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에서 대폭발이 일었다. 일본 조총련계 중학교에 다니던 '빡빡 머리' 소년은 팝과 록음악을 듣고 충격에 휩싸였다. 그는 매일 팝, 록, 재즈, 클래식 레코드를 학교 친구들에게 들려주며 함께 밴드를 하자고 졸랐다. 담임 교사는 친구들에게 '나쁜 물'을 들이는 '반동분자'라며 눈앞에서 레코드를 쪼개버렸다. 이 소년에겐 평생 잊을 수 없는 순간이다.
크로스오버 피아니스트 양방언(46)은 인터뷰 도중 '결의를 다짐했다'는 표현을 많이 썼다. "한국에서는 잘 안 쓰는 표현인데…"라고 지적하자 "아~ 그래요? 중학교 때까지 조총련계 학교를 다녀서"라며 흠칫 놀라는 표정이다. 그는 북한 국적인 제주 출신 아버지와 남한 국적인 신의주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도쿄가 고향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97년 조선에서 한국으로 국적을 바꿨다.
6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지만 양방언이 피아노에 흥미를 갖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때부터. 신시사이저가 처음 나왔을 때 그는 뭔가에 홀린 듯 악기점을 드나들었다. 그러나 일본 사회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아버지는 5남매 모두 의료 계통 종사자가 되길 희망했다. 니혼의과대학을 졸업한 그는 1년간 마취과 의사로 대학병원에서 일했다. 그러나 음악에 대한 열정은 시간이 흐를수록 커져만 갔다.
이미 양방언은 일본 음악계에서 유명한 뮤지션이다. 일본의 전설적인 스타 하마다 쇼고 등 수많은 아티스트의 음반을 프로듀스했고, NHK 위성방송(BS2) 애니메이션 '십이국기'와 '채운국 이야기'의 음악감독을 맡았다.
한국 땅을 밟은 건 98년 제주도가 처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98년 처음 한국 땅을 밟은 곳이 제주도였어요. 그때 자연스럽게 영감을 받아 '프린스 오브 제주'란 곡을 썼죠. 2003년 6월 제주 공연 때는 정말 감개무량했어요. 제게 제주는 낙원이자 성지인지도 모르죠."
그는 국내에서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공식음악 '프론티어', MBC TV 드라마 '상도' 주제가에 이어 삼성ㆍ조흥은행ㆍGM대우 등 광고음악을 작곡하며 인지도를 높였다. 또 엔씨소프트 온라인 게임인 '아이온', 이성강 감독의 극장용 애니메이션 '천년여우 여우비'에 이어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의 음악감독도 맡고 있다. 그는 영상과 음악이 결합하는 방식에 큰 매력을 느끼고 있다.
"친분 있던 배우 오정해 씨가 절 임 감독님께 추천했어요. 처음에 감독님은 제가 재일교포여서 꺼리셨대요. 오정해 씨의 제안으로 지난해 정일성 촬영감독님과 함께 공연을 보시곤 앙코르도 하기 전에 무대 뒤로 오셔서 '나랑 같이 하자'고 말씀하셨죠. 1차 촬영분을 보고 음악을 만들었고 마음에 들어하셨어요. 감독님은 영화는 함께 만드는 작업이라 강조하셨고, 현장 분위기를 느끼고자 제주도, 해남 촬영장도 방문했어요."
양방언의 음악은 국적을 막론한 악기 소스를 다양한 장르 속에 녹여내고 통합하는 힘이 있다. 피아노, 드럼, 베이스, 기타, 리코더, 아코디언 등 서양 악기와 징, 꽹과리 등의 전통악기는 록, 팝, 재즈, 클래식 등 다양한 장르 속에서 조화를 이룬다.
"첫 솔로 음반 '더 게이트 오브 드림스'를 96년 냈으니 딱 10주년이네요. 여러 악기 소리를 왜 담는지 물어보면, 전 분석은 못해요. 좋은 소리를 자연스럽게 제 음악 안에 담는 거죠. 완성도가 높은 음악을 만드는 데 집요하거든요. 전 어렵고 복잡하고 심각한 건 싫다는 게 기본 자세예요. 머리가 좋은 사람과 대화할 때 그 사람 얘기는 어렵잖아요. 그런 건 재미없거든요."
"크리스마스 공연은 처음"이라는 그는 20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양방언's 크리스마스' 콘서트를 펼친다. 이번 무대에선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딱 맞는 곡으로 선곡했다고 귀띔했다. 입장료 3만3천~12만1천원. ☎02-548-4480
/연합뉴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