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밤하늘 수놓은 가야금 가락

뉴욕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중요무형문화재 23호인 '가야금산조 및 병창' 보유자인 문재숙(53) 이화여대 교수의 가야금 산조를 맛볼 수 있었다.

항공사가 mp3처럼 승객들이 개별적으로 선택하면 들을 수 있도록 해 놓은 기내 음악 서비스. 음원은 1990년 문 교수가 김동준(장구) 선생과 함께 녹음한 '김죽파류 가야금 짧은 산조'였다.

이 서비스 리스트에 곡이 수록된 가야금 연주자는 문 교수가 유일했다.

1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 인근 카네기홀 잔켈홀(599석)에는 미국 성조기와 나란히 태극기가 내걸렸다. 문 교수의 '가야의 꿈' 공연이 열릴 것임을 알리기 위함이다.

문 교수가 지난 3월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인정된 이후 독주회를 갖기는 이번이 처음.

딸 이슬기(25ㆍKBS 국악관현악단 단원)-하늬(23ㆍ2006 미스코리아 진)씨와, 얼마 전 추계예술대 수시모집에 합격한 대금 연주자인 아들 권형(18)군도 어머니 공연을 빛내러 먼길을 함께 했다.

크리스마스가 얼마남지 않아 주말인 이날은 뉴욕 시내 전체가 연말 열기로 떠들썩했지만 공연장 열기 또한 이에 못지 않았다. 청중들이 객석의 대부분을 메운 가운데 현지인도 상당수 눈에 띄었다.

이 자리는 문 교수가 '팔방미인 국악인'으로서의 실력을 맘껏 뽐내는 자리였다.

'김죽파류 가야금 산조'(장구 김기철)를 선보일 때는 20세기 위대한 여성 연주가 가운데 하나인 김죽파(1911-1989)의 음악을 묵묵히 계승하는 연주자로서, 딸 슬기-하늬씨와 가야금 3중주곡 '행복한 가야금'(박경훈 작곡)을 연주할 때는 화목한 가정의 어머니로서의 모습을 한껏 과시했다.

이들은 8일 세종체임버홀에서는 '이랑앙상블'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가족음악회를 열기도 했다.

또 '3대의 가야금과 타악을 위한 기도-오! 나의 조국이여'를 연주할 때는 현대음악에 대한 열린 태도를, 10명의 예가회 단원들과 가야금 병창 '예수탄생'(장용성 작사, 문재숙 작곡)을 연주할 때는 진지한 신앙인의 모습을 드러냈다.

'오! 나의 조국이여'는 우리 조상의 말발굽소리를 장단으로 표현했고, 흐느끼는 소리를 통해서는 숱한 외세의 침략을 겪은 한민족의 한(恨)을 나타냈다. 예가회는 문 교수가 1990년 만든 '예수와 가야금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가야금 산조 등 난해한 곡으로 꾸며진 탓에 처음엔 다소 딱딱한 공연장 분위기는 후반부로 갈수록 열기를 더해갔다.

특히 가야금 중주 '할렐루야'를 연주하자 객석에서는 박수와 함께 '할렐루야'라는 외침이 터져나왔고, 두번째 앙코르곡으로 캐럴을 문 교수가 국악으로 편곡한 '루돌프 사슴코'가 연주되자 관객들도 박자에 맞춰 박수를 쳤다. 몇몇 외국인은 가야금 산조 연주 중 '얼씨구'하는 대신 '와우'라는 추임새를 넣기도 했다.

한국인 친구의 소개로 공연장을 찾았다는 미국인 에드워드 루이스(40)씨는 "한국 전통 음악은 처음 접한다"면서 "가야금 소리는 상당히 호기심을 자아낸다(intriguing)"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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