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스나이더 감독이 프랭크 밀러의 원작 만화를 영화화한 '300'은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기원전 480년의 테르모필레 전투를 소재로 하고 있다.
서구 역사상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기록되는 이 전투에서는 오늘날 '서양'으로 대변되는 스파르타의 소수 정예군이 '동양'을 상징하는 페르시아의 100만 대군을 상대로 영웅적인 싸움을 벌여 페르시아전쟁의 궁극적인 승리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된다.
훗날 많은 서구의 역사가들은 이 전투를 기점으로 '합리'와 '이성'으로 대변되는 서양문명이 '불합리'와 '야만'으로 대변되는 동양문명을 앞서나가게 됐다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영화 '300'을 보면 레오니다스 왕이 이끄는 정예 스파르타군은 자유와 이성을 숭상하는 인간적인 면모를 물씬 풍기는 반면 크세르크세스 왕이 인솔하는 100만 페르시아 대군은 기괴한 몰골을 한 야만인 내지는 혐오감을 주는 괴물쯤으로 묘사된다.
밀러의 원작에는 레오니다스 왕이 페르시아군을 가리켜 경멸하듯이 '야만인'이라고 부르는 장면이 여러 차례 나온다.
이는 오늘날 많은 서구 선진국들이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이른바 '제3세계' 구성원들을 이해하고 접근하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성과 자유를 숭상하는 자신들은 독재자의 억압과 폭력에 의해 움직이는 '야만인'보다 우월하다는 인식이다.
자유와 이성을 표방하는 서구 국가들의 위선과 야만성은 19~20세기에 걸친 제국주의적 식민 지배에 의해 그 흉악한 몰골을 만천하에 드러낸 바 있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인류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오점'이라고 칭했던 제국주의 식민 지배를 통해 서구 열강들은 최악의 야만성과 잔인성, 그리고 위선을 보여줬다.
안타깝게도 할리우드 영화 '300'은 동양을 바라보는 서양의 이 같은 왜곡된 시각과 편견, 즉 오리엔탈리즘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일개 영화에 과민반응할 필요는 없다고 말할 수도 있으나 파급력이 강한 예술작품을 통한 가치관의 왜곡과 오도가 대중의 가치관과 무의식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는 이미 여러 사례를 통해 충분히 입증된 바 있다.
영화적으로는 칭찬받을 만한 수작(秀作)인 '300'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관객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연합뉴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