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놀이' 수출하는 연출가 손진책 씨

'마당놀이' 연출가 손진책(孫振策.극단 미추 대표) 씨는 한가해 본 적이 별로 없는 사람이다. 평생을 연극 한다고 바삐 살아온 탓이다. 또 70명이 넘는 배우가 있는 대형 극단 일을 챙길라 치면 한가할 수도 없다.

어쩌다 틈이 좀 나면 절을 찾는 게 취미다. 올해 환갑을 맞는 그는 나이 때문인지 요즘에는 특히 고향인 경북 영주의 부석사가 그렇게 정겹게 느껴질 수가 없다. '철들어 갈수록 더욱 괜찮아진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올해는 그나마 고향의 절 가는 일도 쉽지 않을 것 같다. 국내에서 '허생전'을 필두로 최근의 '변강쇠'에 이르기까지 27년째 해 온 마당놀이가 올해 처음으로 중국대륙에 진출하는 일로 정신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에 앞서 지금 당장은 자신 연출로 지난 10일부터 예술의전당 내 토월극장에서 초연에 들어간 '열하일기만보(熱河日記慢步)'를 손질하는 일이 발등의 불이다.

예술의전당 내 한 레스토랑에서 만난 그와 먼저 '열하일기만보'(배삼식 작)를 화제로 삼았다.

-- '열하일기만보'란 어떤 작품입니까.

▲배삼식 작가와 지난해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의 열하일기를 소재로 작품을 같이 한 번 해보자고 한 후 박 작가가 쓴 것입니다. 서울대 인류학과를 나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 전문사과정을 졸업한 동양 고전에 심취한 인재지요. 박지원의 작품을 그대로 각색한 것이 아니라 그걸 모티브로 해서 패러디하고 오늘날 우리 현실 사회를 압축해 놓은 것 같은 그런 작품입니다.

-- 연암을 말도, 노새도, 나귀도 아닌, 그렇다고 개도 아닌 어정쩡한 짐승으로 설정했는데 극을 보다보면 노무현 대통령이 연상된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니다, 기다 하고 싶지 않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읽을 수도 있고, 보수만 추구하는 어느 사람의 모습도 볼 수 있고, 또 말만 개혁, 이념만 앞세우는 그런 사람의 모습도 느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관객이 보고 느끼는 것이지 내가 먼저 이렇게 봐라 얘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열하일기만보'가 어렵다고들 하는데 우리 현실과 무관한 것이 아닙니다.

-- 마당놀이를 오랜 기간 해 오셨는데...

▲마당놀이는 1981년 '허생전' 공연으로 시작되면서 처음에는 고유명사였는데 그 게 지금은 일반명사가 되어버렸습니다. 마당이라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개념이 아닙니다. 농사도 짓고 잔치도 하고 재판정도 되고 통과의례가 치러지는 곳이지요. 생존의 현장이었단 말이죠. 내 연극의 기본은 마당정신입니다.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것이지요. 마당이라는 것을 자꾸 고전, 옛 것 그렇게 생각하지만 나는 마당을 '오늘'이라는 것으로 정리합니다. 또 우리가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여기'이기도 하지요. 옛 이야기를 통해 오늘의 또 여기의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 작품에도 지식인이라고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실제로는 길들여지는 것에 대한 풍자 같은 것이 있습니다.

-- 우리의 마당놀이가 처음으로 중국에 수출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간 간간이 미국에서 교포들을 상대로 해외공연을 한 적은 있습니다만 본격적인 수출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배삼식 작가가 쓴 마당놀이 '삼국지'가 오는 6월 21일부터 중국 장쑤성(江蘇省)의 성도 난징(南京) 공연을 시작으로 장쑤성 전역에서 약 500회의 공연을 하게 됩니다. 하반기에는 베이징으로 가서 공연을 하는 데 중국 전체로 따지면 약 2천회의 공연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 영화, 대중가요 등 오락 부문 한류의 확산과 함께 중국을 무대로 한 '삼국지'를 마당놀이로 한국에서 만들어 중국 본토로 수출한다는 것이 각별한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번에 중국에서 공연되는 '삼국지'를 제작하는 단체는 장쑤성연예집단입니다. 중국도 지금 공연예술계의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있는데 장쑤성연예집단은 전통극과 현대극, 발레, 오페라 등 모든 공연예술장르를 망라해 중국 내에서 아주 활발한 제작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 연예집단에서는 장쑤성의 '삼국지' 공연이 100% 성공할 것으로 자신하고 있습니다. 극단 미추는 마당놀이 공연형식을 수출하고 로열티를 받게 됩니다. 이번 첫 공연이 성공하면 마당놀이가 중국 전역으로 퍼져나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배우는 중국배우가 출연하지만 주요 스태프는 모두 여기서 데리고 가게 됩니다. 4월 10일부터는 중국에 가 준비를 해야 합니다.

--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로서 마당놀이의 특징인 정치적인 풍자 같은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고 그만큼 재미도 반감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나라에서 군부 독재시대에도 마당놀이에서 행간을 통해 할 말을 다 했습니다. 중국에서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삼국지'는 배삼식 작가가 썼지만 그 외에 중국 작가가 한 사람 또 붙습니다. 마당정신에 따라 중국에서도 인간다운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하면 작품을 만드는 데 아무 문제도 없을 것입니다.

-- 마당놀이의 중국 공연으로 올해 국내 공연은 좀 소홀해지겠습니다.

▲아무래도 그럴 것 같습니다. '열하일기만보' 공연이 이달 중 끝나면 곧바로 '벽속의 요정' 공연 때문에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가야 합니다. 그 다음에 난징에 가야 하고...중간에 일본 극단 초청으로 일본에 가서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을 연출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11월에는 국내에서 마당놀이 신작 연출을 하게 됩니다. 내가 없더라도 극단 미추의 마당놀이 공연 같은 것은 계속되구요.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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