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매주 수-목요일 밤 10시 안방극장에서는 오달자와 봉달희, 그리고 양순의가 한판 승부를 펼치게 됐다. 오달자는 3일부터 선보인 KBS 2TV '달자의 봄'의 주인공이고 봉달희는 17일 첫 방송하는 SBS TV '외과의사 봉달희'의 타이틀롤이다. 또 양순의는 10일 시작하는 MBC TV '궁S'의 주인공이다. 공교롭게 같은 시간대에 맞붙게 될 이들 세 여성의 캐릭터는 드라마를 보지 않고도 짐작 가능하다. 한번 들으면 잊기 힘든 이름이 대변하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 특이한 배역 이름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대부분 코믹한 성격의 드라마에서 평범하지 않은 작명법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데 그러한 작명법은 이름에서부터 시청자들에게 드라마의 성격을 각인시키겠다는 작가의 의지를 담고 있다(물론 '하늘이시여'나 '인어아가씨' 등 임성한 작가의 작품처럼 코미디가 아닌데도 특이한 이름을 짓는 사례도 있다).
코믹 드라마를 중심으로 배역의 작명법에 담긴 의미와 효과는 무엇인지 살펴봤다.
◇대발이에서 순애씨까지
코믹한 이름으로 시청자의 뇌리에 깊게 각인된 이름은 시청률 60%대의 경이적인 기록으로 사랑받은 '사랑이 뭐길래'(1992)의 '대발이'가 아마도 가장 대표적일 듯. 10여 년이 지난 현재도 많은 시청자들이 이 이름을 잊지 않고 있다. 더욱 특이한 것은 '대발이' 역의 최민수보다 그의 아버지로 출연한 이순재를 '대발이 아버지'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지난해 많은 사랑을 받았던 드라마 '돌아와요 순애씨' 역시 '순애'라는 이름을 폭넓게 회자시켰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30대 후반~40대 초반의 주인공에게 붙여진 순애라는 이름은 드라마의 리드미컬한 전개와 발맞춰 시청자들에게 진짜 극중 주인공과 같은 순애라는 인물이 주변에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주며 인기를 끌었다.
시청률 40%대를 행진하며 얼마 전 막을 내린 '소문난 칠공주' 역시 마찬가지. 언뜻 7명의 딸이 있는 집안 얘기로 보이는 제목은 그러나 '칠'자 돌림의 네 명의 딸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허를 찌르는 유머러스한 전법으로 쉽게 기억할 수 있는 제목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주인공인 덕칠, 미칠, 설칠, 종칠 등 네 딸의 이름 역시 드라마의 인기와 함께 깊은 인상을 줬다.
종영을 앞둔 '열아홉 순정'의 주인공 양국화는 연변처녀의 이미지를 대변하며 주부 시청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순박하고 착한 캐릭터가 '국화'라는 이름과 찰떡궁합을 이루고 있다.
2005년 MBC '내 이름은 김삼순'과 '굳세어라 금순아'도 주인공 이름에 딱 어울리는 줄거리와 연기로 빅히트를 기록했다.
◇달자ㆍ달희ㆍ순의의 경합
'달자의 봄'의 달자는 33세의 홈쇼핑채널 MD. 일에서는 똑부러진 여성이지만 연애에는 영 소질이 없는 노처녀다. 70~80년대를 상징하는 듯한 '달자'(1983년에는 '오달자의 봄'이라는 영화가 있었다)라는 이름을 2007년에 꺼내 든 제작진은 "친근한 이름을 찾던 중 달자를 선택하게 됐다"고 밝혔다.
사실 '달자'라는 이름에는 촌스러운 느낌이 강해 드라마가 시골 처녀의 상경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하지만, 제작진은 2007년에 맞게 달자를 시골처녀가 아닌 전문직 여성으로 설정하는 변화를 추구했다. 대신 연애에는 영 '꽝'이라는 설정을 통해 달자에서 느껴지는 정겨운 이미지를 담아내려고 한다.
'외과의사 봉달희'는 나름대로 정통 메디컬 드라마를 표방하고 있다. 그런 드라마에서 코믹함이 느껴지는 캐릭터 이름을 지은 까닭은 뭘까.
제작진은 "주인공 봉달희는 외과의사가 봉합수술(꿰매기)을 잘해야 하는 것에서 착안, '봉합의 달인'이라는 뜻으로 지었다"고 밝혔다.
이렇듯 의미심장한(?) 뜻을 담고 있는 봉달희는 극중 이미 전문의가 아니라 전문의를 향해 도전하는 늦깎이 사고뭉치 레지던트라는 점에서 의사가 풍기는 다소 딱딱한 이미지를 상쇄하고 있기도 하다. 그는 극중 '봉다리'라는 예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한편 이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 이름은 안중근이다. 그래서 작가는 한때 제목을 '의사 안중근'이라 지을 뻔도 했다. 이 역시 한번 들으면 쉽게 까먹지 못하게 하는 작명법. 그러나 오해의 소지와 함께 너무 코믹할 것 같아 제목으로 짓지는 않았다고 한다.
'궁S'의 '순의'는 갑작스런 사고로 부모를 잃고 궁녀로 일하며 생계를 꾸리는 엉뚱하고 발랄한 캐릭터. 처한 환경은 불우하지만 소녀의 순수함을 간직한 '푼수 걸'이다. 역시 '순의'와 어울린다.
이들 세 캐릭터가 수목 시간대에 맞붙게 되니 과연 시청자들에게 뇌리에 남을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지 주목된다.
◇시청자들의 빠른 몰입과 이해 도모
이러한 작명법에 대해 김영섭 SBS 책임프로듀서는 "배역 이름을 붙일 때 첫번째 원칙은 친숙하게 만들어 시청자들의 입에 빨리 붙도록 하는 것"이라며 "특히 캐릭터 중심으로 전개되는 코믹 드라마의 경우는 캐릭터를 한번에 설명할 수 있는 이름을 짓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달자'라는 이름에서는 촌스럽고 씩씩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나. 캐릭터 역시 그와 비슷할 것"이라며 "이름이 어려우면 시청자들이 헷갈려 한다. 시청자들이 인물 구성을 빨리 파악해야 드라마에 대한 몰입도 빨라진다"고 덧붙였다.
또한 "'돌아와요 순애씨'의 경우를 보면 중년 아줌마 시청자들이 주인공 순애를 자신들의 이웃, 친구로 받아들였다. 이름에서부터 친근감을 주면서 시청자로 하여금 '나와 비슷하구나'란 심정을 느끼게 해 드라마에 대한 몰입도 이끌었다"고 설명했다.
캐릭터를 내세운 코믹 드라마와 함께 인물들간의 관계 파악이 중요한 연속극에서도 배역 이름은 '은 아리영' '이주왕' '구왕모' '김배득' 등 특이한 이름이 시청자들을 흡입하는 데 도움이 되는 듯하다. 이들이 등장한 드라마들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것이 그 증거.
김 책임프로듀서는 "한때 멜로 드라마에서는 '난희', '다해'라는 여주인공 이름이 유행했다. 이유는 없다. 그러나 그런 인물들이 잇따라 등장하면서 그런 이름들이 멜로의 주인공과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으며 시청자들의 이해를 도왔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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