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도 즐겨라…‘웰 메이드’ 만화영화 ‘빼꼼의 머그잔 여행’

어린 아이를 둔 부모는 다소 재미가 없어도 만화영화나 어린이 뮤지컬 등 아이를 위한 공연장에 가야 한다. 관람료가 너무 비쌀 때는 아이를 달래 혼자 공연장에 들여보내기도 한다. 단지 아이 곁에 있어주기 위해 입장하기엔 기회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어른도 즐거운 ‘말이 필요 없는’ 영화

22일 개봉하는 ‘빼꼼의 머그잔 여행’(이하 ‘빼꼼’)은 이런 걱정이 필요 없을 것 같다. 천진난만한 극의 전개는 어린이용이지만 어른을 위한 또 다른 감상 포인트가 준비돼 있다. 등장인물인 베베(아기), 빼꼼(흰곰), 도도(펭귄 암컷), 꽁꽁(펭귄 수컷), 후다닥(도마뱀), 용용이(용)는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다. 대사 없이 극을 진행하다 보니 얼굴 표정과 몸짓, 효과음 등으로 현실감을 높인다. 다양한 비언어 요소들을 살펴보는 재미가 신선하다.

대사 없는 어린이 만화야 처음이 아니지만 대사가 필요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비언어적 요소들을 얼마나 완성도 있게 포진시켰느냐에 따라 만족감은 극과 극이다. 그런 측면에서 ‘빼꼼’은 말이 필요 없다.

“한국 애니, 스토리와 스토리 텔링 개발이 우선”

연출을 맡아 5년 간의 고생 끝에 영화를 탄생시킨 임아론 감독은 5일 간담회에서 한국 애니메이션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스토리와 스토리 텔링이라고 강조했다. 2차원(2D) 그림이냐, 3차원(3D) 영상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신선한 스토리 개발과 그것을 현실감 있게 전달하는 스토리 텔링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스토리는 말그대로 소재와 주제가 녹아든 줄거리다. 스토리 텔링은 뭘까. 임 감독 설명에 따르면 어떤 캐릭터가 생각을 하고 있다면 ‘정말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처럼’, 화가 났다면 ‘진짜 화난 것처럼’, 넘어진다면 ‘실제로 넘어지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실사가 아닌 그림이지만 리얼리티를 획득하고 스토리를 공감하게 된다는 것이다. 임 감독은 좋은 스토리 텔링을 위해선 끊임없는 고민과 다양한 시도가 이어져야 하며, 애니메이터들에게 주어진 숙제라고 표현했다.

아이를 위한 스토리, 어른들을 위한 스토리 텔링!

이런 잣대를 ‘빼꼼’에 적용해 볼까. 제목은 ‘빼꼼의 머그잔 여행’이지만, 줄거리로 보면 ‘베베의 머그잔 여행’이다. EBS 만화 ‘빼꼼’을 통해 빼꼼이의 지명도가 높아졌기 때문에 마케팅 측면을 고려해 정해진 제목이다.

먼저 스토리. ‘빼꼼’ 속 유일한 사람 베베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산타 할아버지로부터 펜던트를 선물받는다. 펜던트를 돌리자 세계 어디든 갈 수 있는 머그잔이 도착한다. 머그잔은 먼저 북극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멋내기 좋아하고 새침한 도도와 그녀를 좋아하는 꽁꽁이와 빼꼼이를 만난다.

소심한 베베의 성격과 도도를 사이에 둔 꽁꽁이와 빼꼼이의 대결이 뒤엉켜 머그잔 여행은 사막으로 이어진다. 친구들과 함께 불시착한 사막에서 베베는 만능 수리꾼 후다닥과 오아시스 속 괴물 용용이를 만난다. 소심하고 겁이 많아 친구를 돕고 싶어도 도울 수 없었던 베베, 다양한 모험을 겪으며 한결 용감하고 씩씩해진다.

