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곳은 항상 낯익다.
'와일드 카드'의 양동근은 여기서 범인을 잡아 밥을 먹는 자신의 처지에 쓴 웃음을 짓고 뇌성마비 여인(문소리)과 사랑을 나누다 그녀 가족에게 잡혀온 '오아시스'의 설경구는 '성욕이 솟더냐'는 호통에 고개를 떨군다. 돈 챙기며 세상 '둥글게' 살려는 '흡혈형사 나도열' 김수로가 깐깐한 상사에게 '왜 그러냐'며 너스레를 떠는 곳도 여기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제 가보지 않아도 '꼭 들려본 것 같은' 곳으로 꼽는 경찰서. 모텔과 함께 한국 영화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장소라는 이 곳은 스크린에서는 실제로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등장하게 될까.
◇ 낡아도 좋아 = 일선 영화 로케이션 매니저들에 따르면 촬영 장소로 가장 많이 '러브콜'을 받는 경찰서는 '낡으면서도 주차장이 널찍한 곳'이다.
경찰서에서 찍는 작품이 액션물이나 70∼80년대 시대극이 대다수라 어두운 느낌을 잘 살려주는 오래된 이미지의 경찰서를 우선적으로 찾게 된다는 것.
한편 수십명의 제작 스태프가 장비를 꾸릴 공간이 있어야 하는 만큼 시내 중심가 경찰서처럼 주차장이 협소한 곳은 아무리 건물의 '간지(느낌)'가 좋아도 섭외 리스트에서 뺀다.
부산영상위원회의 이경섭 로케이션 지원팀장은 "또 사람들은 '경찰서' 하면 보통 위압감을 주는 장소를 떠올려 대리석 등을 많이 써 이미지가 밝은 신형 경찰서는 관객의 눈에 튀어 보인다"며 "가급적 작품과 무난하게 어울리는 장소를 준비해야 해 오래된 경찰서를 많이 찾게 된다"고 설명했다.
예외는 있다. '주유소 습격사건' '신라의 달밤'을 연출한 김상진 감독의 신작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은 대구에서 가장 최근에 지어진 성서 경찰서에서 촬영을 했다.
2005년에 완공해 말쑥한 새 건물을 갖춘 성서서가 '밝은 코미디'란 작품의 컨셉과 잘 어울려 섭외를 결정했다는 것이 제작진의 얘기다.
◇ 학교를 잡아라 = 경찰서 현장 촬영은 통상 3일이 한계다.
형사과 당직 사무실처럼 24시간 운영되는 곳이 많아 오랜 기간 촬영팀이 자리를 차지할 수 없다는 것. 이 때문에 주인공이 경찰관이라 경찰서 장면이 많은 작품은 부득불 세트 촬영을 하게 된다.
경찰서 세트 장소에도 '단골 손님'은 있다. 오래된 학교와 관공서 건물이 바로 주인공.
복도와 내부 분위기가 대중이 보통 떠올리는 어두운 경찰서 이미지와 잘 맞고 각 교실이나 방마다 형사과, 조사실 등 필요한 공간을 지어 넣을 수 있어 세트 제작이 편하기 때문이다.
변혁 감독의 스릴러물 '주홍글씨'는 주인공 한석규가 근무하는 경찰서 장면을 찍기 위해 서울 용산구 후암동 옛 수도여고 건물 안에 세트를 지었다.
황정민이 타락한 형사로 나온 '사생결단'은 부산 서면 개성중 건물에 경찰서 세트를 만든 경우.
최동훈 감독의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에 나오는 경찰서는 옛 부산지방법원 청사(현 동아대 박물관) 2층에 지어진 세트다.
제작진은 바로 밑 1층에는 주인공들이 '한탕'을 하는 한국은행 세트를 만들어 '범행 장소'와 '수사 본부'를 계단 하나로 오가며 찍을 수 있게 했다.
◇ 강력3반이 아니라 강력3팀? = 영화 속 경찰서는 현실과 다른 '옥의 티'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촬영에 앞서 감독이 실제 경찰서를 취재하며 찍은 사진과 영상 등을 참조하지만 각 장면마다 일선 경찰관의 고증을 받는 경우는 드문 편이기 때문이다.
김민준과 허준호가 주연을 맡은 '강력3반'은 그 좋은 예. 이 영화가 개봉하기 약 8개월 전인 2005년 1월에는 전국 경찰서에 팀제가 도입되면서 예전 강력반이 강력팀'으로 바뀌었다. 현실을 까다롭게 따지자면 영화 제목은 '강력3팀'이 맞다.
올해 초 개봉한 '올드미스다이어리(올미다)'에도 실제 경찰서와 다른 장면이 있다.
주인공 예지원의 삼촌 우현은 은행강도로 오해를 사 경찰서에 붙잡혀 온 뒤 같은 사무실 바로 옆 자리에서 성추행으로 조사를 받고 있던 진짜 강도와 마주치게 된다.
그러나 영화와 달리 일선 서울 경찰서에서는 강력팀과 폭력팀 사무실이 완전히 나눠져 있다. 강력팀이 맡는 은행강도 용의자가 폭력팀 소관인 성추행 사건 피의자와 같은 공간에서 조사를 받을 가능성은 '0'에 가깝다는 것이 경찰관들의 설명.
경찰복 차림의 형사가 범인을 조사하는 모습도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사복 근무가 원칙인 형사들이 경찰서에서 정복을 입는 경우는 경찰의날 행사를 비롯, 1년 동안 몇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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