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대중문화> ③영화

'스크린쿼터 축소와 1천만 관객 시대의 도래.'

2006년 영화계는 스크린쿼터 축소라는 외부 환경 변화와 함께 내부에서도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여러 논란이 야기됐다. '왕의 남자' '괴물'이 차례로 1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연거푸 한국영화 흥행사를 새로 썼지만 그로 인해 야기된 스크린 독점에 대한 공방도 치열하게 전개됐다.

그 와중에 독립영화, 예술영화에 대한 정책적 배려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졌으며 작지만 의미 있는 성공을 거둔 작품들이 희망의 불씨를 지피기도 했다.

스타 배우보다는 감독의 역량이 눈에 띄게 두드러졌던 한 해이기도 했다. '왕의 남자'와 '라디오 스타'의 이준익 감독, '괴물'의 봉준호 감독, '타짜'의 최동훈 감독 등은 작품성을 담보한 상업영화, 즉 '웰메이드 영화'를 만들어내며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현실화된 스크린쿼터 축소

1월26일 한미 FTA 협상을 앞두고 한덕수 당시 부총리가 전격적으로 스크린쿼터를 7월1일부터 146일에서 73일로 축소한다고 발표했다. 1966년 도입된 스크린쿼터제도는 한국영화의 의무상영제도로 1985년 연간 상영일수가 3분의1에서 5분의2로 강화됐다. 1990년대 후반부터 미국의 통상 압력과 함께 경제 관련 부처를 중심으로 축소 주장이 일었으나 영화계의 거센 반발로 무마돼왔다.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 재임 시절부터 또다시 서서히 흘러나오기 시작한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이 결국 현실이 되자 영화계에서는 '사활을 건 투쟁' 방침으로 대항했다.

문화부는 곧바로 실효적 쿼터 일수는 현재도 각종 경감조항에 따라 통용돼온 106일 이상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하겠다는 방침과 함께 영화산업 지원을 위한 각종 방안을 내놓았으나 영화계는 스크린쿼터 축소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원칙을 내세우며 조직적인 반발에 나섰다.

2월4일 안성기로 시작해 146일째가 되는 날인 7월3일 임권택 감독으로 마무리지은 1인 시위에는 배우, 감독, 제작자, 스태프 등 영화계 관련인사 172명이 참여했다.

이어 칸 국제영화제에 최민식 등이 해외원정 시위대로 파견돼 스크린쿼터 원상 복귀에 대한 각국의 지지를 이끌어내기도 했으나 스크린쿼터는 7월1일부터 73일로 바뀌어 시행되고 있다.

영화계의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시위는 농민단체 등과 연합해 한미 FTA 협상 자체에 대한 반대 시위로 확대되기도 했다.

문화부는 지난 10월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시행할 영화산업 중장기 발전계획을 발표하며 영화산업 지원책에 대한 구체적 방안을 내놓았다.

◇1천만 관객 시대의 명암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이 발표된 즈음 한국영화계는 뜻하지 않았던 영화의 흥행 성공으로 한껏 고무돼 있던 와중이었다.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가 각종 신드롬을 몰고올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290여 개 스크린에서 개봉됐던 이 영화는 관객의 입소문이 퍼지며 430여 개 스크린으로 확대됐고 상영 112일 만인 4월18일 1천230만1천289명을 모으며 '태극기 휘날리며'(2004년)가 갖고 있던 1천174만 명을 넘어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으로 올라섰다.

한동안 깨지지 않을 것 같았던 이 기록은 그러나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개봉하며 단 5개월 만에 경신됐다. 7월27일 무려 전국 630여 개 스크린에서 개봉한 '괴물'은 9월2일 '왕의 남자' 기록을 넘어섰으며 11월14일 최종 1천301만9천740명의 관객 수를 기록하며 막을 내렸다.

이로써 한국영화는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에 이어 총 4편이 1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본격적인 1천만 관객 시대를 열었다.

이는 한국영화의 질적 성장, 관객의 한국영화에 대한 애정과 함께 멀티플렉스 시대가 열리며 가능해진 일이었다.

이 때문에 1천만 관객 시대는 새로운 그늘과 논란을 야기시켰다. 작년 말 '태풍'이 530개 스크린에서 개봉됐을 당시 스크린 독점 논란이 일었으나 '괴물'이 630개 스크린에서 개봉하며 각종 기록을 갈아치우자 본격적으로 그 폐해에 주목하게 됐다. 이어 9월27일 410개 스크린에서 개봉했던 '타짜' 역시 흥행 성적이 좋자 620개 스크린으로 늘어나며 전국 관객 680만 명을 동원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520개 스크린에서 개봉하고, '가문의 부활'이 500개 스크린에서 개봉하는 등 이제 500여 개 스크린 정도를 확보해야만 하는 상황이 됐다.

이로 인해 예술영화 및 독립영화를 보호하기 위해 일정 스크린 수 이상의 멀티플렉스에 예술영화 상영관을 의무적으로 설치하거나 한 영화가 한 멀티플렉스에 30% 이상의 스크린 수를 독점할 수 없게 하는 등의 '마이너리티 쿼터'를 시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1천만 관객 시대와 함께 '메종 드 히미코' '유레루' 등 일본 영화와 다큐멘터리 영화 '사이에서', 독립영화인 퀴어멜로영화 '후회하지 않아' 등 일명 '작은 영화'들이 3만 명 이상을 동원하며 의미 있는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스타 감독 시대 도래

배우 이름이 아닌, 감독 이름을 보고 선택하는 흐름이 생겨났다. 물론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 칭하기도 하며, 스타 감독은 꾸준히 있어왔다. 그러나 올들어 작품성을 인정받음과 동시에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일명 '웰메이드 상업 영화'가 잇달아 선보이며 관객은 감독에게도 열렬한 지지를 보내게 됐다.

2003년 '황산벌'로 10년 만에 감독으로 복귀했던 제작자 이준익 씨는 '왕의 남자'의 성공과 함께 감독으로서 명성을 얻게 됐다. '왕남폐인'이라는 열혈 관객의 지지는 이준익 감독에 대한 애정으로 이어지며 웬만한 스타 배우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 '말죽거리 잔혹사' 등으로 알찬 성과를 거뒀던 유하 감독도 올해 신작 '비열한 거리'를 통해 평단과 관객의 고른 지지를 받으며 팬을 확보했다.

봉준호 감독도 단 세 작품을 통해 영화계에서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장편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에서는 영화 관계자들에게만 주목받았던 그는 '살인의 추억'을 통해 이름을 알렸고, 한국영화계의 취약 장르로 꼽혔던 괴수영화 장르에 도전해 한국형 괴수영화 '괴물'을 만들어내 최고 흥행작으로 올려놓았다.

장편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을 통해 촘촘한 시나리오와 탁월한 편집 기법 솜씨를 선보였던 최동훈 감독 역시 '타짜'를 내놓아 평단의 호평과 함께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이들은 관객의 주요 선택 기준인 배우와 함께 감독이 비중을 차지할 수 있도록 큰 흐름을 일궈놓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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