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강호텔’에서 터프함과 귀여움을 동시에 선보이며 관객들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는 배우 조경훈을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조경훈이 낯설다고?
중국 옌볜 출신 호텔리어 이정은(박희진 분)과 뜨거운 키스를 나누는 조폭이라고 표현하는 게 이해가 빠를 만큼 조경훈은 관객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다. 영화에서 많이 봤는데 하면서도 이름을 떠올리는 사람은 많지 않을 듯하다. 때문에 지명도에 비해 꽤나 큰 배역을 맡았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다.
하지만 영화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조경훈을 안다. 1997년 영화 ‘3인조’로 데뷔해 10년 넘도록 한 우물을 파고 있는 배우이고, 18편의 영화에 이름을 올렸으며 유명감독들이 작품을 만들 때 작은 배역이라도 꼭 쓰고 싶어하는 배우라는 것을.
어떤 배역이든 맡기면, 감독이 원하는 분위기를 제대로 내주는 배우고 짧은 시간 쓰일 장면이라도 한 판 신나게 놀아주는 광대다. 그런 인연들로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에 투전꾼1, ‘라디오 스타’에 험악남으로 우정출연했고 장윤현 감독의 ‘황진이’에도 형방으로 얼굴을 내밀게 됐다.
감독들이 알아주는 베테랑 광대
“이준익 감독께서 ‘이 역은 네가 해야해’하고 불러주시니 감사하지요. 역의 크기가 문제겠습니까. ‘라디오 스타’ 때는 영광스럽게도 박중훈 선배가 직접 전화를 주셨어요. ‘황진이’ 때는 제가 자청했습니다. 연출부에 전화를 걸어 ‘장 감독께서 영화를 만드시는데 내가 도와드리는 게 마땅하지’하며 역을 내놓으라 했습니다. 현장에서 ‘형방이 일주일에 술 몇 번 먹어요?’라고 여쭸더니, 장 감독께서 ‘매일 먹어’라고 답을 주시더라구요. 합이 잘 맞는 감독님이라고 할까요. 그 한마디로 서로 뭘 원하는 지, 뭘 해야하는 지 소통했습니다. 2신 정도 찍었는데, 카메라 앞에서 맘대로 놀아버렸죠.”
가만히 생각해보면 ‘황산벌’에서 욕 잘하던 첫번째 백제 장수, ‘와일드 카드’의 카리스마 당구장주인 곰탱이, 고수 주연 ‘썸’에서의 추형사가 조경훈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강성범, 심현섭과 함께 ‘개그콘서트’를 대학로에서 TV로 진출시킨 초기 멤버다. ‘개그콘서트’ 대학로 무대에서는 계속, TV에선 초창기 시절에 개그맨 조경훈을 만날 수 있었다.
“작아도 처음부터 끝까지 나오는 배역이 좋아”
유명배우도 아닌데 맡기기만 하면 모든 ‘OK’하는 게 아니냐고? 그렇지 않다. 조경훈은 자신이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라는 것도 알지만, 배우에게 경력 관리가 중요하다는 것도 아는 배우다.
“사실 지상파 방송에 나오면 금세 얼굴이 알려지겠지요. 하지만 미니시리즈 가운데 2∼3회 분 정도에 나왔다 들어가는 역은 제의가 들어와도 정중하게 거절합니다. 상대방 입장에서 볼 때는 ‘기회를 주려했는데 괘씸하다’ 싶으실 수도 있고, ‘꽤 비중있는 역인데 왜 저러나’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최대한 열심히 제 입장과 생각을 설명하지요. 아무리 작은 역이라도 첫 회부터 끝방까지 나오는 역이라면 흔쾌히 받아들입니다. 작은 역이든 큰 역이든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해야 어디가서 ‘내 작품이다’ 말할 수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같은 이유에서 단막극을 좋아합니다. 이번에 이효리의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에 출연한 것도 2회분을 함께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런 얼굴도 연기 잘하면 배우 하는구나’
생긴 건 딱 산적인데, 언변도 좋고 귀여운 미소를 간간이 보여주니 시간이 지날수록 정이 든다. 험악남 전문 배우처럼 생긴 얼굴이 배우에게 한계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볼수록 다양한 이미지들이 나온다. 10년 넘게 한 길을 걸어올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자신의 재능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아닙니다. 저는 배우를 잘해서 하는 게 아니라 너무 너무 재미있어서 이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어요. 맛있는 음식보다 더 맛있고 더 좋습니다. 그리고 저같은 배우도 있어야, 못 생긴 얼굴로 배우의 꿈을 꾸는 이들에게 희망이 생기지 않겠어요. ‘저런 얼굴도 연기를 할 줄 알면 배우가 되는구나’하는 희망이요.”
