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해도 괜찮아”…영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첫선

영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가 12월의 첫날 첫선을 보였다.

설명이 필요없는 감독 박찬욱과 배우 임수정, 정지훈(가수 비)의 결합으로 제작 당시부터 화제를 모아왔다. 영화는 높은 기대에 부응할 만큼 높은 완성도를 보였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신세계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자신이 싸이보그라고 믿는 차영군(임수정 분), 그녀가 사이보그여도 좋다는 박일순(정지훈 분)의 사랑이야기를 주축으로 전개된다. 정상적인 사람이 보기엔 모자라고 이상하지만, 비정상이기에 오히려 더 순수하게 조건없이 (사이보그여도 괜찮을 만큼) 상대를 사랑하는 일순의 사랑은 감동적이다.

단추 풀고 편안히 찍은 ‘실험 영화’

‘복수는 나의 것’ ‘올드 보이’ ‘친절한 금자씨’ 등 5년에 걸친 복수 시리즈와 박 감독의 야심작 ‘박쥐’ 사이에 ‘쉼표’처럼 놓인 영화이자, 비용과 제작기간 단축을 시도하는 HD 프로젝트로 ‘가볍게’ 출발한 영화지만 결과는 결코 ‘가볍지’ 않다.

박찬욱 감독의 설명처럼 ‘베토벤에게 있어 8번 교향곡’처럼 단추를 풀고 만든 덕분인지, 영화는 신선하고 발랄한 아이디어로 가득하며 그 가벼움은 관객에게 유쾌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8개의 HD프로젝트 중 하나로 쉽게 생각하고 출발했다지만, 촬영이 진행되면서 박 감독 스스로의 기대치가 높아지진 않았을까.

“쉬어가는 의미로 찍겠다는 게 아무렇게나 만들겠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실험적인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욕심이었다. 들이는 돈을 줄여 상업적인 부담을 줄이면, 관객 대다수가 이해하고 공감하지 못하는 영화더라도 실험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기대는 초반부터 무너졌다. 정지훈이 캐스팅되고 임수정이 들어오면서, 있을 수 없는 일이 돼버렸다. 사실 배우들도 처음에는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며 시나리오에 대해 어려움을 드러냈지만, ‘아니다 지금은 이렇게 보이지만 결과는 다를 수 있다’는 감언이설로 설득했다. 그 말에 대한 책임이기도 하고, 관객을 잊을 수가 없었다. 관객이 이 장면을 이해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혼란스러워 하면 어떡하나 등의 고민을 하면서 ‘친절’해지도록 노력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영화에는 다소 복잡한 스토리 구조와 다양한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준 박 감독의 ‘친절’한 설명들이 등장하지만, 영화의 신선도와 독특함을 떨어뜨리진 않는다.

임수정 “송강호 선배 말에서 답을 얻었다”

사이보그인 몸이 고장날까봐 음식을 거부하는 영군. 실제로 고구마와 야채 몇 조각으로 촬영 내내 배고픔을 느끼며 연기에 임했다는 임수정의 노력은 사실감 넘치는 사이코 영군을 스크린 위에 만들어냈다. 이미 연기력을 인정 받은 그녀이지만, 이번 영화를 통해 한층 성숙한 연기 세계를 지닌 배우로 각인될 것이다.

“영군이라는 캐릭터를 만난 것은 내게 큰 행운이다. 굉장히 비현실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영군을 어떻게 표현할까에 대해 초반에 고민을 많이 했다. 촬영 시작을 알리는 고사 때 송강호 선배가 오셔서 이런 말을 해주셨다. ‘너가 이런 영화, 이런 캐릭터를 만난다는 것은 정말 큰 행운이다. 너가 자유자재로 놀 수 있는 백지 상태의 캐릭터다. 배우가 이런 기회를 만나는 것은 드물다’. 모든 고민의 해결 방법을 찾아낸 것 같았다. 덕분에 영화 촬영은 미리 계산해 두지 않고 나를 비워두는 작업이 됐다. 감독님의 요구, 상대 배우와의 호흡, 현장에서 내가 느낀 것을 믿고 따랐다.”

임수정은 이어 영군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남녀 성 구분 없이 7∼8세 정도 되는 아이라고 생각하고 아이 같이 느끼고 아이 같이 행동하려고 했고, 그 결과 오늘의 영군이 있다. 연기에 임하는 자세를 색다르게 할 수 있었던 작품이다”라고 덧붙였다.

정지훈 “점점 정신이 혼란스러워져 자연스럽게 연기했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정지훈의 스크린 데뷔작이다. 첫 도전치고는 좀 어려운 캐릭터를 맡았다. 박일순은 신세계 정신병원에서 가장 정상적이기도 하고, 가장 비정상적이기도 한 인물이다.

“박일순이라는 인물을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고민 많이 했다. 정신병원 안에서 벌어지는 멜로, 슬픔과 고통 등 여러가지를 표현해야 하는 캐릭터다. 답답했다. 이런 장르와 캐릭터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처음 시도하는 것이니까 내가 만들어내면 된다고 생각했다.”

박일순을 만들어 내면서 어디에 주안점을 두었을까.

“제3세계에 빠져 있어야 하는 캐릭터다. 어느 순간 정상이었다가 어느 순간 정신이 혼란스러운 존재다. 고민을 하도 많이 했더니 박 감독께서 ‘아예 시나리오 보지 말고 와라’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캐릭터에 대한 부담이 컸다. 하지만 ‘순리대로 하자’는 생각으로 했다. 현장 분위기가 좋았고 상대역인 임수정씨나 나나 촬영을 거듭할수록 정신이 혼란스러워져서 자연스런 연기가 가능했다(웃음). 내가 제대로 연기를 하고 있는지 아닌지는 감독과 스태프들이 판단해 주시리라 믿고 열심히 했다.”

제목 속에 담긴 의미?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제목에 담긴 의미는 무엇일까.

박찬욱 감독은 “일순은 자신이 사이보그라고 믿는 영군의 병, 영군의 망상을 인정하면서 자기가 그 안으로 들어간다. 예를 들어 두 번째 총격 장면에서 일순은 영군의 망상을 공유하게 된다. 상대를 인정한 채로, 죽지 않고 살 수만 있도록 애쓰는 안간힘을 그리고 싶었다. 그런 바램을 제목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국내 최초로 ‘바이퍼 카메라’를 사용해 비용 절감과 제작 기간 단축이라는 HD의 장점은 살리면서도 필름 영화의 느낌은 최대한 살려낸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오는 7일 관객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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