에 대성공을 했습니다. 총 유료 관객이 제가 출연했던 김기덕 감독의 영화보다 더 들었으니까요(웃음). 그러나 지난 겨울 다른 연극은 맥을 못추고 있을 때 이 작품만 잘된 것이 작품 자체의 요인도 있지만 친근한 배우들이 대거 등장한 이유이기도 해서 한편으로는 숙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유명 배우들이 출연한 작품을 보기 위해 난생 처음 연극을 보러온 관객이 연극의 매력을 느껴 이후에도 대학로를 한 명이라도 더 찾는다면 궁극적으로 연극 관객 확대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조재현은 "'경숙이, 경숙 아버지'를 보기 위해 처음 대학로를 찾았다는 중년 관객이 꽤 있었다"면서 "그들이 연극의 매력에 빠져 1년에 한 편이라도 보러 온다면 새로운 관객을 만들어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