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개봉하는 ‘마파도2’에 당당히 대선배들과 함께 주연 자리에 이름을 올린 이규한. 9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2005년 스타배우 하나 없이, 게다가 중년 여배우들을 대거 주인공으로 내세우고도 참신한 ‘가학적 욕설 코미디’로 관객몰이에 성공했던 ‘마파도’. 전작의 흥행 재현을 위해 돌아온 ‘마파도2’에서 이규한에게 눈길이 가는 이유는 두 가지다.
마파도의 유일하고도 수상한 ‘젊은 피’
먼저 마파도 유일의 ‘젊은 피’라는 점이다. 여운계, 김을동, 김형자, 김지영, 길해연 다섯 할매의 거친 입담과 황당 캐릭터, 이문식이 한몸 바쳐 웃겨주는 재미가 ‘마파도2’의 가장 큰 미덕이지만 ‘꽃미남’ 하나쯤 있어줘야 관객 눈이 즐겁다. 군에 간 이정진을 대신에 투입된 이규한은 웬만한 여자 연예인보다 작은 얼굴에 성냥개비 다섯개는 너끈히 올라가는 긴 속눈썹으로 할매들과 여성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둘째는 영화 내내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지내면서도 극의 긴장감을 유지시킨다는 점이다. 자살여행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데다 뭔가 ‘비밀’을 지녔다는 뉘앙스를 풍겨 그에게서 눈길을 놓기 어렵다. 특히 그가 앉으나 서나 메고 다니는 가방은 긴장감을 증폭시킨다.
공개할 순 없지만, 영화 후반부에 가면 그의 ‘비밀’ 임무가 드러난다. 다만 가방의 비밀은 러닝 타임 때문에 편집돼 아쉬움이 남는다. 영화 내내 ‘가방에 뭐가 들어있을까, 그의 비밀 임무와 관련이 있을텐데’ 궁금해 한 관객의 호기심을 풀어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쉽고, 극적 긴장감을 유지하는 도구로 사용해놓고 그 실체를 보여주지 않아 ‘속았다’는 느낌이 든다. 이규한도 ‘마파도2’에서 아쉬운 부분을 묻자, ‘가방’ 얘기를 꺼냈다.
대선배들 속에서 주눅들지 않고 ‘꿋꿋이’
외모와 캐릭터가 평범하지 않다고 해서 연기경력 40∼50년의 대선배들 사이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기란 쉽지 않다. 이규한은 주눅들지 않고, 비중 이상으로 ‘오버’하지도 않고 제몫만큼을 해냈다. 극 중 ‘정기영’은 결코 작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먼저 연기파들과의 캐스팅 부담스럽지 않았을까.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사랑은 기적이 필요해’를 연이어 하면서, 스크린에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난해 ‘태양의 이면’이라는 독립영화를 먼저 찍었구요. 다음에 하게 된 영화가 ‘마파도2’입니다. 연기파 선배들과 캐스팅된 자체가 영광이니 제가 골랐다고 표현하기는 뭣하지만, 선배들께 많이 배울 수도 있고 흥행도 묻어갈 수 있겠다 싶어(웃음) 흔쾌히 출연했습니다.”
무엇을 배웠나.
“테크닉이 아니라 자세를 배웠습니다. 연기를 인생처럼 여기며 살아오신 분들을 보며 존경심이 들었고, 반짝하고 사라지는 배우가 아니라 호흡과 생명력이 긴 배우가 되어야 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그렇게 되기 위해 제가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겠지만요.”
“김형자 섹시 누나, 김을동 포근한 어머니”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의 김선아, ‘사랑은 기적이 필요해’의 김원희에 이어 다섯 할매까지. 주로 연상과 호흡을 맞춰온 이규한에게 그녀들에 대한 일촌평을 주문했다.
“김선아씨는 누나지만 정말 귀여워요. 김원희씨는 성격 좋고 호탕하고 대장부 같구요.”
이어지는 할매들에 대한 이야기. “모두들 그러시지만 김지영씨는 특히 연기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시구요, 여운계씨는 1편의 캐릭터처럼 지적이고 위트 있으시고, 김을동씨는 엄마처럼 따뜻하게 챙겨주시고 연기도 지도해 주셨어요. 김형자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섹시 누나인데요 너무 귀여우세요, 길해연씨는 차분하고 단아하시구요.”
그럼 할매들은 이규한을 어떻게 생각할까. 지난 12일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만난 그녀들에게 물었다.
