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면 1= MBC 오락 프로그램 ‘무한도전’ 13일자 방송. 유재석을 비롯한 출연자 5명이 노홍철의 집을 찾았다. 방안 이곳저곳을 살펴보다 유재석이 갑자기 딸꾹질을 하기 시작한다. 하하는 “내가 스펀지에서 봤는데, 몸을 90도로 숙여 물을 먹으면 딸꾹질이 멈춘대”라고 말했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딸꾹질로 넘어갔다.
‘무한도전’팀은 ‘스펀지’에 나온 생활 지식을 몸소 실천해 본다.
내친김에 스펀지에 나오는 ‘지식 판정단’처럼 별점까지 매긴다. ‘생활에 도움이 되는 방송 스펀지’라는 자막과 “빛나라, 지식의 별”이란 멘트도 그대로 사용됐다. ‘스펀지’와 ‘무한도전’은 토요일 저녁 같은 시간대에 방송되는 KBS와 MBC의 경쟁 오락 프로그램이다.
# 장면 2= KBS 수목 드라마 ‘달자의 봄’ 18일자 요리 장면. 주인공 달자(채림)가 김치죽을 만들 때 인기 사극 ‘대장금’의 주제곡 ‘오나라’가 흘러나온다. 노련하게 음식을 만드는 달자의 모습을 재미있게 표현하느라 장금이 요리장면 테마곡을 사용한 것이다. ‘달자의 봄’과 ‘대장금’은 각각 KBS와 MBC 드라마다.
◇ ‘경쟁자라도 좋다. 도움 된다면 무조건…’ 방송사 ‘경계 허물기’
치열한 경쟁 관계인 지상파 방송사간 경계가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다른 방송사 인기 프로그램명을 언급하는 것은 물론이고 주제곡, 에피소드까지 적극 차용한다.
과거엔 지상파 방송에서 타사의 요소가 끼어드는 것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경쟁 방송의 아이템을 차용하는 것은 아예 금기였다. 타인이자 경쟁자였고 넘어야 할 산이었다. 다른 방송사 이름을 말하지 않는 것은 암묵적인 약속이기도 했다. 언급할 일이 생긴다면 “모 방송사”라며 조심스럽게 말하는 정도였다. 때문에 최근 달라지고 있는 추세는 신선하다 못해 파격적이다.
시청자들은 방송사간 일종의 '패러디'를 긍정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무한도전에서 경쟁사 프로인 스펀지 내용으로 상당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정말 신선했다(아이디:오뜨)” “국내 TV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아마도 상당한 인기와 지지를 얻고 있는 만큼 제작진에서도 자신감 있게 방송에 포함시킨 것 같다(아이디:Ebony_Lake)” 등 신선한 발상과 여유에 공감한다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 방송사 경계 파괴, 왜?
지상파 방송사 간 경계가 무너져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배우나 개그맨 등 출연자 교류가 활발해졌기 때문이다. 최근 연기자나 개그맨은 대부분은 특정 방송사에 소속되기 보다는 프리랜서를 선언하며 지상파 3사를 넘나들고 있다.
드라마 등 방송 프로그램 제작이 외주 제작사로 넘어가고 있다는 점도 한몫 하고 있다. 외주 제작자는 상대적으로 방송국 눈치를 덜 보게 된다. 프로그램 질을 높이기 위해 모든 방송사 소재를 자유자재로 쓰는 ‘오픈 마인드’를 갖춘 셈이다.
경쟁력 있는 프로그램과 코너가 방송국이란 플랫폼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KBS ‘개그콘서트’ 인기 코너 ‘마빡이’가 가장 좋은 예다. ‘마빡이’가 인기를 얻자 MBC ‘황금어장’등 다른 방송사 프로그램이 앞다퉈 ‘마빡이’를 흉내내기 시작했다. 시청자가 좋아한다면 다른 방송사 아이템이라도 주저없이 활용한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는 것이다.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 씨는 “연기자나 개그맨의 교류 현상으로 특정 방송국에 대한 소속감이 떨어진 상태에서 방송사간 영역 파괴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사모님이나 마빡이 같은 대체 불가능한 킬러 콘텐츠가 계속 등장하는 상황에서 이런 추세는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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