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완에게서 날선 눈빛을 본 적이 있었나? TV 속에서 언제나 사람 좋게 웃던 김창완이 눈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MBC 새 주말극 '하얀 거탑'(극본 이기원, 연출 안판석)에서 김창완이 맡은 역은 처세에 밝은 병원 부원장 우용길 교수. 연기에 발을 들인 1985년 이후 22년 만에 처음 맡는 '악역'이다.
둥근 안경만큼이나 모나지 않고 넉넉한 이웃집 아저씨 인상인 김창완의 입에서 "누가 봐도 좋은 기회는 누군가 봤기 때문에 좋은 기회가 아니다"라는 대사가 가만히 흘러나왔을 때 그에 대한 푸근한 기억은 이미 온데간데 없었다.
"저더러 극중 인물처럼 처세가 능하냐고 하는데 저는 오히려 대본 보고 (처세를) 배워요. 근데 요즘 그 정도로 안 사는 사람 있나요. 악인의 반대는 착한 사람이 아니라 착한 척하는 사람인지도 몰라요. 뭐, 악인도 악한 척하는 걸지도 모르죠."
김창완의 속 깊은 곳에 여태껏 연출자들이 눈치채지 못했던 선득함이 숨어 있었던 걸까. 한 격주간지 사진을 찍으면서 잔뜩 인상을 구기고 촬영에 임했고 편집자가 뭔가 느꼈는지 속 그림으로 쓰려던 사진을 표지로 올렸다. 이를 본 안판석 PD가 우용길 교수 캐릭터를 떠올렸고 20여 년 만의 악역 캐스팅이 결정됐다.
"데뷔만큼이나 악역도 우연이었어요. 85년에 데뷔했으니까 이젠 어디 가서 연기자라고 해도 거부감은 없죠. 하지만 그동안 '그 나물에 그 밥' 같은 역에 대한 불만은 있었어요. 새로운 역을 하고 싶었던 차에 좋은 기회가 온 거죠."
22년차 배우에게 연기 변신이라고 하면 뒤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김창완은 우용길 교수로 단번에 변신이라 불러도 좋을 새로운 면을 알렸다. 엇비슷한 역에서 맴돌던 그에게 이번 역할은 확실히 도전이었고 결국 성공했다.
노회한 뱀 같은 캐릭터지만 지난 연말 경기도 이천의 병원 세트 촬영 중에는 함께 일하는 배우와 스태프에게 근사한 콘서트를 선물하는 이웃집 아저씨로 돌아왔다. 기타를 가져와 촬영장 한가운데서 '꼬마야', '창문 넘어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 등 히트곡과 신청곡을 두루 부르고 자리가 자리인지라 병환 끝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는 노래도 불렀다.
"5분 빼기도 아깝게 촬영장 상황이 팽팽하게 돌아가고 있었어요. 저녁 먹고 기타 들고 왔더니 사람들이 놀라면서 다 모였죠. 아버지가 오랜 병환 끝에 돌아가셨는데 여기가 병원 세트긴 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되새기는 노래를 하고 싶다고 했어요. 그게 '이제야 보이네'였죠."
감동의 콘서트가 끝나고 사람들의 마음에 김창완의 인간적인 면모가 촉촉이 박힐 때쯤 김창완은 다시 우용길 교수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강행군. 감기에 걸려 초췌한 모습으로 나타났던 김창완은 "1~2시간밖에 못 잔다"며 기댄 벽에 머리를 살짝 쿵쿵 찧고 웃는다.
과연 김창완의 연기 변신 때문에 시청자들이 토끼눈을 뜨는 걸까. 우리 주변에 있음 직한 인물형을 과장을 걷어내고 그려내 소름이 돋았던 건 아닐까. 돌아온 답에 김창완의 진심이 묻어난다.
"수많은 드라마가 나오면서 악인의 전형이 생겼고 저는 거기서 좀 벗어나 있어서 파격으로 보이나봐요. 선한 역으로 20년간 나오다가 악역 하니까 어떤 분들은 제가 악역을 패러디하는 것처럼 느끼실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런 건 아니에요. 앞으로 김명민이나 젊은 친구들의 일품인 연기가 극의 중심을 잡을 테고 저는 빛나는 조연이 될 겁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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