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개봉작부터 ‘오래된 정원’ ‘언니가 간다’ ‘허브’ 등 1월 개봉작까지 여성의 비중이 높은 영화들이 부쩍 많아졌다. 극을 이끌어가는 인물로서의 여성 캐릭터는 아무래도 남성의 보조자에 머물 때보다 강한 개성을 갖기 마련. 그 가운데는 시대를 앞서가는 여성도 있지만 여전히 의존적이고 미성숙한 여성들도 있다. 최근 영화들 속에 그려진 여성 캐릭터를 형태별로 분류해본다.
자립형 지난 4일 개봉된 ‘오래된 정원’의 한윤희(염정아)는 군계일학이라 불러도 될 만큼 두드러진 여성 캐릭터를 지녔다. 1980년대에 젊은 시절을 보낸 미술 교사(영화 후반부에는 대학 강사) 한윤희는 모든 면에서 주체적인 인물. 민주화운동 경력으로 도피 중이던 남자 오현우(지진희)를 숨겨주고,그와 연인이 되고,그가 떠난 후 혼자 아이를 키우는 등 모든 과정에서 한윤희는 삶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한다.
심지어 오현우에게 딸의 존재를 알리지도 않을 정도. 그뿐 아니라 학생운동에 나서는 대학생들과 소통하는 장면들을 통해 영화는 한윤희가 시대의 어둠을 피하거나 그에 압도당하지 않았음을,오히려 그 아픔을 감싸고 위로하면서 시대를 뚫고 나갔음을 보여준다. 한윤희의 비중은 황석영의 원작보다 더욱 커졌다. 임상수 감독은 “1980년대를 후회없이 잘 살았던 사람으로서 한윤희를 제시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오는 25일 개봉되는 미국 영화 ‘미스 포터’에서도 시대를 앞서간 여성을 볼 수 있다. ‘피터 래빗 이야기’라는 그림책을 만든 19세기 영국 여성 베아트리스 포터(르네 젤웨거)를 그린 작품. 당시 여성들이 부유한 남자와 결혼하는 데에만 관심을 쏟은 반면 포터는 재능을 살려 역사에 남을 그림책을 만들었고 가족의 반대에도 아랑곳 않고 사랑을 따라 초라한 배경의 남자를 택한다.
성장형 11일 개봉되는 ‘허브’의 주인공 차상은(강혜정)은 일곱 살 지능을 가졌다는 특징 때문에 얼핏 의존적으로 보이지만 따져보면 누구 못지 않게 강인한 인물이다. ‘바보 취급하는 사람은 팔을 깨물어줘라’는 등 혼자 살아갈 방법을 꾸준히 가르쳐온 엄마(배종옥) 덕에 상은은 당당하게 살아간다. 엄마가 곁을 떠나는 아픔을 겪으면서 더 성숙해져 주변 사람들에게 기대지 않고 혼자 서려고 애쓴다. 한창 인기몰이 중인 ‘미녀는 괴로워’의 한나(김아중)도 영화 초반에는 자기 비하로 괴로워했지만 후반에 가서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는 성장형 캐릭터다.
의존형 4일 개봉된 ‘언니가 간다’의 정주(고소영)는 그야말로 삶의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인물. 서른이 되도록 18세때 첫사랑의 실패에 연연해하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잡고서도 겨우 한다는 시도가 첫사랑 상대를 바꾸려는 것이다. 과거로 돌아가 만난 자신(조안)이 털어놓는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라는 고민은 귓등으로 흘리고 훗날 부자가 될 남자 태훈(유건)과 엮어주려는 것에만 핏대를 올리던 정주. 결국 현실로 돌아가서도 의상실에서 잡일을 하는 처지는 마찬가지지만 태훈의 사랑을 얻었다는 데 만족한다. ‘중천’의 소화(김태희) 역시 다분히 의존적이다. 중천이라는 세계의 운명을 결정할 영체를 수호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았음에도 퇴마 무사 이곽(정우성)의 도움 없이는 한 고비도 못 넘기고 쩔쩔매는 모습만 보여 아쉬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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