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美 학계에 한류 전파하는 박정숙

"한류는 한국에 온 기회입니다. 이를 계기로 한국은 아시아 문화의 허브가 될 수 있습니다."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박정숙(37)의 목소리는 매우 밝았다. 현지시각으로 오전 2시가 넘었지만 그는 씩씩한 목소리로 통화에 응했다. "할 일이 너무 많아 잠잘 시간도 없다"면서.

방송인 박정숙이 한류 전도사로 나섰다. 그런데 가수 비나 드라마 '대장금' 등과는 좀 다른 방식이다. 세계 학계에 한류를 전파하고 연구 붐을 지피고 있는 것이다.

16일 미국 하버드대 행정대학원인 케네디스쿨에서 열린 '한류 인 아시아:다이얼로그(Hallyu in Asia:A Dialogue)' 토론회는 미국 학회에서 한류를 학문적으로 접근한 첫 번째 행사였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언론을 통해서는 발제자로 나선 가수 겸 프로듀서 박진영의 발언이 화제가 됐지만 사실 이 행사의 공신은 박정숙이다. 현재 컬럼비아대 국제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박정숙은 지난해 9월부터 이 행사 준비에 뛰어들었다.

행사를 준비한 제이슨 임 국제협상클럽 회장은 "박정숙 씨가 한류를 국제정치와 연계시켜 연구하지 않았다면 이러한 한류 이벤트가 케네디스쿨의 문턱을 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전했다. 박정숙은 이번 토론회에서 '국제관계의 이론:구성주의(Constructivism) 시각에서 본 아시아 국제관계를 재구성한 한류의 역할'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아시아에서 새롭게 인 한류를 국제관계를 규정짓는 하나의 국제질서로 조명한 것이다.

"사실 저 역시도 한류는 우리 한국인들만 관심 있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외국인, 특히 서양인들이 더 흥미를 갖는 것을 보고 한류가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가를 느꼈고 우리 스스로 더 소중히 여겨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 동안 여기저기서 '한류', '한류' 하니까 좀 쉽게 생각한 게 있었는데 그게 아니더라구요. 이번 토론회 끝나고 가장 크게 보람을 느낀 것은 참석한 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한류를 학문적으로 연구해봐야겠다'고 말할 때였어요."

"사실 실례를 들어 재미있게 얘기를 끌어간 박진영 씨와 달리 전 학문적으로 어렵게 얘기를 풀어나가야 해서 좀 불만이긴 했다"며 살짝 애교 섞인 푸념을 털어놓은 박정숙은 "이번 제 발제의 핵심은 한류가 조지프 나이 교수(케네디스쿨ㆍ외교안보)의 '소프트 파워' 개념을 넘어 생명이 있는 '오가닉 파워(organic power)'의 성격을 갖고 있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현실주의와 자유주의가 20세기 국제질서를 규정한 기본 프레임이었다면 21세기에는 구성주의로 세계질서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또 '소프트 파워'가 의도적으로 수용자에게 문화를 설득시키는 개념이라며 '오가닉 파워'는 수용자 스스로 문화를 받아들이는 개념입니다. 한류는 소비자 지향의 문화로 북한과 같은 고립사회에도 한국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능하게 합니다. 외교가 할 수 없는 민간 감정부분을 소통시키는 도구죠."

MBC TV '임성훈과 함께' 등을 진행하며 MC로 이름을 날리던 박정숙이 미국 유학길에 오른 것은 2004년 10월. 처음에는 연구원 자격으로 초청받았던 컬럼비아대에서 2006년 9월부터 '국제관계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중이다. 그 사이 일본 게이오대 법학부에서 꾸린 연구 프로젝트 '시민사회와 문화 연구' 팀의 일원으로 도쿄에서 지내기도 했다.

그는 올해 말 학위를 따는 것을 목표로 현재 '동아시아 국제관계를 만들어가는 한류의 역할'을 주제로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말 그대로 한류를 학문적으로 파고드는 중.

박정숙은 "한류가 국제관계의 확실한 영향 요소가 될지 여부는 좀더 기다려봐야겠지만 아시아의 상호 이해와 평화의 도구가 될 것은 확신한다"면서 "미국에 머물면서 한류에 대한 외국인의 관심이 상당하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아주 특이하게 생각한다. 과거 미국이나 프랑스 문화가 세계에 전파됐던 것과 비견된다. 외국 친구들이 '안녕하세요' 등 한국말을 할 줄 아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고 전했다.

"한류는 분명히 확산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꾸준히 좋은 콘텐츠를 공급해야 합니다. 한류의 전망은 콘텐츠의 질 여하에 달려 있는 것이죠."

한편 그는 "한류 발전을 위해서는 한류라는 상표를 포기해야 한다"는 박진영의 발언에 대해 "민족성과 민족주의는 다른 개념"이라 잘라 말했다.

"민족성이 묻어나지 않는 문화는 죽은 문화와 같습니다. '겨울 연가' 이후 배용준 씨가 출연한 작품이 일본에서 성공하지 못한 것에 대해 일본인들은 '한국적인 느낌이 별로 나지 않는다' '너무 한국적이지 않다'는 평을 합니다. 박진영 씨는 민족주의 배제를 주장했지만 민족주의와 민족성은 다른 것입니다. 민족성이 묻어나지 않는 이민족의 문화는 수용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지 않습니다."

박정숙은 컬럼비아대에서 학위를 받는 대로 내년 봄부터 경희대 국제교육원 강단에 설 전망이다. 맡을 과목은 '대중문화의 이해'.

"객원교수로 임용됐다는 통보를 최근 받았어요. 방송인으로서도 욕심이 큰 만큼 방송활동과 병행할 생각입니다. 여성 MC의 파워가 느껴지는 프로그램을 해보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 지금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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