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레이프 오베 안스네스

그것은 피아노 소리가 아니었다. 피아노로 구현된 꿈과 환상이었다.

1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노르웨이의 피아니스트 레이프 오베 안스네스의 리사이틀에 참석한 청중은 그의 피아노가 창조하는 달콤하고도 낯선 상상의 세계를 공유했다. 그것은 매우 아름답고 독특한 체험이었다.

베토벤에서부터 무소르그스키까지, 소나타에서 모음곡까지, 시대와 형식을 넘나드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이 음악회에서 안스네스는 자유롭고 다채로운 자신의 판타지를 펼쳐 보였다.

그의 피아노연주는 화려하거나 과시적이지 않지만, 꿈결 같이 부드러운 음색과 노래하는 듯한 레가토, 그리고 곡의 구조를 꿰뚫는 통찰력으로 인해 독자적인 경지를 이루고 있었다.

첫 곡으로 연주한 그리그의 '노르웨이 민요에 의한 변주곡 형식의 발라드'와 슈만의 '4개의 피아노 소품'은 일반적인 연주회 무대에서는 거의 들어볼 기회가 없는 희귀 레퍼토리다.

음반으로도 구하기 쉽지 않은 이 두 작품에 대해 대개의 청중은 작곡가의 음악 스타일에 대한 선입견 이외에 아무런 예비지식 없이 안스네스의 연주로 이 곡을 처음 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곡의 낯선 작품들이 즉각적인 청중의 호응을 얻어낼 수 있었던 것은 안스네스의 잘 다듬어진 톤의 매력과 설득력 있는 음악해석 덕분이다.

그리그의 발라드에서는 소위 '북구의 청정함'이라 불리는 안스네스 특유의 음색이 빛났다. 마치 약음기를 낀 현의 음색과도 같이 부드럽고 감미로운 그의 피아노 톤은 그 자체만으로도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신비스러운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음색 뿐만이 아니었다. 안스네스는 이 곡의 주제와 변주, 주선율과 장식음형 등의 위계 구조를 피아노의 음색과 강약의 차이로 뚜렷하게 구분해내며 마치 종류가 다른 여러 악기들이 서로 어울려 앙상블을 하는 듯한 연주를 선보였다.

피아노를 통해 오케스트라 소리를 표현하고자 하는 모든 피아니스트들의 꿈을 그는 이미 실현해내고 있었다.

음악회 전반부에 청중에게 다소 생소한 작품들이 안스네스의 호소력 있는 연주로 호응을 얻었다면, 후반부에는 그 반대의 이유로 열광적인 갈채를 받았다.

슈만의 소품에 이어 연주한 베토벤의 피아노소나타 32번과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은 음악애호가들에게는 매우 잘 알려진 명곡이다.

그러나 그토록 유명한 명곡은 안스네스의 손을 거치면서 낯설고 매혹적인 새로운 음악으로 탄생했고, 청중은 그가 새롭게 제시하는 베토벤과 무소르그스키의 음악을 들으며 그의 놀라운 상상력에 경탄했다.

특히 베토벤의 마지막 피아노소나타인 제32번의 연주는 매우 새로웠다. 자유로운 토카타나 환상곡을 연주하듯 리듬과 템포를 자의적으로 처리하고 페달을 많이 밟아 음의 명료함을 의도적으로 흐리는 등, 일반적인 베토벤 연주에서는 보기 어려운 여러 가지 특징이 나타났다.

그러나 1악장을 지나 2악장이 이어지자 그 몽환적인 피아노 음색을 통해 마치 인간의 세계를 초월한 듯한 영원의 세계가 펼쳐졌고 그 자리의 청중 모두 그 음악에 그대로 설득 당할 수밖에 없었다.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 연주에서는 각 그림에 대한 음악적 묘사도 훌륭했지만, 각 곡들 사이의 짧은 삽입곡인 '프롬나드'를 다음 곡과의 연계성을 살려 표현함으로써 음악적 논리를 구축한 점이 돋보였다.

오케스트라 금관악기군의 포효와도 같이 당당하게 울려 퍼졌던 '키예프의 대문'의 웅장한 마무리로 음악회의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고, 연주가 끝나자 기립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안스네스는 몸포우의 소품과 리스트의 즉흥왈츠, 멘델스존의 무언가 등, 최근에 발매한 앨범 '호라이즌'에 수록된 곡을 중심으로 네 곡의 앙코르 곡을 연주해 관객들의 환호에 답했다.

그날 청중의 대부분은 20-30대의 젊은 클래식 마니아들이나 피아노 전공자들로 구성되어 있어 근래 보기 드문 집중력 높은 관람 분위기를 형성했다.

그러나 이처럼 뛰어난 피아니스트의 연주회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의 1층 좌석도 다 차지 않은 상태에서 치러졌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간혹 청중은 많지만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는 클래식 음악회가 있다. 이런 경우 음악에 별 관심이 없는 초대 손님이 청중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한 음에 깃든 미세한 뉘앙스마저 놓치지 않으려는 진지한 청중에게 초대 손님이 많은 이런 음악회는 별로 반갑지 않다.

그런 점에서 안스네스 리사이틀의 청중은 클래식음악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이상적인 청중이었다.

그러나 과연 우리나라에서 클래식음악을 듣는 진지한 청중의 숫자가 과연 이 정도밖에 안되는 것인가 하는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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