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필 새출발 알리는 듯 가능성 엿보인 힘찬 선율
그동안의 모든 어려움을 헤치고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듯한 연주회였다.
지난 8일 오후 8시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보헤미안의 자유와 낭만’이란 주제로 열린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하 경기필)의 제82회 정기연주회는 경기필 마니아들이 1층 객석을 가득 메운 가운데 러시아의 떠오르는 지휘자 마크 카딘의 힘찬 지휘로 신세계를 향한 새출발을 선언하는듯 했다.
이날 정기연주회는 바이올리니스트 구본주의 협연 무대와 함께 러시아의 떠오르는 차세대 지휘자 마크 카딘이 경기필을 객원 지휘하는 자리로 그의 지휘력을 볼 수 있는 자리였다.
차이코프스키의 ‘Festival Coronation March(대관식 행진곡)’이 포문을 열었다. 이 작품은 축전음악의 하나로 1881년 러시아의 알렉산더 3세 황제의 대관식을 위해 지은 곡.
지휘자와 함께 보라색 롱드레스를 입은 바이올리니스트 구본주가 등장했다. 구본주는 짧은 고요함 속에 정적을 깨는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 G단조 Op.26 바이올린 독주를 선보여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때로는 느리게, 때로는 빠르게, 또 격정적이면서도 감미로운 선율이 흐를 때에는 객석에선 기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그의 독주에 빠져들었다.
때때로 오케스트라가 침묵하는 사이 울려퍼지는 구본주의 독주는 고요를 깨는 외침같기도 했고 조용한 호숫가에 한 마리 백조가 춤을 추듯 감미로운 음이 객석으로 고스란히 전달됐다.
3악장 Allegro energico(정력적인 빠르기로)에서 구본주의 독주는 빛을 발했다. 경기필의 협연도 군더더기 없이 지휘자의 손끝을 따라 멋진 화음을 이뤄냈고 관객들도 25분간의 독주가 끝났을 때 우뢰와 같은 3번의 커튼콜로 멋진 연주에 화답했다.
다만 지휘자 마크 카딘이 연주를 끝낸 구본주와 인사할 때 짖궂다고 생각들만큼 키스세례(?)를 퍼붓고 3번씩이나 커튼콜을 유도한 모습에선 연주자가 약간 당혹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일라이트는 짧은 휴식시간 뒤에 마지막으로 선보인 드보르작의 교향곡 9번 E단조 Op.95 ‘신세계에서’. 아마 최근 경기필의 상황을 한방에 날려 버리는듯한, 경기필의 새 출발을 의미하는 선곡이었다.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등장한 마크 카딘은 기존 엄숙한 분위기의 지휘자와 달리 연주회 중간중간 뛰어오르기도 하고 손에 힘을 모아 뻗기도 하며 맺고 끊고 때로는 물흐르듯 마치 춤추는듯한 몸놀림으로 객석을 묘하게 끌어당기는 맛을 느끼도록 했다.
2악장에서 우리 귀에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올 때에는 차분하고 감미운 선율이 객석까지 전달돼 왔다. 준비된 연주가 끝나자 마크 카딘은 개그맨 같은 동작으로 단원들과 악수하고 손을 흔들며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했고 관객들은 2번의 커튼콜로 화답했다. 그러나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 No2’로 앵콜곡을 이끌어냈지만 감동을 이어가려던 바람은 짧은 연주로 아쉬움으로 남았다.
최근 경기필은 단원들의 오디션문제로 내홍을 겪고 있다. 오디션에 탈락한 단원들을 채우지 못한 상황에서 이날 공연의 빈자리는 객원연주자 24명으로 채워 연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작은 가능성도 엿보였다.
/이종현기자 major01@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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