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의 성공이었다.
7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서울시향 정기연주회에 음악애호가들은 호칸 하르덴베리에르가 황홀한 트럼펫 음색을 선보인 전반부에는 매료되었다가 앙상블 난조를 보인 서울시향의 후반 연주에는 실망했다.
그러나 당초 이번 정기연주회 초점이 이 시대 최고의 트럼펫 연주자로 손꼽히는 하르덴베리에르에게 맞춰졌으니만큼 목표는 달성한 셈이다.
음악회는 스트라빈스키의 발레음악 '요정의 입맞춤'에 의한 디베르티멘토로 시작했다.
스트라빈스키는 원시주의 리듬과 전위적인 관현악 색채로 20세기 음악혁명을 주도한 작곡가로 잘 알려졌으나 이 작품만큼은 차이코프스키의 발레음악에 많은 영향을 받아 동화적이고 환상적이다.
프로그램 구성상 차이코프스키와 관련한 작품을 첫 곡에 배치해 후반부에 연주할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과의 유기적 연관성을 보여주고자 한 기획은 적절한 선택이었다.
연주는 대체로 무난했으나 객원지휘를 맡은 미샤 산토라는 단순히 박자를 맞추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지휘로 일관해 이 곡의 환상적인 관현악 색채와 춤곡 리듬의 활기를 충분히 살려내지 못했다.
첫 곡이 끝나고 이 시대 최고의 트럼펫 연주자 호칸 하르덴베리에르가 무대에 나타나자마자 음악회 분위기는 돌연 뜨겁게 달아올랐다. 플뤼겔호른과 C조 트럼펫, 그리고 피콜로 트럼펫까지 세 대 악기를 들고 등장한 '트럼펫 제왕'은 그 모습만으로도 청중을 환호와 열광으로 몰아넣었다.
그가 연주한 터니지의 트럼펫협주곡은 이 악기의 다양한 음색과 기교를 보여주는 독특한 작품으로 하르덴베리에르를 위해 특별히 작곡됐다.
그는 낮고 어두운 음색의 플뤼겔호른부터 찬란하고 화려한 소리를 내는 피콜로 트럼펫에 이르기까지 악기를 바꿔가며 트럼펫으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음색의 가능성을 실현해 냈고, 또, 그가 창조한 경이로운 '소리의 우주'를 경험한 관객들은 이 놀라운 트럼펫 주자에게 폭발적인 환호와 경탄의 박수로 보답했다.
협주곡 연주를 마친 하르덴베리에르는 앙코르로 재즈 작품인 'My Funny Valentine'과 스웨덴 민요 한 곡을 들려주었다.
그는 앙코르곡 모두 약음기를 낀 트럼펫으로 연주했는데, 그 소리는 이제까지 상상할 수 없던 섬세한 관능의 극한이었다. 그 순간 청중은 여린 소리로 끊어질 듯 나지막이 연주되는 트럼펫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깊은 음악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짧은 휴식 후에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제6번 '비창'이 연주됐다. 불안하게 출발한 첫 저음현의 도입부부터 고요한 마무리에 이르기까지 오케스트라의 앙상블은 계속 삐걱거렸다.
4악장에서는 지휘자와 사인이 맞지 않아 몇몇 단원이 앞질러 연주하는 대형사고도 있었다. 큰 원인은 오케스트라를 장악하지 못한 지휘자에게 있다고 할 수 있지만, 같은 악단이 지휘자에 따라 이토록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 데는 좀 더 생각해 볼 만한 대목이 있다.
오케스트라는 단원 개개인이 지휘자 한 명에게만 의존하는 단순 조직이 아니다. 그 거대한 조직이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중간 관리자'의 역할이 필요하다.
좋은 오케스트라일수록 악장과 파트 수석들의 리드가 훌륭하고 곳곳에 중간관리자 격의 리더들이 전체 앙상블에 기여하기 때문에 위기 대처 능력이 뛰어나다.
오디션을 통해 단원 구성을 재정비한지 얼마 되지 않고 몇몇 파트 수석은 공석인 채로 남아있는 서울시향의 현실을 감안할 때 아직까지는 지휘자 한 사람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서울시향이 앞으로 국내 정상을 넘어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자체적인 앙상블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여러 가지 훈련이 필요할 것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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