먼저 김을동의 답변. “연기할 때나 대기할 때나 조용했어요. 말은 거의 없는데 계속 구경을 했어요. 자기 촬영 신이 아니어도 꼭 지켜봤어요. 배우려는 자세가 좋았고, 그래서 열심히 가르쳐줬지요. 사실 내가 여자 연기자들보다 남자 연기자 가르치는 걸 좋아해요(웃음).”
실제로 김을동은 과거 유동근, 전광렬, 박상원, 윤승원 등 당대의 미남배우들에게 연기를 가르쳤고, 이들에게 ‘김을동 사단’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노라며 ‘남자배우 연기지도 이력’을 덧붙여 공개했다.
김형자는 “말 없고 귀여운 후배예요. 가만히 있다가 한마디씩 툭툭 내뱉는데 그게 재미있어요. 본인은 웃지 않으면서 사람들을 웃기는 재주가 있더라구요. 예쁘장하고 매력있게 생긴 것도 배우로서 장점이에요”라고 답했다.
영화에는 섹시 할매 마산댁(김형자 분)이 기영이(이규한 분)의 바지를 벗겨 엉덩이가 노출되는 장면이 등장한다. 촬영 에피소드를 물었다. 김형자는 순식간에 촬영이 끝나 특별한 후일담은 없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런 장면은 서로 민망하니 ‘한 번에 가자’ 싶은 마음에 바지를 확 내렸어요. 뒤만 내려가면 되는데 앞도 위험했나봐요. 규한이가 꽉 잡고 수습하기 바빴고, 감독님께서 느낌이 좋다고 큐 사인을 주셨어요.”
“연기자로 각인되고 싶어요”
이규한은 지금까지 가장 인상깊었던 캐릭터로 드라마 ‘카이스트’에서 맡았던 대학원생 역할을 꼽았다.
“지금보다 몸무게가 20kg은 더 나갔고, 노랗게 머리 염색을 하고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인물이었어요. 구지원(이은주 분)을 맘에 두고, 김정태(김정현 분)와 학술적인 차원과 인간적인 측면에서 대결을 벌이는 캐릭터였는데요. 연기할 때 몸에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굉장히 즐거웠었어요. 지금 연기하라고 하면 더 잘할 것 같은데 아쉬워요.”
이규한은 막 뜨기 시작할 때 군에 입대했다. 주위에서 만류하는 이도 많았지만, 어차피 한 번 다녀와야 할 곳이라면 빨리 갔다오자는 마음이었다. 조금만 더 인기를 얻은 뒤, 자리를 잡은 뒤 가자고 타협을 하다간 계속 늦춰질 것 같았다.
좋은 마음으로 군대에 갔지만 불안했다. 제대 후에도 계속 연기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짧지만 지난 연기 생활을 반성하고 제대 후 계획을 세웠다. 쉽지 않은 시간이 흘러 제대를 했다. 당시 이규한은 80kg의 거구였다.
군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남자배우에 대한 기준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몸짱 열풍에 휩싸여 있었다. 살을 빼지 않으면 이대로 주저앉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군에서 생각했던 연기들을 해보기 위해선 이 길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살을 뺐다. 별다른 방법도 없었다. 그저 굶으며 운동했다. 그렇게 해서 20kg을 감량했고, ‘내 이름은 김삼순’의 민현우 역할을 맡게 됐다. 몰라보게 달라진 탓에 성형의혹을 받기도 했지만, 배역을 맡아 기뻤다. 운이 따르는 걸까. 틈날 때마다 연기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은 덕일까. 줄줄이 드라마·영화의 주연 자리가 그의 차지가 되고 있다.
“저는 배우라서 어쩔 수 없이 살을 뺐지만, 여러분껜 절대 권하고 싶지 않아요. 정상적으로 칼로리를 섭취하며 운동으로 빼야지, 저처럼 굶으며 빼면 몸이 허약해져요. 그리고 배우로서도 아쉬운 점이 있어요. ‘카이스트’ 속 배역을 좋아하는데, 지금 맡으면 연기는 더 잘할지 몰라도 그 때의 그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을 거예요.”
황금돼지해, 그는 어떤 소원을 빌었을까.
“여러분들 돈 많이 버셨으면 좋겠구요, 저는 여러분께 연기자 이규한으로 각인되고 싶습니다. 계속 나아진다는 소리 듣는 배우이고 싶어요. 지켜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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