흥미진진한 이야기 전개에 기자시사회에 함께 참석한 어린 아이들이 신났다. 베베와 친구들이 위험에 처하고, 위기를 극복하는 순간들을 함께 느끼며 걱정하고 기뻐했다. 한 사내아이는 기자시사회임을 감안해 ‘조용히 하라’는 엄마의 단속에도 ‘안돼’ ‘구해줘’ ‘어서’ ‘다행이다’ 등의 외마디를 터뜨리며 영화에 빠져든다.

‘빼꼼’의 스토리 텔링은 정교하다. 어른이 아닌 아이의 표정과 소심한 아이의 옹알이 같은 말투, 말을 하지 않아도 마음 속이 그대로 드러나는 캐릭터들의 생생한 표정, 동물들의 실제 움직임에 기초한 동작들이 눈길을 끈다. 특히 베베의 옹알이 말투가 압권이다. 물론 베베도 말을 하지 않는다. 절박한 순간에 ‘꽁꽁’ ‘후다닥’ 정도의 친구 이름이 2∼3번 입밖으로 새어나오는데, 몇 번 안 되는 노출로도 ‘정말 아이의 말투 같다’는 강한 인상을 남긴다.

아이들은 줄거리 흐름에 반응을 보인다. 어른들처럼 생생한 캐릭터의 표정이나 동작, 효과음, 화면의 색감 등을 꼬집어 감상하진 않지만 리얼리티가 높을수록 아이들의 줄거리에 대한 호응이 커진다. ‘빼꼼’은 아이들을 위한 스토리, 어른들을 위한 스토리 텔링이 돋보이는 영화다.

또 북극? 또 곰과 펭귄?

‘빼꼼’에도 아쉬운 점이 몇가지 있다. 5년의 쉼 없는 노력으로 메울 수 없었는 부문이겠지만 아쉽다. 주요 활동 공간이 북극과 사막이다. 배경이 ‘깨끗’한 곳이다. 아이들은 ‘뽀로로’도 얼음나라였는데 또 얼음나라구나 정도로 생각할 수 있지만, 어른에게는 아쉬운 대목이다.

임 감독은 “배경이 복잡해지면 하나 하나가 돈이다. 안타깝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아픈 현실이다. 자본의 여유가 생기면 다양한 공간을 배경으로 스토리를 전개하고 싶다”고 답했다.

대사가 없기 때문에 성우의 나레이션이 중간 중간 등장한다. 상황을 설명해 주기도 하고, 관객이 등장인물에게 외치고 싶은 말을 대신해 주기도 하며 극의 긴장감을 높인다. 그런데 몇몇 장면에서는 관객이 스스로 느낄 수 있을 만한 부분을, 오히려 스스로 느껴야 재미가 큰 내용인데 나레이션이 나온다. 되레 긴장감과 흥미를 반감시킨다.

“나레이션이 적은 첫번째 버전이 있다. 하지만 작가로서의 욕심이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서너살 아이들이 볼 영화를 만들었다면 그 아이들의 눈높이 맞춰야 한다고 판단했다. 새로 작가와 성우를 구해 2차 대본 및 녹음 작업을 거친 게 관객들을 만난다. 개인적으로는 첫번째 버전이 마음에 들지만 소장용으로만 보관할 생각이다.”

혹자들은 ‘뽀로로’에서도 곰과 펭귄이 나왔는데, 또 곰과 펭귄인가 생각할 수도 있겠다. 임 감독은 “한국 애니메이션은 초기 단계다. 초기 단계에선 동작이 둔한 캐릭터부터 시작해 다양한 동작들을 개발하는 게 필요하다. 단언컨대, 기존의 다른 캐릭터와 다른 모습과 성격을 지닌 곰과 펭귄들이라고 자부한다”고 밝혔다.

미래와 경제적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5년의 소중한 ‘젊은’ 시간을 투입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감독과 모든 스탭들이 바친 땀이 화면에 보이니 1차적으로는 ‘보람’있는 작업이었다. 그 뒤에 그들이 수확할 열매는 관객의 손에 들려 있다. 사진=알지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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