이미지 변신을 위해 수염을 깎아보는 건 어떠냐고 물었다.
“그런 조언들 많이 해주시는데요, 많은 분들이 조경훈을 알아볼 때 깎을 겁니다. 제가 어떤 모습으로 변하든, 그냥 조경훈으로 보일 때요. 지금은 수염이 일종의 트레이드 마크입니다.”
박희진과의 키스, 입술이 ‘파르르’
‘마강호텔’에서 이정은과 두 번의 키스 신을 선보인 성상배(조경훈 분). 옌볜 처녀 이정은을 바라보는 성상배의 반짝이는 눈빛과 밝은 표정 덕분에 거친 남자라는 이미지가 많이 완화된 것도 사실. 박희진과 키스한 소감, 묻지 않을 수 없다.
“박희진씨가 한 손에 닭을 들고 있는 상태로 키스를 해야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날개 달린 동물을 무서워합니다. 박희진씨도 무서워하더라구요. 둘 다 닭을 무서워하는데 닭을 들고 입을 맞추자니 입술이 파르르 떨렸습니다, 심장도 쿵쾅쿵쾅 울리구요.”
날개 달린 동물을 무서워하게 된 사연이라도 있는 걸까.
“어렸을 때 동네에 낮박쥐가 있었습니다. 형이 한 마리를 잡아 다리에 끈을 매달아 주었어요, 연처럼 가지고 놀라고요. 한참을 날리고 있는데, 박쥐가 화가 났나봐요. 날아와 제 얼굴을 덮으며 딱 붙었습니다. 그 때의 기억이 너무 끔찍해서 지금까지도 날개 달린 것이라면 참새도 무서워합니다. 닭이 넘쳐나는 옥상에서의 촬영과 키스신, 연기자여서 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당시를 회상하며 몸서리를 치는 조경훈. 닭 얘기만 하는 그에게 박희진과의 키스 장면 소감을 채근했다.
“너무 좋았지요. 18편의 영화를 찍으면서 여자와 합의 하에 키스 신을 찍은 게 처음이었습니다. 처음이라 정말 떨리고 긴장됐습니다. 첫 키스신이라 예쁘고 로맨틱하게 찍고 싶었는데, 립스틱이 번질 정도의 열렬한 키스 신이라 좀 아쉽기도 했구요. 제가 사람을 부여안는 팔힘이 셉니다. 갈비뼈 부딪히는 소리도 들리더라구요.(웃음)”
“포스터 속 배우들 눈빛 보고 선택해 주세요”
‘마강호텔’의 흥행 성적은 신통찮다. 박스오피스 5위권 밖에 머물고 있다. 때문에 조경훈은 요새 우울하다.
“관객분들이 많이 선택해 주시지 않으니까 기운이 쫙 빠집니다. 네티즌 평점을 보지 않으려고 하는데 보게 되더라구요. 그런데요, 그저 조폭 코미디라고, 정신없이 몰아쳐대는 코미디일 거라고 생각하고 보셨다가 예상과 달라서 낮은 평가를 내리시는 건 아닌가 싶어요. 물론 제 생각이지만요. 최성철 감독 스타일의 새로운 코미디, 요란하고 빠르지 않지만 상황과 관계 속에서 재미를 생산하는 코미디, 슬랩 스틱보다는 유머를 선사하는 코미디라고 생각하고 선택하시면 즐겁게 보실 수 있다고 자부합니다.”
인터뷰 말미, 조경훈이 재차 예비 관객분들께 하고 싶은 말이 있단다.
“인터넷 평점 보지 말고 오세요. 포스터에 있는 배우들 눈빛 보고 와주세요!”
어느 배우나 자신이 출연한 영화를 많은 관객들이 봐주길 바랄 것이다. 그동안 출연했던 어느 영화보다 배역이 크고 시나리오 작업부터, 촬영, 후반작업까지 모두 지켜보고 정성을 보태온 영화이기에 조경훈에게 ‘마강호텔’은 각별하다. 다음주 흥행 성적표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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