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말아톤’으로 500만 관객의 사랑을 받은 정윤철 감독이 신작을 들고 2년만에 찾아왔다. 21일 오후 2시 CGV용산에서 첫선을 보인 ‘좋지 아니한가(家)’.
정 감독 “관객 여러분이 영화의 공백을 메워주세요”
처음 공개된 ‘좋지 아니한가’는 신선했다. 심씨 일가를 중심으로 널뛰듯 진행되는 스토리, 누구보다 독특한 캐릭터를 덤덤하게 연기하는 배우들, 좀 싱겁다 싶으면 툭툭 웃음을 던져주는 폼새가 새롭다. 신선함은 미덕일 수 있지만 낯설음으로 관객을 소외시킬 수도 있다. 익숙하지 않은 영화를 만날 관객들을 위해 정 감독에게 ‘관람 가이드’를 부탁했다.
“스토리가 중요한 영화는 아니다. 캐릭터를 살리려는 영화다. 이야기보다는 한 장의 그림으로 남는 인상주의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전작 ‘말아톤’이 양념이 팍팍 들어간 푹 고은 사골국물이라면 ‘좋지 아니한가’는 양념을 걷어낸 지리, 원재료 맛이 느껴지는 맑은 탕이라고 생각한다. 관객들을 억지로 끌고가는 것을 자제했다. 관객들이 스스로 영화의 빈 곳을 메우며 즐기기를 바란다. 요새 녹차음료나 보리차음료가 인기있다고 들었다. 청량 음료의 센맛이 아니라 덤덤한 맛의 음식처럼, 강요되지 않는 재미를 스스로 찾아가며 직접 영화에 참여하는 즐거움을 주고 싶었다.”
천호진 “바쁜 시대에 뒤로 가는 영화도 필요”
아날로그적 감성을 잘 소화할 것 같아 가장 먼저 캐스팅된 배우이자 심씨 가족의 가장 역할을 맡은 천호진도 거들었다.
“영화 크랭크 인 전부터 정 감독에게 ‘무대처럼 리허설을 많이 하자’고 제안했다. 그래야 자연스럽게, 천연덕스럽게 연기를 하고 합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우리가 웃으면서 찍으면 보는 관객들은 재미가 없다. 셀 수 없이 리허설을 했다. 그 과정이 있었기에 이런 호흡이 나왔던 것 같다. 그 많은 과정을 거쳐 나온 호흡을 관객이 단번에 따라잡기는 쉽지 않을 줄 안다. 그러나 행간의 미를 찾을 수 있는 작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디지털로 정신없이 빨라진 세상에서 한걸음 뒤로 가고, 좀 느리게 가는 영화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심씨일가의 파란만장 위기 극복기
영화 속 심씨 일가의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 이모는 누구랄 것 없이 심상치 않은 개성을 지녔다.
어머니(문희경 분)는 노래방 청년에게 마음이 설레고, 아들(유아인 분)은 ‘우주에서 가장 나쁜’ 원조교제녀를 위해 살겠다고 나서고, 천방지축 딸(황보라 분)은 자신보다 더 인생이 정리 안되는 미스터리 선생(박해일 분)에게 마음이 흔들리고, 무협소설 작가를 표방하는 이모(김혜수 분)는 사랑에도 일에도 대책없는 백수다.
여기에 융통성 제로의 영어교사 아버지는 일생일대의 음란사건을 터뜨리며 심씨일가를 위기로 몰아넣는다. 개성은 강하되 협동의 기미라곤 보이지 않는 이 가족은 엄청난 위기를 과연 극복할 수 있을까. 정 감독은 일명 ‘강변 장면’으로 가족의 밑바닥에 있는 ‘끈’을 건져올린다.
“강변신은 시나리오 초고에는 없던 장면이다. 얽히고 설킨 갈등들이 드라마틱하게 풀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덕분에 20억원 예산으로 시작한 영화에 제작비 3억원이 추가돼 부담이 늘었지만, 장면을 찍는 닷새 동안 하루 200∼300명씩 보조출연자들이 오셔서 블록버스터 못지 않은 재미를 누렸다. 액션신과 드라마를 동시에 찍어야 하는 공간, 번잡함과 진지함이 동시에 담겨야 하는 어려운 장면이었다.”
바람같은 세월 속에 함께 있으니 좋지 아니한가
정 감독은 개성이 넘치다 못해 모래알처럼 분산돼 있는 가족의 모습이 영화적 재미를 위한 설정이 아니라, 이 시대 가족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가족의 대화합을 주창하려는 것일까.
“심씨네 가족은 서로에게 무관심하고 모든 것을 이해하려 하거나, 공유하려 하거나, 희생하려 하지 않는다. 달과 지구가 적당한 거리를 지키듯, 달 뒷면의 비밀은 각자의 것으로 남겨두고 사는 것도 좋지 않을까. 영화에 ‘바람같은 세월 속에 함께 있으니 좋지 아니한가’라는 말이 나오는데 참 좋아한다.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 ‘함께 있어’ 좋은 것이 가족이 아닌가 한다.”
영화에 무게감을 부여하는 천호진, 연기력으로 정평이 난 뮤지컬 배우 문희경이 스크린에 불어넣는 신선함, 황보라와 유아인의 재기발랄함, 다리를 떨어도 밥풀을 뒤집어써도 예쁜 김혜수, 많지 않은 등장에도 존재감을 지니는 박해일의 매력이 돋보이는 ‘좋지 아니한가’는 다음달 1일 개봉한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